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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청정도론

삼보가 세상에 출현하는 이유 - 모든 중생들의 ① 이익 위해서, ② 행복 위해서, ③ 복 짓는 대상이 되어주기 위해서

by Rihan 2025.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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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3보의 공덕으로 깨달으신 분의 공덕 9가지, 가르침의 공덕 6가지, 성자들의 출가자 공동체 공덕 9가지를 배운다.

줄여서 3 · 9 · 6 · 9 이다.

Itipi so Bhagavā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Arahaṁ  모든 번뇌로부터 떠나셔서 특별한 공양을 받을 만한 분이시며,
Sammāsambuddho 스스로 바르게 깨달은 분이시며,
Vijjācaraṇasampanno 지혜와 실천을 구족한 분이시며,
Sugato 바른 말을 하시고 열반으로 잘 가신 분이시며,
Lokavidū 모든 세상을 잘 아시는 분이시며,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길들일 만한 이들을 가르치는 데 최고인 분이시며,
Satthā devamanussānaṁ 천신과 인간의 스승인 분이시며,
Buddho 일체지를 깨닫고 다른 이들을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이시며,
Bhagavā. 최상의 복덕을 구족한 분이십니다.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a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
가르침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직접 볼 수 있으며,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고 할 만하며,
가까이 가져와야 하고 열반으로 이끄는 것이며,
지혜로운 이들이 각자 스스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잘 실천한다 바가와의 제자 모임은,
uj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올곧게 실천한다 바가와의 제자 모임은,
ñāya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올바른 방법대로 실천한다 바가와의 제자 모임은,
sāmīci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합당한 절차대로 실천한다 바가와의 제자 모임은,

yadidaṃ 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 purisapuggalā, 즉, 네 쌍의 사람들과 여덟 개인들이니,
esa bhagavato sāvaka-saṅgho 이 바가와의 제자 모임은

āhuneyyo, 멀리서 가져온 공양물을 받을 만하고,
pāhuneyyo, 손님들을 위한 공양물을 받을 만하고,
dakkhiṇeyyo, 내생을 위해 베푸는 공양물을 받을 만하고,
añjalikaraṇīyo, 합장하여 올리는 예경을 받을 만하고,
anuttaraṃ puññakkhettaṃ lokassa. 위없는 복밭이다 세상의.

 

 

2.

이러한 공덕을 지닌 삼보가 세상에 생겨나는 이유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게송이 있다.

Buddho loke samuppanno hitāya sabba pāṇinaṃ 깨달은 분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이익을 위하여 모든 생명들의
Dhammo loke samuppanno sukhāya sabba pāṇinaṃ 법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행복을 위하여 모든 생명들의
Saṃgho loke samuppanno puññakkhettaṃ anuttaraṃ 출가 공동체가 세상에 출현하셨다 공덕의 밭이다 위없는
Etena sacca vajjena sukhitā hontu sādhavo. 이 진실된 말로써 행복하게 되기를 선한 이들이.

 

