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부처님의 9가지 덕목
4가지 종류의 붓다가 있다.
- Suta-buddha(문불, 聞佛)
- 수따(suta): 들음, 배움, 지식
- 깨닫지 못한 범부이지만, 이론적으로 사성제가 무엇인지 아는 분
- 가장 낮게는 사성제라는 단어 뜻 정도만이라도 배워서 알고 있는 일반 불자, 가장 높게는 아직 깨닫지 못한 삼장법사를 뜻한다.
- Catu-sacca-buddha(사제불, 四諦佛)
- 삽반뉴 붓다의 제자이기 때문에 사와까(sāvaka제자) 붓다라고도 부른다. 즉, 스승을 통해 깨달은 분이다.
- 사성제(사제, 네 가지 진리)를 배우고 → 배운대로 따라 실천하여 → 깨달음을 얻어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다.
-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이 소실되지 않고 아직 남아 있는 요즘 시대에 깨달았다면 그들은 모두 석가모니 붓다의 제자가 된다.
- Pacceka-buddha(벽지불, 辟支佛)
- paṭi(향하다) + eka(숫자 1) → Pacceka(분리된, 개별의, separately) / '물리칠 벽' + '지탱할 지' → 스스로 깨닫는다
- 정등각자가 출현하지 않았고, 그 분의 가르침이 모두 없어진 시기에 스스로 사성제를 알고 깨달음을 얻은 분
- 삽반뉴 붓다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 빳쩨까 붓다는 삽반뉴따 냐나(모든 것을 아는 지혜)가 없다.
- 빳쩨까 붓다는 삽반뉴 붓다만큼 큰 빠라미 공덕이 없기 때문에 제자들이 많이 없다.
- 동시에 한 분 뿐인 삽반뉴 붓다와 달리 동시에 몇몇 분의 빳쩨까 붓다가 있을 수 있다.
- Sabbaññu-buddha(일체지불, 一切智佛)
- 삽반뉴따-냐나Sabbaññutā-ñāṇa: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말한다.
- 삽반뉴 붓다는 사성제 및 알아야 할 모든 법을 스스로 바르게 깨달은 정등각자 부처님을 뜻한다.
- 삽반뉴따 냐나(sabbaññutā ñāṇa)를 갖춘, 스스로 깨달으신, 최초의 아라한이신, 대자대비를 가진 최고의 대 붓다이시다.
- 대 붓다는 아주 오랫동안 엄청난 양으로 빠라미를 해오셨기 때문에 그 동안 인연 지어진 중생들이 많아 제자들이 엄청나게 많다.
- 삽반뉴 붓다는 동시에 딱 한 분 뿐이다. 한 분의 삽반뉴 붓다의 가르침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다른 부처님이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이 남아 있는 지금은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다.
우리가 말하는 부처님의 9가지 덕목은 이 네 분의 붓다 중 4번째인 삽반뉴 붓다의 덕목이다.
모든 부처님께는 '삽반뉴', 즉 '모든 것을 안다'는 감히 엄두도 나지 않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 정도의 부처님이시기 때문에 9가지 덕목을 구족하시는 것일 테다.
¹⁹⁾ 일반적으로 네 종류의 부처님이 있다. ① 문불sutabuddha 聞佛은 많이 배운 비구를 뜻한다. ② 사제불catusaccabuddha 四諦佛은 번뇌가 다한 아라한을 뜻한다. ③ 벽지불paccekabuddha 辟支佛은 정등각자가 출현하지 않은 시기에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이를 말한다. ④ 일체지불sabbaññubuddha 一切智佛은 사성제와 함께 알아야 할 모든 법을 스스로 바르게 깨달은 정등각자 부처님을 말한다. 여기서는 네 번째인 일체지불의 덕목을 뜻한다.
- 비구 일창 담마간다 지음, 『가르침을 배우다』 p.41, 도서출판 불방일(2021)
먼저 수따 붓다는 아직 깨닫지는 못하였지만 이론적으로 사성제가 무엇인지 아는 분입니다. 수따(suta)는 들음, 배움, 지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수따 붓다는 최상의 의미로는 아직 깨닫지 못한 삼장법사를 말하고, 최하의 의미로는 사성제라는 단어의 뜻 정도만이라도 배워 알고 있는 일반 불자들을 말합니다.
