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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청정도론

승가의 9가지 덕목 - ⑤ 멀리서 가져온 공양물을 받을만하다āhuneyyo고 말하는 이유 3가지

by Rihan 2025.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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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섯 번째 덕목 - 멀리서 가져온 공양물을 받을만한āhuneyyo

  • ā-: 가까이(near), ~를 향하여(towards) → '멀리서 가져온' 뉘앙스
  • √hu: 불에 제물을 바치다, 봉헌하다, 공양하다 → 신성한 대상에게 바치는 행위
  • -ana: 명사화 접미사 → huna: 시물로서의 4가지 필수품, āhuna: 멀리서 가져온 공양물
  • -eyya: ~할 만한, 받을 자격이 있는

아후네요 공덕의 핵심은 승가가 '멀리서 가져와 바치는 봉헌의 정당한 수혜자'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1. 승가는 시주자에게 큰 복덕과 공덕을 주기 때문이다.
    • 숩파티판노 등과 같은 원인이 되는 4가지 덕성을 갖춘 거룩한 승단이 시물을 받음으로써 시주자는 큰 공덕을 쌓게 된다.
    • 승가는 그런 보시자와 시물로 하여금 큰 과를 얻게 하기 때문에 보시물을 받기에 적절하다.
    • 공양받아 마땅하므로 거룩한 승단은 아후네요라는 결과론적 덕성을 구비한다.
  2. 승가는 찾아뵈어서라도 보시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많은 공덕을 쌓고자 하는 시주자는 승단이 탁발하러 올 때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멀리 있는 승원까지 가서 승단에 시주한다.
    • 그런 목적으로 멀리까지 가서 바치는 4가지 필수품을 아후나(āhuna)라고 한다.
    • 거룩한 승단은 그들이 갖추고 있는 4가지 덕성 때문에 그 시물들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거룩한 승가는 아후네요라는 결과론적 덕성을 구비한다.
  3. 승가는 신들의 왕인 삭까처럼 강력한 존재로부터 시물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 브라만교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불을 āhavanīya 라고 한다. 그들은 이 불에 제물을 태워 바침으로써 신들에게 공물을 전달하고 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따라서 불은 신성한 공양을 받는 매개체이자 그 자체로 존중받는 대상이 되었다. 
    • 그러나 부처님은 진정으로 공양받을 만한 대상은 번뇌를 태우고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거룩한 수행자들의 공동체, 즉 승가(Sangha)임을 바르게 가르치셨다. 희생의 불에 시주함으로써 이익을 얻고 그리하여 그것을 아하와니야라고 부를 수 있다면 시주자에게 크나큰 공덕을 안겨주는 거룩한 승단이야말로 진실한 아후네요이다. 왜냐하면 바라문교의 아하와니야는 그 어떤 실질적인 이익도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 희생의 불에 바친 공양물은 타서 재가 될 뿐이다. 그러나 4가지 원인이 되는 고상한 덕성을 지닌 거룩한 승단은 시주자에게 많은 공덕을 안겨주니 진실한 아후네요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승단은 아후네요라는 결과론적 덕성을 구비한다.

먼 곳에서 가져오는 것을 우리는 흔히 귀한 것이라 말한다.

귀한 것은 귀한 분이 쓰시기 마련이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귀한 분들이 성인(ariya) 상가이다.

이 여덟 종류의 성인들이 가장 고귀하므로, 그분들은 멀리에서 가져온 귀한 것을 보시받을 만하다.

 

5. 멀리서 가져온 시물이라도 받을 자격이 있는 자(āhuneyyo)

아후네요(āhuneyyo)에서 'ā'는 '멀리서 가져온 것조차', 'huna'는 '시물로서의 4가지 필수품', 'eyya'는 '받을 자격이 있는'이라는 뜻이다. 거룩한 승단은 숩파티판노 등과 같은 원인이 되는 4가지 덕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비구를 위해 4가지 필수품을 바치는 시주들에게 복덕을 안겨준다. 그러므로 시주자는 보시할 것을 준비했다면 거룩한 승단이 탁발하러 왔을 때 즐겁게 베풀어야 한다. 만일 그것을 지금 당장 갖고 있지 않다면 멀리에서라도 조달하여 베풀려고 애써야 한다. 이처럼 멀리서 가져와 제공된 것들을 '아후나(āhuna)' 라고 한다. 4가지 덕성을 갖춘 거룩한 승단은 멀리서 가져온 시물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 그 시물을 받음으로써 시주자는 큰 공덕을 쌓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승단은 아후네요라는 결과론적 덕성을 구비한다.

이와는 다른 해석이 있다. 거룩한 승단은 4가지 고상한 덕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시주자에게 많은 공덕을 쌓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은 공덕을 쌓고자 하는 시주자라면 승단이 탁발하러 올 때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멀리 있는 승원까지 여행해서 승단에 시주해야 한다. 그런 목적으로 여행을 한 뒤 바치는 4가지 필수품을 아후나라고 한다. 거룩한 승단은 그들이 갖추고 있는 4가지 덕성 때문에 그 시물들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거룩한 승단은 아후네요라는 결과론적 덕성을 구비한다.