  1. Buddho loke samuppanno hitāya sabba pāṇinaṃ 깨달은 분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이익을 위하여 모든 생명들의
    • Buddho깨달은 자, 부처님: √budh(깨닫다, 알다, 눈뜨다) → buddha(깨달은 - 과거분사) + -o(주격 단수)
    • Loke세상에: loka(세계, 세상, 중생들이 사는 영역) + -e(처소격)
    • Samuppanno생겨나신, 출현하신: sam-(함께, 완전히) + ud(위로) + √pad(가다) → samuppajjati일어나다, 생겨나다, 출현하다 → samuppanna(일어난, 생겨난, 출현한 - 과거분사) + -o(주격 단수)
    • Hitāya이익을 위하여, 복을 위하여(for the welfare): √dhā(두다, 놓다)의 과거분사 '잘 두어진 것' → 유익한 것, 복이 되는 것 → hita(이익, 복, 유익함) + -āya(~을 위하여, ~에게 - 여격 단수)
    • Sabba모든, 일체의
    • Pāṇinaṃ중생들의, 살아 있는 존재들의: pāṇa(숨, 호흡)를 가진 자 → pāṇin(숨 쉬는 존재, 살아 있는 존재, living being) + -aṃ(속격)
  2. Dhammo loke samuppanno sukhāya sabba pāṇinaṃ 법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행복을 위하여 모든 생명들의
    • Dhammo가르침, 법: √dhṛ(붙들다, 지탱하다, 유지하다) → 세상을 지탱하는 것, 법칙, 진리 → dhamma + -o
  3. Saṃgho loke samuppanno puññakkhettaṃ anuttaraṃ 출가 공동체가 세상에 출현하셨다 공덕의 밭이다 위없는
    • Saṅgho: saṃ-(함께) → saṅgha모임, 무리, 공동체 + -o
  4. Etena sacca vajjena sukhitā hontu sādhavo. 이 진실된 말로써 행복하게 되기를 선한 이들이.
    • Etena이것으로, 이로 인하여: eta(이것) + -ena(도구격 단수)
    • Sacca진실, 사실, 참됨: √as(존재하다, 있다) → sat(있는 그대로의, 참된) → sat + -ya → satya → sacca
    • Vajjena말로써: √vad(말하다) → vajja말함, 발언, 선언 + -ena
    • Sukhitā행복하게 된, 행복한: sukheti행복하게 만들다 → 과거분사 sukhita행복하게 된, 행복한 + -ā(복수 주격)
    • Hontu되기를, 되소서: √bhū(되다, 존재하다) → hoti~이다, 존재하다 → 복수 명령형 hontu
    • Sādhavo선한 이들, 훌륭한 사람들: √sādh(성취하다, 성공하다) → sādhu훌륭한, 선한, 유익한(c.f. 감탄사로 쓸 때 말하는 '사두'와 같은 말 - "좋다!", "훌륭하다!", "옳다!", "참 잘했다!") + -vo(복수 주격)

 

이 게송의 함의는 다음과 같다.

  • 부처님이 아득히 긴 세월을 거쳐 부처로 깨달으시는 것은 모든 중생들에게 차별 없이 이익을 주기 위해서다. 부처님이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선과 악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되었고, 선을 따라 실천하고 악을 피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낮은 수준부터 높은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깨달아 성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 지혜롭지 못하면 고통을 만드는 원인을 짓는다. 법은 지혜다. 지혜가 생기는 만큼 우리가 행복해진다. 따라서 부처님 법은 우리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다.
  • 불 · 법 · 승은 그 자체로 충분하며, 스스로의 공덕이 충분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으시다. 그러나 깨달으신 출가 공동체는 우리 모두에게 선업이라는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최상의 논밭이 되어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다.

불 · 법 · 승의 공덕을 배워서 아는 자가 이 진실한 말들을 접한다면 삼보에 대한 희열이 충만하게 될 것이다.

이 진실한 말로 스스로 희열을 느끼고 삼보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본인이 지혜와 복덕이라는 원인을 지었기 때문이다.

 

매 생애마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똑같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다른 내 조건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했던 업에 따라 생기는 것이다.

이번 생에 법을 만나 따르고 실천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전생에도 법을 만나 법을 알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과거생에 우리는 삼보를 만날 수 있는 공덕을 지었고, 알고 믿을 수 있는 지혜를 갖추었다.

이러한 힘으로 우리는 미래생에 스스로가 바라는 세간 · 출세간의 이익을 직접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추게 될 것이다.

 

이 게송 하나로 우리는 삼보를 생각하고, 삼보라는 진실을 말하고, 그 진실한 말의 힘으로 선남자·선여인들의 행복을 축원한다.

다르게 말하면 이 게송을 통해 붓다누사띠, 담마누사띠, 상가누사띠, 삿짜빠라미, 멧따빠라미라는 5가지 수행을 하는 셈이다.

삼보의 공덕을 기리는 게송을 소개하겠습니다.

Buddho loke samuppanno hitāya sabba pāṇinaṃ
붓다가 세상에 오신 것은 모든 중생들의 이익 위해서

Dhammo loke samuppanno sukhāya sabba pāṇinaṃ
법이 세상에 오신 것은 모든 중생들의 행복 위해서

Saṃgho loke samuppanno puññakkhettaṃ anuttaraṃ
승가가 세상에 오신 것은 모든 중생에게 선업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최상의 논밭이 되기 위함이다.