그 다음 사와까(sāvaka제자) 붓다는 삽반뉴따 붓다의 제자로 사성제를 배우고 따라 실천하여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된 제자입니다... 이렇게 스승을 통해서 깨달은 분들을 사와까 붓다라고 합니다.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요즘 시대에 진짜 깨달았다면 그들은 모두 석가모니 붓다의 제자가 됩니다.
그 다음 빳쩨까 붓다는 벽지불입니다. 빳쩨까(pacceka)는 따로따로, 영어로 separately란 말인데, 삽반뉴따 붓다와 그 분의 가르침이 모두 없어진 후, 그때 혼자 따로 나오셔서 스스로 사성제를 알고 깨달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벽지불은 삽반뉴따냐나(모든 것을 아는 지혜)가 없고 삽반뉴따 붓다만큼의 큰 빠라미 공덕이 없기 때문에 제자들이 많이 없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몇몇 분의 빳쩨까 붓다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삽반뉴따 붓다는 삽반뉴따 냐나(sabbaññutā ñāṇa)를 갖춘, 스스로 깨달으신, 최초의 아라한이신, 대자대비를 가진 최고의 대 붓다이십니다. 대 붓다는 아주 오랫동안 엄청난 양으로 빠라미를 해오셨기 때문에 그 동안 인연 지어진 중생들이 많아서 제자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딱 한 분 뿐입니다. 한 분의 붓다 가르침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다른 부처님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아직은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은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입니다.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삽반뉴따 붓다는 모든 중생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사성제를 스스로 바르게 깨닫고 그때 바로 삽반뉴따냐나를 가지게 되는 최초의 아라한이고, 빳쩨까 붓다는 스스로 사성제를 깨닫지만 최초도 아니고 삽반뉴따 냐나도 없는 아라한이고, 사와까 붓다는 스승의 도움으로 사성제를 깨닫는 제자 아라한입니다. 물론 삽반뉴따 냐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수따 붓다는 사성제를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는 깨닫지 못한 범부입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287~288, (사)법승 담마야나(2017)
한국에서는 여래 십호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아눗따로'와 '뿌리사담마사라띠'를 각각의 덕목으로 나누었을 때 10개라고 보는 것이다.
테라와다 전통은 이 2가지를 하나로 보기 때문에 9가지 덕목만을 말한다.
1. 9가지 덕목을 모두 말할 때
Itipi so Bhagavā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Arahaṁ 모든 번뇌로부터 떠나셔서 특별한 공양을 받을 만한 분이시며,
Sammāsambuddho 스스로 바르게 깨달은 분이시며,
Vijjācaraṇasampanno 지혜와 실천을 구족한 분이시며,
Sugato 바른 말을 하시고 열반으로 잘 가신 분이시며,
Lokavidū 모든 세상을 잘 아시는 분이시며,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길들일 만한 이들을 가르치는 데 가장 최고인 분이시며,
Satthā devamanussānaṁ 천신과 인간의 스승인 분이시며,
Buddho 일체지를 깨닫고 다른 이들도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시며,
Bhagavā. 여러 가지 공덕을 모두 구족한 분이십니다.
2. 특정 덕목만을 말할 때
So bhagavā itipi arahaṁ 그 세존께서는 이와같이 또한 아라한이십니다.
- Iti는 '이와 같이', 'thus'의 뜻이다. Pi는 '또한, 역시', 'also, too'의 의미를 지닌다. 합쳐서 "이와같이 또한"이 된다.
- 그러나 여러 번역본에서 itipi는 '이런 이유로'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이것은 직역이라기보다 의역으로 보인다.
- 이렇게 해석한다면 "이런 이유로 세존께서는 무엇 무엇이다"가 될 것이다.
- So는 3인칭 단수인 '그, he'라는 뜻이다.
나머지 용어들은 모두 부처님의 구체적인 9가지 덕목을 나타낸다. 해당 덕목들은 다음 글에서 하나씩 살펴볼 것이다.
