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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청정도론

승가의 9가지 덕목 - ⑦ 내생을 위해 베푸는 공양물을 받을 만하다dakkhiṇeyyo고 말하는 이유 1가지

by Rihan 2025.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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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일곱 번째 덕목 - 내생을 위해 베푸는 공양물을 받을 만한dakkhiṇeyyo

  • Dakkhiṇā: 공덕을 위한 보시
    • 산스크리트 dakṣiṇā(제사 후 브라만에게 주는 사례) → (신심으로 드리는) 보시물, 헌금, 공양
    • 공덕을 쌓기 위해 존경받을 만한 대상에게 바치는 보시, 공양물, 선물
  • -eyya: ~할 만한, ~받을 자격이 있는
  • Dakkhiṇeyyo: 보시받을 만한, 공양받을 만한

 

닥키나와 닥키네요 공덕에 대한 설명은 청정도론 97번 단락의 붓다고사 스님의 설명으로 충분하다.

다른 설명은 더 필요치 않을 정도다.

97. 보시(dakkhiṇa)란 다가올 내생을 믿고 베푸는 보시를 말한다. [승가는] 그런 보시를 받을만하다. 혹은 보시에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큰 결과를 얻게 하여 공양물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시받아 마땅하다(dakkhiṇeyya).

- 대림 스님 옮김, 『청정도론 제1권』 p.522, 초기불전연구원(2021)

 

  1. 닥키나dakkhiṇā는 '내생의 행복'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베푸는 보시다.
  2. 승가는 이런 보시를 받을 만하다dakkhiṇeyya. 수혜자의 계행이 청정하므로 공양물을 청정하게 하고, 시주자로 하여금 큰 결실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즉, 내생을 위해 베푸는 보시를 드리기에 승가만큼 마땅한 대상은 없다.

따라서 '내생을 위해 베푸는 공양물을 받을 만하다dakkhiṇeyyo'고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위 2번 이유 하나만으로 설명된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사실들이다.

 

1. 보시는 왜 하는가?

 

인과를 믿거나saddhā, 직접 보아서 알기paññā 때문이다.

내생을 믿거나saddhā, 직접 보아서 알기paññā 때문이다.

 

닥키나dakkhiṇā는 특별히 '보시자 자신의 공덕을 위해 보시한다'는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뜻이 강조된다.

  • 미래의 행복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나 시물은 닥키나로 불린다.
  • 보시하는 의도를 통해 중생들은 자신이 되고 싶거나 지니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나 이룰 수 있는 복을 받는다. 보시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위가 완료될 때만 그가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결과로 성취될 것이다.
  • 무명과 갈애라는 2가지 근원적 원인이 모두 제거될 때까지 재생은 불가피하다. 그리하여 내세에서의 좋은 과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보시하는 모든 행위를 닥키나라고 한다. 혹은 미래의 이익에 대한 믿음이 동기가 되어 제공된 대상물 역시 닥키나이다.
"네 가지 도를 닦는 자들과 네 가지 과에 머무는 자들 
이러한 승가는 올곧으며 통찰지와 계를 구족하였노라. {916}
공양 올려 공덕 찾는 생명체들이 재생을 가져오는 공덕 지으려
이런 승가에 보시하면 큰 결실이 있노라." {917}

- 『상윳따 니까야 제1권』 「공양하는 자 경」 (SN 11.16)

 

이런 승가는 무슨 승가인가?

빠라맛타 상가paramattha saṅgha, 즉 성인ariya 상가이다.

 

앞으로 승가 보시를 할 때마다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상수(上首)로 하여 양 옆에 자리한 비구·비구니 성인 상가 전체에 공양 올린다는 의도를 내며 공양해보는 건 어떨까?

 

 

2. 아래에 인용한 일창 담마간다 스님의 글에서 닥키나를 '윤회의 지참금'이라고 표현한 대목은 탁월하다.

  • 승가에 베푼 닥키나는 아라한이 되기 전, 윤회하며 태어나는 여러 생에서 선업의 좋은 바탕, 윤회의 지참금이 될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위해 베푸는 최상의 보시이다. 공덕은 죽음 이후에도 따라오는 자산이다.
  • 승가에 보시한 후 그 공덕몫patti을 회향pattidāna한다면 그 회향을 따라 기뻐하는anumodana 많은 이들에게 같은 이익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조상·부모·가족·친척·친구·천신 등 내 주변 존재들과 삼계의 모든 생명체들을 위해 베푸는dāna 최상의 보시이다.