다음은 이와는 또 다른 해석이다. 거룩한 승단은 신들의 왕인 삭카처럼 강력한 존재로부터 시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 까닭에 아후네요라는 속성을 구비한다. 다른 관점, 곧 바라문교 전통에서 보면 바라문 교도들은 아하와니야(āhavaniya : 아후네요와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다)라는 희생의 불을 지킨다. 그들은 이 불에 버터를 시물로 바치면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희생의 불에 시주함으로써 이익을 얻고 그리하여 그를 아하와니야라고 부를 수 있다면, 시주자에게 크나큰 공덕을 안겨주는 거룩한 승단이야말로 진실한 아후네요이다. 왜냐면 바라문교의 아하와니야는 그 어떤 실질적인 이익도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희생의 불에 바친 버터는 타서 재가 될 뿐이다. 그러나 원인의 위치에 있는 4가지 고상한 덕성을 지닌 거룩한 승단은 시주자에게 많은 공덕을 안겨주니 진실한 아후네요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숲 속에서 희생의 불을 100년간 돌보네.
또 다른 사람은 선정 속에 머무는 고상한 자들에게 단 한 번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시를 하네.
이 보시가 100년간 희생의 불을 보살핀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얻게 하네.

이상의 게송은 거룩한 승단이 지니는 아후네요라는 결과론적 덕성의 깊은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 밍군 사야도 지음, 『대불전경 제10권』 pp.87~88, (주)한언(2009)
94. 공양받아 마땅하고 등에 대해서: 가져와서 헌공할만한 것이 시물(āhuna)이다. 먼 곳으로부터 가져와서 계를 갖춘 자들에게 보시할만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네 가지 필수품의 동의어이다. 승가는 그런 [보시자와 시물]로 하여금 큰 과를 얻게 하기 때문에 시물을 받기에 적절하다. 그러므로 공양받아 마땅하다.

95. 혹은 먼 곳으로부터 직접 와서 모든 소유물을 여기 헌공할만하기 때문에 승가는 헌공 받을만한 자(āhavanīya)이다. 혹은 제석(Sakka, 삭까 = 인드라) 등도 헌공할만하기 때문에 헌공 받을만한 자다. 이런 바라문의 불을 아하와니야(Āhavanīya, 헌공 받을만한 자)라 한다. 그 불에 준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그들의 신조이다. 만약에 헌공한 것이 큰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헌공받을만한 자라 한다면 승가야말로 헌공 받을만한 자다. 왜냐하면 승가에 헌공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숲 속에서 백 년 동안 불을 섬길지라도
닦은 자들에게 단 한순간이라도 예배하면
이 예배는 백 년의 제사를 능가하리.(Dhp.107)"

...이 헌공 받을만한 자(āhavanīya)라는 단어는 여기서 말한 공양받아 마땅한 자(āhuneyya)라는 단어와 뜻은 같고 문자로만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공양받아 마땅한 자다.

- 대림 스님 옮김, 『청정도론 제1권』 pp.520~521, 초기불전연구원(2021)
5) 아후네이요

다섯 번째 승가의 공덕은 '아후네이요(āhuṇeyyo)'입니다. '아'는 어디 멀리에서 이렇게 향해 오는 것을 말합니다. 아후네이요는 멀리서 가져온 아주 귀한 것들을 보시해도 받을 만하다는 말입니다. 보시를 받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승가가 그렇게 대단한 분들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멀리 지구의 저쪽 끝에서 가져온 아주 귀한 것을 누구에게 보시할까? 그때 그런 것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 중에 최고가 성인입니다... 멀리에서 가져온다는 것이 아주 귀하다는 것인데 그런 귀한 것을 보시해도 받을 만한 자가 '아후네이야'이다, 승가는 그런 '아후네이야' 공덕을 갖추고 있다는 말입니다.

승가가 그런 공덕을 갖추고 있으니 누가 봐도 그렇게 주고 싶은 겁니다. 번뇌가 없고 깨끗하고 사고방식이 좋은 깨달은 승가가 너무 존경스럽고 좋아서 잘 해주고 싶기 때문에, 잘 해 주는 표현이 내가 멀리에서 어렵게 가져온 귀한 것을 보시하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에는 교통이 좋아서 먼 곳에서도 쉽게 가져오지만 옛날에는 아주 어려웠습니다. 요즘에는 가져올 수 있다고 해도 엄청나게 비싸지요? 먼 곳에서 가져오는 것은 귀하기 때문에 귀한 분에게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때 최고로 귀한 자가 성인(아리야)입니다. 수다원의 도에 이른 자, 수다원의 과에 이른 자... 아라한의 도에 이른 자, 아라한의 과에 이른 자. 이 여덟 분이 제일 고귀하므로 그분들은 멀리에서 가져온 귀한 것을 보시받을 만하다는 것입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543~544, (사)법승 담마야나(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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