그 전에 알아야 할 것은 '왜'와 '어떻게'이다.
우리는 왜 부처님 공덕 9가지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까?
그리고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이익을 어떤 원리로 생겨나게 하는 걸까?
미얀마에서는 삼보, 부처님 공덕, 가르침 공덕, 승가 공덕을 일러 3 · 9 · 6 · 9라는 숫자 네 가지로 말한다고 한다.
미얀마에서는 3 · 9 · 6 · 9라는 숫자 네 가지를 잘 사용합니다. 3(삼보), 9(부처님의 공덕 9가지), 6(법의 공덕 6가지), 9(승가의 공덕 9가지)입니다. 한국에서 108이란 숫자를 좋아하듯이 미얀마에서 3 · 9 · 6 · 9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08이란 숫자는 부처님의 발바닥에 있는 문양이 108가지임을 말합니다. 그것은 언제나 생기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이 '이제 내 발바닥 모습을 보여 주어야지.'라고 하면서 마음을 일으키면 땅에 발자국으로 그 모습이 나타납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437, (사)법승 담마야나(2017)
부처님의 공덕을 ① 바르고 자세히 안 뒤, ② 독송하거나 암송하면 → ① 지혜에 기반한 ② 수승한 선업, 맑은 믿음을 성취한다.
- '붓다는 어떤 분인가?'라고 확실하게 알면서 한 번 올린 삼배가, 모르고 올린 백팔 배, 삼천 배, 만 배보다 더 무게가 있다. 즉, 의미를 모르고 행하는 선업은 선업이지만 지혜 없는 저열한 선업이다.
- 진정한 불자에게는 믿음 밑에 지혜가 깔려 있어야 된다. 쉽게 말하면 '알고 믿어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맹목적이거나 틀리게 믿게 된다. 이것은 ① 그 원리를 모르고 믿는 것, ② 이익과 불이익을 구분하지 못하고 믿는 것이므로 사견을 믿는 것과 같게 된다.
-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된 믿음이 생긴다. 올바른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하다.
- 붓다를 믿는다고 하면 붓다가 어떤 분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붓다께서 어떤 분이시고, 무엇을 깨달아 성자가 되셨는지를 제대로 알고, 그때 생기는 지혜의 힘으로 믿고 귀의해야 한다.
- 뜻을 알고 독송하고 암송할 때 '붓다누사띠' 수행은 희열과 행복으로 부처님을 친견하는 시간이 된다. 부처님의 공덕을 아는 사람의 마음속에 불탑이 세워진다. 바깥의 탑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고, 내 마음속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것과 같다.
붓다의 공덕을 바르게 알고 깊이 마음에 새기면서 독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붓다는 어떤 분인가?'라고 확실하게 알면서 한 번 올린 삼배가, 모르고 올린 백팔 배보다, 삼천 배보다, 만 배보다 더 무게가 있습니다. 의미를 모르고 무조건 부처님께 절하는 것은 선업은 선업이지만, 타 종교인들이 신을 믿는 것과 똑같습니다. 진정한 불자에게는 믿음 밑에 지혜가 깔려 있어야 됩니다. 지혜 없는 믿음은 사견을 믿는 것과 같습니다. 맹목적인 믿음이지요. 불자의 믿음은 뿌리가 무엇입니까? 지혜입니다. 알고 믿어야 됩니다. 붓다를 믿는다고 하면 붓다가 어떤 분인지를 먼저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붓다께서 어떤 분이시고, 무엇을 깨달아 성자가 되셨는지를 제대로 알고, 그때 생기는 지혜의 힘으로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빨리어로 삿다(saddha)인데 '맑다'는 뜻이 있습니다. 삿다(믿음)가 왜 맑음인가요? 지혜로 알기 때문에 맑습니다... 붓다에 대해서 바르게 알면 내 마음이 투명하게 맑고 깨끗해집니다. 그런 맑은 마음을 믿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된 믿음이 생기고, 제대로 알지 못하면 맹목적으로 믿거나 절대적으로 믿거나 아니면 틀리게 믿게 됩니다. 믿음도 틀릴 수가 있습니다. 특히 지혜가 없는 믿음은 틀릴 수가 있습니다. 올바른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321~322, (사)법승 담마야나(2017)
"붓도, 붓도..." 이렇게 독송하면서 들어 보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만큼 가치 있는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을 겁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안 좋은 소리만 많이 했습니다. 가치 없는 말, 쓸데없는 말만 많이 하고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틈만 나면 부처님 공덕을 많이 독송하십시오. 진짜 가치 있는 소리입니다... 뜻을 알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뿌듯하고 얼마나 행복합니까! ...'붓다누사띠' 수행하는 것이 부처님을 친견하는 시간입니다. 부처님의 공덕을 아는 사람의 마음속에 불탑이 세워집니다. 바깥의 탑을 돌아다닐 필요 없습니다. 내 마음속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457~458, (사)법승 담마야나(2017)
부처님 공덕을 거듭 반복해서 되새기는 것의 대표적인 효과는 ① 두려움이 사라지고 ② 신심이 증장한다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부처님의 9가지 덕목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마음 속으로 외우거나, 소리내어 크게 독송한다.