 

3. 승가는 시주자의 보시를 청정하게 만들고, 그의 결실을 증폭시킨다. 이는 표현으로는 2가지이지만, 뜻으로는 같다.

  1. 승가는 시주자로 하여금 큰 결과를 얻게 하므로 보시받아 마땅하다(dakkhiṇeyya).
    • 거룩한 승단은 숩파티판노로 시작되는 원인이 되는 4가지 덕성을 구비했기 때문에 보시물을 시주자가 의도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승가는 청정하게 수행하기 때문에, 재가자들이 그들에게 보시(dakkhiṇā)할 때 가장 큰 공덕을 수확할 수 있는 밭(福田, Anuttaraṃ puññakkhettaṃ)과 같다는 의미이다.
    • 좋은 밭에 씨앗을 심으면 풍성한 수확을 얻듯이, 청정한 승가에 보시하면 그 과보가 매우 크다. 그런 의미에서 승단은 닥키나라는 내생의 이익을 바라고 정성스럽게 올리는 시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
  2. 승가는 시주자의 보시를 청정하게 만들기 때문에 보시받아 마땅하다(dakkhiṇeyya).
    • 이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는 MN142 「보시 분석 경Dakkhiṇā-vibhaṅga Sutta」 에 서술되어 있다. 이 경전에서 부처님은 시물의 ‘정화visuddhi’가 시주자 또는 수혜자의 계행에 의해 좌우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 품성이 바르고 계행이 청정한 자sīlavā가 행위의 결실phala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기쁜 마음으로 보시한다. 이렇게 청정한 시주자의 보시는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자dussīla에게 베풀어질지라도 보시하는 자에 의해 청정해진다. 즉, 시주자에게 큰 과보mahapphalā가 있게 된다는 말이다. 마치 숙련된 농부가 황무지 땅을 얻더라도 적절한 때에 밭 갈고 덩어리를 걷어내고 씨앗을 심어 밤낮으로 보호하여 방일하지 않아 다른 비옥한 땅에서 얻는 곡식보다 더 많이 얻는 것과 같다.(MA.v.76~77)
    • 반대로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자가 여법하게 얻지 않은 것을, 행위의 결실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며,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이 계행이 청정한 자들이라면 그러한 보시는 받는 자에 의해서 청정해진다. 즉, 수혜자의 공덕으로 인해 시물이 청정해져 시주자에게 큰 과보가 생긴다는 말이다.
    • 물론 계행이 청정한 자가 계행이 청정한 자들에게 보시한다면 그러한 보시는 훨씬 풍성한 과보를 가져온다. 이러한 보시의 극치는 아라한이 아라한에게 하는 보시다. 이는 세속적인 보시 가운데 으뜸agga이다.(MA.v.77)

 

4. MN142 「보시 분석 경Dakkhiṇā-vibhaṅga Sutta」 에 따르면, 어떤 개인에게 하는 보시도 승가를 향한 보시를 능가하지 못한다.

  • 14가지 개인에게 하는 보시pāṭipuggalika dakkhiṇa가 있다. 이 중 최고는 부처님에게 하는 보시, 최저는 축생에게 하는 보시다.
  • 7가지 승가에게 하는 보시saṅghagatā dakkhiṇā가 있다. 이 중 최고는 부처님을 우두머리로 하여 비구와 비구니 두 승가 모두에게 하는 보시, 최저는 일정한 수의 비구니에게 하는 보시다.
  • 부처님은 "개인에게 하는 보시가 승가에게 하는 보시보다 그 과보가 더 크다고 나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MN142.8)고 말씀하신다. 더하여 맛지마니까야 주석서에는 "개인인 아라한에게 보시하는 것보다 승가를 대표하여 승가에서 지정하여 준 사람이라면 그가 비록 계행이 나쁘더라도 그에게 보시하는 것이 공덕이 더 크다"고 말한다. (MA.v.75)
  • 이것을 알기에 부처님은 양모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부처님 개인에게 보시를 하길 원하고, 세존의 시자인 아난다 장로 역시 고따미의 개인에게 하는 보시를 세존께서 받아들이시기를 부처님께 부탁할 때에도, 어머니에 대한 연민anukampā으로 세존께만 보시하려는 의도cetanā를 승가와 세존 둘 모두에게로 향하게 하여 더 큰 이익과 행복을 어머니가 얻을 수 있게 가르쳐 주셨다. (MA.v.67)

 

5. 승가 보시의 공덕은 보시하는 의도에 따라 세밀하게 나뉜다. 의도의 범위가 클수록 공덕의 크기도 크다.