Etena sacca vajjena sukhitā hontu sādhavo.
이런 진실을 말함으로써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나 부처로 깨닫는 것은 우리 모든 중생들의 이익 위해서입니다. 차별 없는 모든 중생들의 이익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지혜로워지고 행복하도록 하기 위해서 법이 나왔습니다. 사실은 법이 지혜입니다. 지혜가 생기는 만큼 우리가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법이 이 세상에 나오시는 것이 우리 모든 중생들이 지혜로워지기 위해서이고, 그 지혜가 바로 행복입니다. 지혜와 행복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지혜롭지 못하면서 행복하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지혜롭지 못하면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을 하게 되고 그러면 언젠가는 또 고통으로 갈 겁니다. 지혜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을 알고 진정한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지혜 수준이 나의 행복 수준입니다. 부처님의 법이 우리 모든 중생들의 행복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겁니다.

...이 세상에 깨달은 승가가 나오시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선업이라는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논밭이 되어 주기 위함입니다. 불 · 법 · 승은 그 자체로 아주 충분합니다. 부처님은 부처님의 공덕으로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승가도 깨달은 분이기 때문에 우리로부터 공양을 안 받아도 자기 힘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최고의 법이고 최고의 가르침인 이 법에 대해서도 법이 필요로 하는 것은 더이상 없습니다. 그러면 불 · 법 · 승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오신다고 알아야 합니다.

...해가 뜰 때 해는 차별할 이유가 없어 온 세상을 골고루 비춰 주면서 뜹니다. 불 · 법 · 승이 이 세상에 오실 때도 차별함 없이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오시는 겁니다. 그런데 차별하는 것은 우리 중생들입니다. 우리 중생들이 어리석기 때문에 차별하는 겁니다... 그렇게 무시하고 외면하면 손해 보는 것은 누구입니까? 불 · 법 · 승은 손해 보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손해 보는 사람은 본인입니다... 알면 우리를 위해서 오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불 · 법 · 승의 공덕을 알 수 있는 지혜와 복덕이 있기 때문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삼보의 공덕을 알 수 있는 충분한 복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삼보를 만나는 것입니다. 알고 믿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 힘으로 여러분들에게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겁니다.

여기까지가 경전에 나오는 삼보 공덕 예찬입니다. 이 게송을 많이 독송하면 그것이 곧 붓다눗사띠, 담마누사띠, 상가누사띠 수행이 됩니다. 그리고 그다음 구절은 후대의 지혜로운 큰스님들께서 축복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에떼나 삿짜 왓제나 수키따 혼뚜 사다워'...이렇게 진실을 말함으로써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구절에서는 진실바라밀과 자애바라밀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삼보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진실한 말입니다. 삼보 속에 인류의 궁극적 문제에 대한 해답이 정확하게 들어 있습니다.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진실한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모든 중생들이 이 삼보의 공덕을 진심으로 예찬함으로써 그 공덕으로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멧따바와나(자애수행)이지요?