이렇게 부처님의 덕목을 계속 독송하고, 마음에 되새기는 수행을 붓다눗사띠buddhānussati라고 한다.
부처님을 거듭 숙고하는 것, 부처님을 거듭 마음에 새기는 수행이다.
거듭거듭(punappunaṁ) 일어나기 때문에 마음챙김(sati)이 바로 '계속해서 생각함(anussati, 수념)'이다.
- 대림 스님 옮김, 『청정도론 제1권』 p.477, 초기불전연구원(2004)
이처럼 이것은 부처님의 덕들을 계속해서 생각함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에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함(불수념)이라 부른다.
- 대림 스님 옮김, 『청정도론 제1권』 p.508, 초기불전연구원(2004)
- puna(다시, again) → Punappunaṃ(거듭거듭)
- anu(반복적으로, 따라서) + sati(마음챙김, 새김, 기억) → anussati(계속해서 생각함, 수념 - 따를 수, 생각 념)
- 즉 anu가 punappunaṃ를 의미하며, 아눗사띠는 거듭거듭 사띠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무엇을 거듭거듭 사띠하는가? 특정 공덕 대상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것이다.
다만 위에 인용한 청정도론 477쪽 문장은 아눗사띠가 거듭거듭 일어나는 것임은 잘 드러내지만, '사띠가 곧 아눗사띠'라고 독자들이 오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확하게는 “거듭거듭(anu anu) 일어나는 사띠(sati)가 곧 아누사띠(anussatī)다"라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눗사띠는 지금 이 순간 물·심의 현상을 주의깊게 알아차리는 사띠 수행과는 그 맥락이 다르다.
이것은 주로 부처님의 공덕과 같은 특정 공덕 대상을 반복적으로 되새기고 숙고하고 마음챙기는 특정 범위의 수행을 말한다.
따라서 아눗사띠는 사띠의 하위 개념이자 특정 공덕을 대상으로 반복성이 강조된, 특정한 맥락의 사띠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붓다눗사띠를 구체적으로 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 처음에는 부처님의 아홉 가지 공덕을 순서대로 암송한다.
- 그러다가 어느 하나가 본인의 마음에 와 닿으면 그 하나를 집중적으로 암송해도 좋다.