  • 부처님을 상수, 우두머리pamukha로 하는 비구와 비구니 두 승가에 보시한다는 것은 "한쪽에는 비구 승가가 있고 다른 쪽에는 비구니 승가가 있고 그 가운데 세존께서 앉아 계시는 것을 말한다"(MA.v.73). 이것은 승가 보시를 구분하는 첫 번째 기준이다. 궁극의 복전이신 부처님께서 직접 현존하시기 때문에, 이렇듯 승가 보시의 공덕 크기는 부처님 재세시에 따라 나뉜다.
  • 시주자는 비구와 비구니 두 승가에 보시한다는 의도를 낼 수도 있고, 비구 승가에게만, 혹은 비구니 승가에게만 드린다는 의도를 낼 수도 있다. 이것은 승가 보시를 구분하는 두 번째 기준이다. 승가 보시의 공덕 크기는 대상 승가의 범위를 구분짓느냐에 따라 나뉜다. 최고는 보시의 대상이 비구·비구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승가 전체를 향하는 것이다. 다만 승가를 구분 짓더라도 여기서 보시의 대상은 여전히 해당 범위의 승가 전체이므로, 스님 수(인원)의 한정은 없다. 시주자가 인원수를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아래 세 번째 기준과 다른 점이다.
  • 시주자는 여기에 더해 승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원수를 먼저 한정하여 몇 명의 비구와 비구니, 혹은 몇 명의 비구, 혹은 몇 명의 비구니를 자신에게 배정해 달라고 승가 배정uddissa을 요청하여 승가가 배정해 준 그분들에게만 보시하는 의도를 낼 수도 있다. 이것은 승가 보시를 구분하는 세 번째 기준이다. 승가 보시의 공덕 크기는 승가 모두를 포괄하는지, 인원을 지정하는지에 따라 나뉜다. 다만 인원수를 한정 짓더라도 보시자가 특정 스님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아래 네 번째 기준과 다른 점이다. 공양을 받는 스님은 소수이지만, 보시자의 마음은 그 스님들 개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승가 전체를 대표하는 분들'을 향해 있다. 즉, '승가'에 대한 보시라는 본질을 유지한다. 이를 통해 보시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호불호(좋아하는 스님, 존경하는 스님 등)를 배제하고 오직 '승가'라는 청정한 공동체에만 마음을 두게 된다.
  • 어떤 이는 승가에게 보시를 하려는 생각으로 승가에게 한 명의 스님을 추천받지만, '내가 한 명의 스님/장로/사미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승가에게 보시하리라는 생각과 다르게 한 개인에게로 마음이 기울었기 때문에 그의 보시는 승가에게 한 보시가 아니다. 대장로를 추천받고는 대장로를 얻었다고 기쁨somanassa을 일으키면서 한 보시도 승가에게 한 보시가 아니다(MA.v.74). 즉, 승가가 배정했더라도 개인에게로 마음을 기울이면 그것은 더 이상 승가 보시가 아니라 개인에게 하는 보시가 된다. 이것은 승가 보시를 구분하는 네 번째 기준이다. 보시자는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특정 스님을 선택한다. 보시자의 의도는 승가 전체를 향해 있지 않다.
  • 그러나 어떤 이는 사미건 비구건 신참이건 장로건 어리석은 자건 현명한 자건 어떤 이라도 승가에서 추천받고는 승가에게 보시하리라는 생각으로 승가를 존중하며 보시한다. 그의 보시는 승가에게 한 보시다(MA.v.74).
  • 부처님은 미래세에 자식과 아내를 두고, 직업으로 그들을 부양하며, 사문이라는 이름만 지닌 계행이 청정치 못한 무리들이 있을 것이라 말씀하신다. 흥미롭게도 붓다께서는 시주자들이 이들에게 '승가를 위해, 승가에게 보시한다'는 생각으로 하는 보시 역시 그 공덕을 헤아릴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승가에게 하는 보시는 승가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데, 승가를 존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MA.v.74)
  • 이렇듯 승가 보시를 구분하는 4가지 기준은 보시의 대상 범위(scope)에 따라 달라진다. 공덕의 크기는 대상의 범위가 넓고 포괄적일수록 더 크다. 의도가 작을수록 공덕의 크기도 차이가 난다. 보시자의 의도가 사방승가cātuddisa saṅgha, 즉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청정한 승가를 향해 있다면 의도 역시 광대해진다.
7. 열반을 위해 준비한 시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dakkhiṇeyyo)