이 게송 하나로 우리는 다섯 가지 수행(붓다누사띠, 담마누사띠, 상가누사띠, 삿짜빠라미, 멧따빠라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좋은 게송이니 열심히 독송하시기 바랍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552~556, (사)법승 담마야나(2017)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 모든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서 오신 겁니다. 부처님이 오셨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세속적인 이익들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만남으로써 선과 악을 뚜렷하게 구분하여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 부처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불선업과 선업에 대하여 보통 사람의 지혜를 가진 우리로는 100% 완벽하게 구별하지 못합니다. 부처님이 오셨기 때문에 선과 악을 분명하게 알게 되고, 선을 따라 실천할 수 있고 악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선을 따르게 되면 낮은 수준부터 높은 수준까지, 다음에는 깨달아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선업을 한다는 것은 이번 생에도 이익이고 죽어서 다음 생에도 유익합니다. 아라한이 되면 좋고 아라한으로 깨닫지 못하더라도 이 삼보를 만났던 공덕으로 우리는 다음 생에 더 좋은 생으로 태어날 수 있고 그 좋은 생을 이용해서 깨달음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법을 아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안다는 것이 그냥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아는 사람은 따라 실천하게 됩니다. 알면 아는 만큼 실천이 따라오는 겁니다. 부처님의 법은 세속적인 가르침에서부터 출세간의 가르침까지, 즉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나 열반까지 이르게 하는 가르침으로 아주 완벽하게 있습니다. 보시(다나)에서 시작해서, 중간의 계율(실라)로, 마지막에는 마음의 청정함인 지혜(빤냐)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주 완벽하게 있기 때문에 그 법을 따르면 따를수록 우리는 행복하게 됩니다. 법을 따르면 이번 생에도 행복하고 위험 없고 좋은 일들이 생기고, 그 법을 따르는 공덕으로 다음 생에 태어나도 위험 없고 좋게 태어나고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집니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똑같지 않은데, 그것이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했던 업에 따라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 생에 법을 만나서 법을 알고 따르면 그 선업이 다음 생에 또 따라옵니다. 그러면 태어날 때부터 내 조건이 다른 사람과는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번 생에 좋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전생에 법을 실천하는 선업을 잘 못했다고 알아야 합니다. 이번 생에 법을 만나 따르고 실천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전생에도 법을 만나 법을 알고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법을 만나는 것이 아주 큰 행복이고 승가를 만남으로써 우리의 선업공덕의 복밭이 아주 커집니다. 승가의 논밭이 좋은 논밭 중에 아주 좋은 논밭입니다. 우리에게 선업 공덕이라는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논밭이 되어주기 위해서 승가가 이 세상에 온다고 알아야 합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551~552, (사)법승 담마야나(2017)

 

 

3.

한계가 있는 행복과 불완전한 의지처, 완전한 행복과 완전한 의지처를 언급하시는 부처님의 게송이 있다.

우환이 닥쳐 두려움이 몰려오면
어리석은 이들은
산, 숲, 나무, 사당, 신에게서 귀의처를 구한다.(188)

이런 곳은 안전하거나 거룩한 귀의처가 아니다.
그것에 귀의한들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189)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이들에게 귀의하면 
올바른 지혜로 네 가지 진리를 볼 수 있다.(190)

괴로움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여덟 가지 바른 길을.(191)

이것이 완전한 귀의처요, 가장 뛰어난 귀의처다.
이것에 귀의할 때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192)

- 무념 · 응진 옮김, 『법구경 이야기 2』 pp.616~617, 옛길(2022)

 

  • 188~189번 게송은 세속적 피난처의 한계를 말한다.
    •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산, 숲, 나무, 사당(제단), 신 등을 피난처로 삼지만,
    • 그것들은 안전(khema)하지도 않고, 최상(uttama)도 아니어서 고통을 완전히 해결해주지 못한다.
  • 190~192번 게송은 진정한 피난처를 말한다.
    • 오직 깨달은 자(Buddha), 진리(Dhamma), 성자들의 출가 공동체(Sangha)에 귀의하고
    • 사성제(Four Noble Truths)를 바르게 볼 때,
    • 그것이 바로 안온한 피난처가 되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즉, 이 게송은 삼귀의가 왜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삶의 길인지를 강조하는 선언이다.

 

여기서 192번 게송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Etaṃ kho saraṇaṃ khemaṃ, etaṃ saraṇamuttamaṃ 이것이 참으로 의지처이다 위험 없는, 이것이 의지처이다 최상의
Etaṃ saraṇamāgamma, sabbadukkhā pamuccati. 이 의지처에 이르러서,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된다.
  1. Etaṃ kho saraṇaṃ khemaṃ, etaṃ saraṇamuttamaṃ 이것이 참으로 의지처이다 위험 없는, 이것이 의지처이다 최상의
    • Etaṃ이것: eta(이것 - 지시대명사) + ṃ
    • Kho참으로, 실로, 정말로
    • Saraṇaṃ의지할 곳, 귀의처, 피난처: √sar(나아가다, 움직이다) + 명사화 접미사 -ana → 위험이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아가는 곳', 가서 의지하는 곳 → saraṇa의지처, 도피처, 피난처 + ṃ (=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몸을 기댈 수 있는 안전한 곳, 귀의처)
    • Khemaṃ안전한, 위험에서 벗어난: √kṣi(거주하다, 평온하다) → khema안전한, 평온한(= 윤회·번뇌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 열반) + ṃ
    • Uttamaṃ가장 위의, 최상의: ud-(위로) → 비교급 uttara(더 위의) → 최상급 uttama + ṃ → Saraṇaṃ (피난처) + Uttamaṃ (최상의)
  2. Etaṃ saraṇamāgamma, sabbadukkhā pamuccati. 이 의지처에 이르러서,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된다.
    • Āgamma다가와, 찾아와, 이르러서, ~에 와서: ā-(~로, ~쪽으로) + √gam(가다) → āgacchati~로 오다 → saraṇamāgamma = saraṇaṃ + āgamma
    • Pamuccati풀려난다, 해방된다, 벗어난다: pa-(완전히, 밖으로, 멀리 - 방향, 강조) + √muc(풀어놓다, 놓아주다, 해방하다)