그런 붓다의 공덕이 아홉 가지 있습니다. 붓다를 계속 생각하는 수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으로 적절한 거처에 조용히 머물면서 부처님의 아홉 가지 공덕을 암송하는 것을 '붓다누사띠'라고 합니다. 붓다(부처님을), 아누(반복해서), 사띠(기억하고 있는 수행). 붓다누사띠를 할 때 처음에는 부처님의 아홉 가지 공덕을 순서대로 암송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하나가 본인의 마음에 와 닿으면 그 하나를 집중적으로 암송하시면 됩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307, (사)법승 담마야나(2017)
우리는 아눗사띠 수행을 통해 경외심·신심·희열 등 건강하고 맑은 마음이 생겨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부처님의 아홉 가지 공덕을 계속 마음속에 숙지하고 있으면 그때 수행자의 마음은 탐욕에 얽매이지 않고, 성냄에 얽매이지 않고, 어리석음에 얽매이지 않게 되고 또한 그의 마음은 여래를 의지하여 올곧아집니다. 이와 같이 탐 · 진 · 치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오장애를 억압하고 올곧은 마음을 가질 때 부처님의 공덕을 향해 위딱까(일으킨 생각)와 위짜라(지속적 고찰)가 일어납니다. 위딱까와 위짜라가 되면 희열도 생깁니다. 희열이 생기면 편안함(빳삿디)으로 몸과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지면 행복이 일어납니다. 행복한 수행자는 부처님의 공덕을 대상으로 하여 삼매(집중)에 들게 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따라 어느 한 순간에 선의 구성요소들이 일어납니다. 부처님의 공덕은 심오하기 때문에 이 선정은 본삼매에는 들지 못하고 근접삼매까지만 됩니다. 이것을 붓다눗사띠 수행이라고 합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474, (사)법승 담마야나(2017)
참고로 사마타 수행주제 중에서 자신이 닦고 있는 본 수행주제를 심한 번뇌들로부터 보호하는 네 가지 보호명상이 있다.
붓다눗사띠는 그 중 첫 번째로 꼽힌다.
- 부처님을 거듭 숙고하는 것(Buddhānussati)은 어리석음과 두려움, 고통이 클 때 믿음과 안정감을 고양시킨다.
- 자애(mettā)는 심한 성냄과 원한, 악의를 제거한다.
- 더러움(asubha)은 몸의 혐오스러움에 계속 마음을 기울여 심한 애착, 이성에 대한 애욕을 제거한다.
- 죽음을 거듭 숙고하는 것(maraṇassati)은 자만과 게으름을 제거한다.
²⁶⁹ 『앙굿따라 니까야』에서는 "애착을 제거하기 위해 더러움을 닦아야 한다. 성냄을 제거하기 위해 자애를 닦아야 한다. 사유를 단절하기 위해 들숨날숨새김을 닦아야 한다. 나라는 자만을 뿌리 뽑기 위해 무상인식을 닦아야 한다"라고(A9:1) 설하셨다... "현자는 부처님 새김을 통해 믿음을 확고히 하고 죽음을 통해 자만을 제거하고 더러움을 통해 애착을 제거하고 자애를 통해 성냄을 제거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 비구 일창 담마간다 지음, 『가르침을 배우다』 p.388, 도서출판 불방일(2021)
사마타란 '고요하게 한다, 가라앉힌다sameti'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어떠한 대상에 의도적으로 계속 마음을 두어 다른 장애나 번뇌를 가라앉히는 수행입니다. 그렇게 하여 일정 기간 장애나 번뇌가 전혀 생겨나지 않고 한 대상에 몰입된 상태인 선정jhāna이 생겨납니다.
- 비구 일창 담마간다 지음, 『가르침을 배우다』 p.386, 도서출판 불방일(2021)
부처님 거듭새김, 붓다눗사띠를 많이 행하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이익들이 있다.
-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 믿음이 깊어지고 사띠, 지혜가 깊어진다. 이를 통해 해야 할 일을 잘 하게 된다.
- 희열을 느끼고 행복감이 커진다. 이를 통해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고통을 감내하기 쉽다.
- 부처님과 항상 함께하는 것 같은 인식을 가진다. 따라서 양심(부끄러움)과 수치심(두려움)이 발달한다.
- 부처님이 항상 내 마음 속에 계시므로 내 마음이 부처님 마음처럼 되고, 내 몸도 부처님을 모신 탑처럼 예경을 받는다.
- 붓다눗사띠로 생기는 희열, 삼매를 대상으로 위빳사나를 하면 깨달을 수 있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더라도 선처로 인도된다.
부처님은 온 세상을 덮는 공덕, 만 개의 우주를 지배하는 신통력,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갖추신 삼계의 최고 영웅이시다.