'닥키나(dakkhiṇā)'는 이렇게 정의된다. 'Dakkhanti etāya sattā yathādippetāhi sampattīhi vaḍḍhantīti dakkhiṇā', 즉 '어떤 의도가 있으니, 그 의도를 통해 중생들은 자신이 되고 싶거나 지니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나 이룰 수 있는 복을 받는다. 바로 그 의도를 닥키나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나 시물이 닥키나로 불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내세를 믿지 않는 단멸론자라면 미래의 행복을 위한 보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아라한, 곧 부처님과 그분의 아라한 제자는 윤회의 근원적 원인이 되는 무명과 유애를 제거한 까닭에 새로운 존재로 재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2가지 근원적 원인이 모두 제거될 때까지 재생은 불가피하다. 비록 그가 단멸론자라 하더라도 그렇다. 마치 나무가 주근이 잘리지 않는 이상 계속 자라고 열매를 맺으며, 주근이 완전히 잘린 뒤에야 더 이상 성장할 수도 열매를 맺을 수도 없는 것과 같다. 이처럼 무명과 유애는 재생의 주근으로 이해해야 한다. 모든 범부와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는 이 2가지 주근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생하게 될 것이다. 오직 아라한을 얻을 때만 그 두 주근이 완전히 파괴되어 재생이 멈추게 된다.

단멸론이라는 사견을 지니지 않은 자만이 내생을 믿는다. 사후 존재를 신앙할 때만 내세에서의 행복을 위해 보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시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위가 완료될 때만 그가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결과로 성취될 것이다. 그리하여 내세에서의 선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보시하는 모든 행위를 닥키나라고 한다. 따라서 닥키나는 미래의 이익에 대한 믿음이 동기가 되어 제공된 대상물을 의미한다.

거룩한 승단은 위에 언급한 4가지 수승한 덕성을 구비했기 때문에 시물을 시주자가 의도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승단은 닥키나라는 시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닥키네요(dakkhiṇeyyo)라는 고상한 결과론적 덕성을 지니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이 있다. 거룩한 승단은 고상한 덕성들을 통해 시물에 이익을 안겨준다는 의미에서 시물을 정화한다. 다시 말해 'Dakkhiṇāya hito Dakkhiṇeyyo(시물에 공덕을 안겨주는 거룩한 승단)'인 것이다.

- 밍군 사야도 지음, 『대불전경 제10권』 pp.89~90, (주)한언(2009)
"계행이 청정한 자가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⁶²⁶⁾
그러한 보시는 보시하는 자에 의해 청정해진다.⁶²⁷⁾

⁶²⁶⁾ "숙련된 농부는 황무지 땅을 얻더라도 적절한 때에 밭 갈고 덩어리를 걷어내고 씨앗을 심어 밤낮으로 보호하여 방일하지 않으면 다른 비옥한 땅에서 얻는 곡식보다 더 많이 얻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계행이 청정한 자(sīlavā)가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자(dussīla)에게 보시를 하더라도 큰 결실(phala)을 얻을 수 있다."(MA.v.76~77)

⁶²⁷⁾ "'보시하는 자에 의해 청정해진다'는 것은 큰 과보가 있음(mahapphala-bhāva)에 의해 청정해진다. 즉 큰 과보(mahapphalā)가 있다는 뜻이다."(MA.v.76)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자가 계행이 청정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법답지 않게 얻은 것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받는 자에 의해서 청정해진다.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가 계행이 청정치 못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법답지 않게 얻은 것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어느 쪽에 의해서도 청정해지지 않는다.

계행이 청정한 자가 계행이 청정한 자들에게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풍성한 과보를 가져온다고 나는 말한다.

탐욕을 끊은 자가 탐욕을 끊은 자들에게⁶²⁸⁾
행위의 결실이 크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법답게 얻은 것을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할 때 
그러한 보시는 세속적인 보시 가운데 으뜸이라고 나는 말한다."