 

무식하면 나쁜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불선업의 결과는 자기가 받는다.

배움이 없는 자가 잘못된 의지처를 의지하면 이러한 인과가 반복되어 악순환에 빠진다.

불 · 법 · 승이라는 의지처는 위험 없는 의지처이다.

위험 없는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면 점점 더 위험 없는 선순환을 타서 종국에는 위험이 완전하게 없는 열반까지 가게 된다.

 

생로병사 등 모든 위험이 없어지는 완벽한 행복이 열반이다. 어떤 위험도 없도록 존재계를 탈출하는 것이다.

윤회와 번뇌라는 위험이 없어 안전한 곳, 즉 khema는 열반을 의미한다.

 

세간의 불완전한 의지처는 한계가 있는 행복만을 언급한다. 혹은 그러한 행복마저 거꾸로 가르쳐 한 개인을 파멸시키기도 한다.

삼보는 우리가 겪을 수밖에 없는 진짜 고통이 무엇인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 진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고통의 완전한 소멸인 행복을 아는 것
  • 진짜 우리의 근원적 문제, 핵심적인 문제인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할 수 있는 방법
  • 완전한 행복인 닙바나(열반)까지 갈 수 있는 최상의 뜻과 방법까지 갖고 있는 의지처
  • 우리 모두가 고통이 무섭고 행복해지고 싶어서 의지처를 찾고 있는데 진짜 우리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의지처가

불 · 법 · 승 삼보뿐이라는 이야기다.

 

현재 겪고 있는 고통들에서도 우리는 불 · 법 · 승을 아는 만큼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지속적인 수행으로 그 끝에 다다른다면 생로병사라는 큰 고통까지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또 다른 게송이 있는데 '쿳다까니까야'에 나오는 법구경 게송 192번입니다.

Etaṃ kho saraṇaṃ khemaṃ, etaṃ saraṇamuttamaṃ
이것이 위험 없는 의지처이고, 위없는 최고의 의지처이다.

Etaṃ saraṇamāgamma, sabbadukkhā pamuccati.
이 의지처를 따라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의지할 곳을 찾다가 내가 의지하는 곳에서 위험이 되돌아오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우리 인류가 시작할 때는 배우지 못해서 지혜가 없고 모든 면에서 약하기 때문에 의지처를 많이 찾았습니다. 산에는 산신, 하늘에는 하느님, 바다에는 바다신, 강에는 강신을 찾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내가 볼 수 없고 원인과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벼락 맞으면 하느님이 화가 나서 나를 죽이는 줄 알았고... 산신이 화난 줄 알았습니다. 뭔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또 생기는 일에 대해 그 이유를 잘 모르고 지혜가 없어 어리석기 때문에 신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신들을 모시면서 사람들을 죽여 목에서 피를 빼 그 신에게 제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무식하면 그런 나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불선업의 결과를 누가 받습니까? 자기가 받습니다. 잘못된 의지처를 찾다가 자기에게 나쁜 일들만 생기게 되는 거지요. 요즘에도 종교 때문에 엄청나게 싸웁니다. 종교 문제로 사람들을 많이 죽이는데, 그것은 엄청나게 무서운 일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잘못 의지하는 곳에서 오는 위험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러나 불 · 법 · 승이라는 의지처는 위험 없는 의지처입니다. 위험 없는 의지처에서 위험 없는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면 다음에는 위험이 완전하게 없는 열반까지 가게 됩니다. 생로병사 등등의 모든 위험이 없어지는 완벽한 행복이 열반입니다. 그래서 '케망'이 열반을 의미합니다. 위험 없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의지하게 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금방 태어난 아기에게는 부모가 의지처입니다. 조금 크면 친구나 스승이 생깁니다. 다음에는 나라나 정부나 직장에 의지하지요? 그리고 또 남편이나 부인이나 아들이나 딸이나 이런 식으로 의지처를 찾아 의지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 곳에서 못 해주는 것들은 종교에서 찾습니다. 우리는 왜 절대자에게 의지하는가요? 고통과 위험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고 싶어서 의지합니다