따라서 그러한 부처님을 아눗사띠하는 것의 이익은 강력한 세간의 이익, 선처의 이익, 출세간의 이익을 모두 다 가져다 준다.
한 마디로 붓다눗사띠는 '여러 수행주제 중에서도 으뜸'이다.
당연하게도 으뜸인 분을 마음으로 거듭 생각하는 자에게는 으뜸인 결과가 생겨난다.
67. 이러한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함을 닦는 비구는 천인사를 존중하고 천인사에 순종한다. 믿음이 깊어지고 마음챙김이 깊어지고 통찰지가 깊어지고 공덕이 깊어진다. 희열과 기쁨이 커지고,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천인사와 함께 사는 것 같은 인식을 얻는다. 부처님의 공덕을 계속해서 생각함을 항상 몸속에 지니고 있을 때 그의 몸도 탑묘처럼 예배를 받을만하다. 그의 마음은 부처님의 경지로 향한다. 계를 범할 대상을 만날 때 마치 면전에서 천인사를 대하는 것처럼 양심과 수치심이 나타난다. 더 이상 통찰하지 못한다하더라도 적어도 선처로 인도된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자는 항상 게을리 하지 말지니
이처럼 큰 위력(anubhāva)을 가진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함을.
- 대림 스님 옮김, 『청정도론 제1권』 pp.508~509, 초기불전연구원(2004)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여러 번뇌로부터 멀리 떠날 수 있습니다. 마음에 간교함이나 속임이 없이 곧고 올바르게 됩니다. 믿음과 지혜가 늘어납니다. 몸과 마음이 행복합니다. 평상시에, 혹은 수행 중에 생겨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심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들도 잘 참을 수 있게 됩니다. 부처님의 덕목이 자신의 심장에 가득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다른 이의 공경을 받을 만한 덕목을 갖추게 됩니다. 더 나아가 항상 부처님과 함께 지내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부처님께서 바로 자신의 앞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나쁜 행위를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여 악행을 쉽게 저지르지 못합니다... 이 부처님 거듭새김 수행을 통한 희열이나 삼매를 바탕으로 위빳사나 수행을 하면 깨달음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설령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음 생에 천상에 태어나는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Vis.i.205).
...부처님께서는 "...부처님 거듭새김 수행은 40가지 수행주제 중에서도 매우 좋고 특별한 수행주제이다. 부처님 거듭새김 수행을 많이 행한다면 그대의 서원은 성취될 것이다"...
수행하라, 부처님 거듭새김 수행을
여러 수행 중에서도 위가 없는 수행을
부처님 거듭새김 수행하고서
마음으로 바라는 것 이룰 것이다.
난다 선인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부처님 거듭새김 수행을 계속해서 닦았고, 죽은 뒤에 선처에만 거듭 태어났습니다.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거룩한 가문에, 천상 세상에 태어나도 위력이 큰 천신으로 태어나다가...
앞서 제3장에서 부처님의 덕목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바라밀, 복덕, 위력을 구족한 부처님께 깨끗한 마음으로 존경하고 예경하는 이에게는 어느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익이 생겨납니다. 다른 수행주제들은 선정이나 도와 과, 열반의 이익을 주로 가져다주지만 부처님 거듭새김은 그러한 출세간의 이익뿐만 아니라 윤회하는 내내 세간의 이익까지 모두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여러 수행주제 중에서도 으뜸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부처님을 존경하는 이들은 으뜸인 분을 존경하는 것이다.
으뜸인 분을 존경하는 이에게는 으뜸인 결과가 생겨난다. (A4:34)
- 비구 일창 담마간다 지음, 『가르침을 배우다』 pp.391~395, 도서출판 불방일(2021)
『청정도론』 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처님을 스승으로써 매우 존경하고 잘 받드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 세상에 부처님보다 더 좋은 스승이 없다.'..