⁶²⁸⁾ "'탐욕을 끊은 자가 탐욕을 끊은 자들에게'라고 하셨다. 여기서 '탐욕을 끊은 자(vīta-rāga)'란 불환자(anāgāmī)를 말한다. 아라한은 탐욕을 완전히 끊은 자(ekanta-vīta-rāga)를 말한다. 그러므로 아라한이 아라한에게 하는 보시가 가장 으뜸(agga)이다. 아라한은 존재에 대한 집착(bhavālaya)과 존재에 대한 바람(bhava-patthana)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번뇌 다한 자는 보시의 과보를 믿지 않는가? 보시의 과보를 믿음에 번뇌 다한 자와 동등한 자가 없다. 그러나 번뇌 다한 자가 지은 행위(kata-kamma)는 이미 탐욕을 끊었기 때문에 선(kusala)이나 불선(akusala)이 아니며 더 이상 과보를 가져오지 않고 오직 작용만 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의 보시가 으뜸이라고 했다."(MA.v.77)
 
- 대림 스님 옮김, 『맛지마 니까야 제4권』 pp.529~531, 초기불전연구원(2021)
보시 받아 마땅한 승가

일곱 번쨰 승가의 덕목은 '보시 받아 마땅한dakkhiṇeyyo'이라는 덕목입니다. '지금 베푸는 선업 공덕으로 다음 여러 생에 좋은 과보가 있을 것이다'라고 믿으면서 베푸는 거룩한 보시dakkhiṇa를 받기에 적당하다eyya는 뜻입니다. '승가에 베풀면 현생에 다시 승가가 자신을 잘 보살펴 주고 여러 가지 세속적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베푸는 저열한 보시가 아니라 '승가에 베풀면 아라한이 되기 전, 태어나는 여러 생에서 여러 가지 선업의 좋은 바탕, 윤회의 지참금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위해 베푸는 거룩한 보시, 또한 '승가에 보시한 뒤 그 공덕몫을 회향한다면 그 회향을 기뻐하는 많은 이들에게 이익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친척이나 남을 위해 베푸는 거룩한 보시dakkhiṇā를 받기에 승가는 적당합니다.

다음생에 과보있다 믿으면서 베푸는것
보시받아 마땅한- 거룩한- 승가라네

- 비구 일창 담마간다 지음, 『가르침을 배우다』 pp.73~74, 도서출판 불방일(2021)
7) 닥키네이요

일곱 번째 승가의 공덕은 '닥키네이요(dakkhiṇeyyo)'입니다. '닥키네이야'는 뭔가를 바라면서 제사를 지내며 올리는 공양(pūjā뿌자)을 받을 만한 분들이라는 말입니다. 승가는 모두가 존경하고 의지하는 대상입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모실만한 대상들 중에서 최고라는 뜻입니다. 모든 중생들과 천신들이 모실만한, 제를 올릴 만한 대상이다, 공양을 올리는 대상이다, 존경의 대상이다, 확실한 의지처라는 말입니다. 의지처로 신을 모시듯이 승가는 그렇게 모실만한 자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승가가 왜 '닥키네이야'인가? 

...헌공이란 다가올 내생을 믿고 올리는 공양을 말한다. (승가는) 그런 공양을 받을만하다. 혹은 헌공에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큰 결과를 얻게 하여 공양물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시 받아 마땅하다.

우리가 누군가를 모신다고 할 때 일반적인 흔한 대상을 모시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은 이번 생에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모시는 겁니다. 종교를 믿으며 신을 모실 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모시는 것보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 내 지혜의 힘으로 모르는 부분들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생에 먹고 사는 문제는 사람들이 스스로 해결할 줄 압니다. 그런데 죽어서 어떻게 될까? 다음 생은 어떻게 살까? 이런 것을 위해서 종교나 신을 모시면서 다음 생에 내가 어떻게 되고 싶다는 기대치를 가지게 됩니다. 그때 모시는 승가가 진짜 그런 결과를 해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닥키네이야'입니다.

승가는 '닥키네이야'라는 공덕을 가지고 우리의 지혜가 높아질 수 있게, 공덕도 높아질 수 있게 해 줍니다. 전생, 이번 생, 다음 생의 여러 가지 지혜를 가르치며, '이번 생에 어떻게 살면 다음 생에 어떻게 될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또 선업의 공덕도 확실하게 되게끔 우리를 청정하게 도울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승가를 '닥키네이야'라고 말합니다. 승가는 이번 생만 아니고 다음 생을 위해서도 모실만한 존경의 대상이고 의지처라는 의미로 '닥키네이야'라고 합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545~546, (사)법승 담마야나(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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