...그래서 의지하는 것을 아주 기본적으로 단순화하면, 내가 피하고 싶은 것이 있고 또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그 두 가지를 줄 수 있는 것을 의지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들이 찾고 있는 의지처를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진짜 의지처가 되고 있습니까? 우리는 진짜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진짜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진짜 고통에서 벗어난, 고통의 완전한 소멸인 행복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한계가 있는 행복만, 아무나 아는 행복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지처를 찾을 땐 최고의 의지처를 찾아야 합니다. 불 · 법 · 승이라는 의지처야말로 진짜 우리의 기본적인 문제, 핵심적인 문제인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할 수 있는 의지처입니다. 완전한 행복인 닙바나(열반)까지 갈 수 있는 최상의 뜻까지 갖고 있는 의지처입니다. 우리 모두가 고통이 무섭고 행복해지고 싶어서 의지처를 찾고 있는데 진짜 우리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의지처는 불 · 법 · 승 삼보뿐입니다.

...현재 겪고 있는 고통들에서도 불 · 법 · 승을 아는 만큼 조금씩 벗어납니다. 그다음에 생로병사라는 큰 고통까지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556~559, (사)법승 담마야나(2017)

 

 

4.

삼귀의tisaraṇagamana는 삼보가 무엇이고, 귀의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정확히 알 때 완성된다.

예경의 대상과 예경을 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아는 지혜가 있을 때 확신이 생기고, 비로소 세 가지 의지처를 정확히 마음으로 받아 지닌다.

 

'사라나 가마나'을 진실로 한 번만 한다면, 내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죽음의 마음 전까지 삼귀의가 유지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죽을 때 없어지더라도 살아있을 때 귀의하고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다만 살면서 불 · 법 · 승 외에 다른 의지처를 찾을 때 사라나 가마나가 깨진다고 한다.

그런데 수다원이 될 때부터는 그 의지처가 절대로 깨지지 않고, 다음 생에도 태어날 때부터 사라나 가마나를 지니고 태어나게 된다.

 

즉, 도와 과를 깨달으면 삼귀의가 완성됨을 알 수 있다.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덕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어떤 생에 태어나든 주변으로부터 항상 사랑받고 존경받는 대상이 된다. 태어날 때부터 복이 붙어 오며,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면 뭔가 묘한 힘을 느끼기 때문에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공덕을 지니게 된다.
  2. 삼보를 존경하고 귀의함으로써 그 복으로 지혜가 예리해진다. 이번 생보다 다음 생, 오늘보다 내일이 더 지혜로워진다.
  3. 불 · 법 · 승이라는 대상이 특별하기 때문에, 삼보에 귀의하여 살면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여러 사람들이 내 뜻을 따르게 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생긴다.
  4. 특별한 것을 많이 가지게 된다. 풍요롭고, 잘생기고, 복이 있는 모습을 갖춘다. 삼보의 공덕으로 원래 있는 모습보다 더 높은 품격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사라나는 마음으로 믿고 가지게 되는 의지처라는 뜻입니다... 확실하게 아는 지혜가 중요하고 지혜가 생기면서 마음에서 가지게 되는 확신이 '사라낭 가마나'입니다. 우리가 예경 올리면서 '붓당 사라낭 가차미. 담망 사라낭 가차미. 상강 사라낭 가차미.'라고 말하면서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이 그냥 귀의한다고 말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귀의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불 · 법 · 승이 뭔지를 알고 믿으면 귀의가 자연스럽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사라낭'이 강해지면 어떻게 됩니까? '아자 따게 빠누빠당 붓당 사라낭 갓차미'라고 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삼보에 귀의하는 게송이 나오는 겁니다.