둘째, 믿음과 사띠와 지혜가 엄청나게 커집니다. 수행이 안 될 때 부처님 공덕을 많이 독송해 보세요. 그러면 믿음이 생기고 사띠가 좋아집니다... 호흡이 아주 쉽게 보이고... 수행하는 일이 뭐든지 쉽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수행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부처님 공덕을 깊이 새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렇게 되면 보람을 느끼게 되고 매우 기쁘게 됩니다. 즉 삐띠(pīti희열)와 빠뭇자(pāmujja행복감)가 많아집니다.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함이 엄청나게 많아지면서 수행하는 것이 재미있고 수월해집니다. 수행하다가 힘이 빠지고 믿음이 떨어질 때 부처님 공덕을 암송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넷째, 무서운 것을 잘 견디는 힘이 생깁니다. 부처님 공덕을 수행하는 사람은 무서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다섯째, 힘든 일이 생겨도 고통을 잘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여섯째, 부처님과 같이 살고 있다는 인식을 얻게 됩니다. 부처님이 내 옆에 계시는 것 같고 부처님이 내 앞에 앉아 계시는 것 같고 살아 있는 부처님을 내가 모시며 살고 있다는 그런 마음이 생깁니다. 부처님 공덕을 계속 암송하면 부처님이 진짜 나와 같은 시대에 존재하는 스님같이 느껴집니다. 부처님의 공덕이 부처님의 존재감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진짜 살아 계시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일곱째, 부처님의 공덕을 항상 새기고 있는 사람은 몸이 탑이 되어 예경을 받게 됩니다. 이 때 탑은 돌로 쌓아 만든 외형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안에 든 '쩨띠야(cetiya존경의 대상)'를 말합니다. 탑은 '쩨띠야'의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탑에 절을 하는 것은 탑 속에 들어 있는 귀한 '쩨띠야'에게 하는 것입니다. '쩨띠야'는 탑 안에 있는 부처님의 사리나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 등을 말합니다. 탑을 만들 때 안에 넣는 것을 '쩨띠야'라고 하는데, 다뚜쩨띠야(dhātucetiya)는 부처님의 사리를 의미하며, 빠리보가쩨띠야(paribhogacetiya)는 부처님께서 생전에 사용하시던 발우, 가사, 지팡이, 깨닫기 위해 앉았던 보리수나무 등 신성한 유물이며, 웃딧사쩨띠야(uddissacetiya)는 생전의 부처님 모습을 참고로 해서 그대로 만든 불상인, 팔정도를 의미하는 바퀴 등 부처님과 부처님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불상을 넣으면 그것이 탑이 됩니다. 불상이 있기 때문에 법당이 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상이 쩨띠야입니다. 다른 쩨띠야가 들어 있으면 그 쩨띠야의 집이지 탑은 아닙니다. '쩨띠야'는 안에 있는 내용물을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부처님 공덕을 계속 마음에 새기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 부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부처님 마음처럼 되고, 내 몸이 탑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몸이 탑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보면서 존경하고 나에게 고개 숙이고 절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내 마음속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내가 탑같이 존경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 무슨 일이 생겨도 부처님을 기억하고 있으면 나쁜 일을 하려고 하다가도 부끄러워서 하지 않게 됩니다. 계를 범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옆에서 보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나쁜 짓을 못 합니다. 그렇게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많아집니다. 선업 할 때는 선업 못하는 것이 부끄럽고 불선업 할 때는 불선업 하는 것이 부끄럽고, 선업 못 할 때 무섭고 불선업 할 때 무섭고, 그런 마음들이 많아지면 점점 불선업을 못하게 되고 선업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아홉 번째, 끝으로는 최하로 깨닫지 못하더라도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가게 됩니다. 부처님 공덕을 마음에 새기면 깨닫지 못 하더라도 죽어서는 선처로 간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공덕을 열심히 새기면 이런 효과들을 얻을 수 있음을 알고 부처님의 공덕의 힘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이처럼 큰 위력을 가진 부처님의 공덕을 항상 계속해서 생각하는 수행을 잊지 말고 열심히 하세요.
압빠마다(잊지 않으면서)... 부처님의 아홉 가지 공덕을 마음에 깊이 새기면... 그 지혜와 믿음을 바탕으로 팔정도 수행을 더 열심히 하게 되겠지요? 후대의 큰스님들께서 이렇게 열심히 붓다눗사띠 수행을 하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474~477, (사)법승 담마야나(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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