Buddho me saraṇaṃ añña natthi buddhaṃ saraṇaṃ gacchami.
부처님만이 나의 의지처, 다른 의지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Ajātake panupadaṃ buddhaṃ saraṇaṃ gacchami.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Dhammo me saraṇaṃ añña natthi dhammaṃ saraṇaṃ gacchami.
법만이 나의 의지처, 다른 의지처는 없습니다. 법에 귀의합니다.

Ajātake panupadaṃ dhammaṃ saraṇaṃ gacchami.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법에 귀의합니다.

Saṅho me saraṇaṃ añña natthi saṅghaṃ saraṇaṃ gacchami.
승가만이 나의 의지처, 다른 의지처는 없습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

Ajātake panupadaṃ saṅghaṃ saraṇaṃ gacchami.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승가에 귀의합니다.

...삼보에 귀의하는 공덕이 엄청나게 큽니다. 진짜 불 · 법 · 승의 공덕을 알고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불 · 법 · 승 삼보에 귀의합니다.'라는 마음이 한 번만 생겨도 그 공덕으로 다음과 같은 복을 받게 됩니다.

첫째, 어떤 생에 태어나든 주변으로부터 항상 존경을 받는 대상이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복이 붙어 오는 겁니다... 인간적으로 나의 인격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존경할 수 있는 뭔가 보이지 않는 힘이 생기는 겁니다. 그 사람이 나를 보면 존경스러워합니다. 나를 보면 뭔가 묘한 힘을 느끼기 때문에 다 꺾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공덕이 됩니다.

둘째, 삼보를 존경하고 귀의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 복으로 지혜가 아주 예리해지고 좋아집니다. 이번 생보다 다음 생이 더 지혜로워지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지혜로워집니다.

셋째, 삼보에 귀의하여 살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내 뜻에 따르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여러 사람들이 내 뜻을 따르게 할 수 있는 그런 힘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불 · 법 · 승이 특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넷째, ...다른 사람들이 얻지 못해 부러워하는 특별한 것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많이 갖춰서 살게 되고 그리고 언제 어디서 태어나든지 간에 잘 생긴 모습으로 태어나고 또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모습 자체가 특별합니다. 어떤 사람은 외모는 잘 생겼다거나 예쁘다고 할 수 없지만 뭔가가 보기 좋고 빛이 나는 것 같이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삼보를 의지하는 공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있는 모습보다 더 높은 품격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삼보를 의지함으로써 나타나는 공덕 하나입니다.

다섯째, 사람들이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항상 친구들, 도반들,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유명해집니다. 그런 공덕들이 이 삼보를 의지함으로써 가질 수 있는 겁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560~563, (사)법승 담마야나(2017)
그래서 '사라낭 가마낭'을 진실로 한 번만 해도 내 마음이 안 바뀌면 죽을 때까지 그 마음을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붓당 사라낭 가차미'를 매일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만 해도 내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사라낭 가마나'가 있게 되는데, 그러나 죽으면 깨집니다. 죽음 마음에는 귀의하는 마음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죽음 마음에는 아는 마음도 없고 지혜도 없기 때문에 죽을 때는 '사라낭 가마나'가 없습니다.

삼보에 귀의하는 것을 '사라낭 가마나'라고 하는데 그때 삼보에 대해서 알고 믿는 마음으로 귀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죽을 때는 없어지지만 살아 있을 때 귀의하고 사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부처님 외에, 법 이외에, 승가 외에, 다른 의지처를 믿고 있으면 '사라낭 가마나'가 깨집니다. 살아 있을 때 깨지는 것이 다른 의지처를 찾을 때입니다. 불 · 법 · 승 외에 다른 의지처를 진짜 내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의지처라고, 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의지처라고 믿고 의지하면 그것이 깨집니다. 그런데 수다원이 될 때부터는 그 의지처가 절대로 깨지지 않습니다... 다음 생에 태어나도 수다원은 그 '사라낭 가마나'를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사람이 됩니다.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도를 깨달으면 '사라낭 가마나'가 완성된다고 하는 겁니다.

...선업도 있고 불선업도 있지만 결론은 죽기 직전의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죽기 직전의 마음으로 내가 선업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다음 생에 좋게 태어납니다. 그래서 '사라나'의 마음이 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563~565, (사)법승 담마야나(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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