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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대념처경

마음챙기는 공부의 다섯 가지 요점

by Rihan 2022.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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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마음챙김의 대상은 ‘나’ 자신이다.
내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내 밖은 큰 의미가 없다.
왜? 해탈 열반은 내가 성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부’ 제 1경인 ‘범망경’ 등에서도 부처님께서는 ‘바로 내 안에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고 하셨다.

대념처경에서는 이러한 나 자신을 몸, 느낌, 마음, 심리현상들로 나누고
이를 다시 몸은 14가지 느낌은 9가지 마음은 16가지 법은 5가지로 더욱 더 구체적으로 세분해서

모두 44가지 대상으로 나누어서 그 중의 하나를 챙길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물론 이런 바탕 하에서 때로는 밖의, 즉 남의 신, 수, 심, 법에 마음을 챙기라고도 하고 계시며
때로는 나와 남 둘 다의 신, 수, 심, 법에도 마음챙기라고도 설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 출발은 항상 나 자신이다.

 

둘째, 무엇보다도 개념적 존재의 해체가 중요하다.
이것이 마음챙김의 대상을 신, 수, 심, 법으로 해체해서 제시하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역자는 파악한다.

…(중략)…

개념적 존재는 그 실체가 없다.
그러나 중생은 개념적 존재를 나니 남이니 하여 분별하고 갈애를 일으키고 집착한다.

개념적 존재를 최소단위인 법들로 해체해서 보면 거기에는 나도 남도 내 것도 남의 것도 없다.
거기에는 단지 제법의 일어남과 사라짐만이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개념적 존재를 해체해서 드러나는 법들은 결코 불변하는 존재론적인 최소단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초기경과 아비담마에서는 결코 제법을 있다, 없다는 유무로 파악하지 않는다.

오직 제법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samudaya-vaya)으로 파악한다.

…(중략)…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에 의하면 이러한 최소단위인 법들은 모두 찰나적인 것이고
그러므로 근본적으로는 괴로운 것이며
조건따라 생긴 것이기에 실체가 없다.

초기경과 아비담마 그 어디에도 법을 실재론적으로 이해한 곳은 없다.

이처럼 개념적 존재를 법들로 해체하게 될 때 무상, 고, 무아라는 제법의 보편적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면 더 이상 개념적 존재를 두고 갈애와 무명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그래서 해체는 중요하다.
해체의 중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

중생들은 무언가 불변하는 참나를 거머쥐려 한다.
이것이 모든 취착 가운데 가장 큰 취착이다.

그래서 초기경 곳곳에서 부처님께서는 오온무아를 설하셔서 나라는 존재는 오온의 일시적인 집합에 지나지 않음을 거듭 천명하고 계시며 대념처경에서는 실참수행의 측면에서 이런 나를 몸, 느낌, 마음, 심리현상들로 해체해서 마음챙길 것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이렇게 해체해서 통찰하지 못하면

진아니 대아니
마음이니 본자청정이니
여래장이니 불성이니
주인공이니 자성청정불이니
심즉시불이니 중생즉불이니 하는

개념적 명제에 함몰되기 마련이다.

…(중략)…

해체하지 못하면 개념적 존재(paññatti)에 속는다.
해체하면 법(dhamma)을 보고 지금 여기서 해탈, 열반을 실현한다.

 

셋째, 마음챙김은 대상이 중요하다.
이런 마음챙김의 대상을 몸, 느낌, 마음, 법의 네 가지로 집대성한 것이 대념처경이다.

…(중략)…

대념처경은 거친 대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미세한 대상으로 나열하여 들어간다.
그러나 대념처경에서 나타난 순서대로 21가지 혹은 44가지 대상을 모두 다 챙기고 관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청정도론 18장에 의하면 먼저 물질적 현상, 즉 몸을 챙겨서 몸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인 줄 살피고 다시 이것을 바탕으로 이런 물질을 보는 마음과 심리현상들도 역시 무상이요 고요 무아라고 통찰하는 과정으로 수행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몸에 대한 마음챙김이 항상 선행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몸에 마음챙기는 경’(염신경, M119)이 따로 설해졌으며
그 가운데서도 다시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는 모든 수행법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경’(출입식념경, M118)이 따로 독립되어 설해졌다고 본다.

그리고 청정도론에 의하면 스승은 수행자에게 그의 기질에 따라서 특정 명상주제를 정해준다.
그러므로 대념처경에 나타나는 이들 21가지 대상 가운데 어느 하나를 대상으로 해서 집중적으로 챙기면 될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스승의 지시에 따라 대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실참수행에서 스승의 지도는 아주 중요하다.
구체적인 수행법은 지도자를 만나서 배워야 할 것이다.

눈 밝은 지도자를 쉽게 만날 수 없는 요즘 현실을 감안할 때 옛 스님들의 안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주석서를 바탕으로 한 본서의 중요성은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넷째, 마음챙김으로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통합하고 있다.

불교수행법은 크게 사마타 수행과 위빳사나 수행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지로 한역되었고, 후자는 관으로 한역되었으며..(후략)

그리고 사마타는 삼매 수행과 동의어이고
위빳사나는 통찰지 수행과 동의어이다.

청정도론에서도 전자는 ‘정품’(III장-XIII장)에서 40가지 명상주제를 통해서
익힌 표상과 닮은 표상을 일으키고 이것에 집중하여 본삼매를 증득하는 삼매 수행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후자는 ‘혜품’(XIV장-XXIII장)에서 82법의 고유성질과 연기성을
각각 찰나와 조건으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5청정을 닦아서 10가지 위빳사나의 지혜를 체득하여
해탈 열반을 성취하고 성자가 되는 통찰지 수행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대념처경은 마음챙김을 통해서 이러한 사마타와 위빳사나 수행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다.
사실, 그것이 집중이던 관찰이던 마음챙김이 없이는 불가능이다.

그리고 집중을 강조하는 사마타(삼매)의 경지에서는 위빳사나가 불가능하고
관찰이나 통찰을 강조하는 위빳사나(통찰지)의 경지에서는 본삼매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둘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마타는 찰나생, 찰나멸하는 법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표상(nimitta)이라는 개념적 존재(paññatti)를 대상으로 하고 위빳사나는 찰나생, 찰나멸하는 법(dhamma)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어떤 것이든 마음챙김이 없이는 표상에 집중하는 사마타도 법의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는 위빳사나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마음챙김은 이런 두 종류의 수행에 공통적으로 중요한 심리현상이다.

 

다섯째, 대념처경은 사성제를 관찰해서 구경의 지혜를 증득하는 것으로 결론 맺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무상, 고, 무아의 삼특상 가운데서 고의 특상과 그 원인과 소멸과 소멸에 이르는 길을 꿰뚫어 아는 것으로, 해탈 열반을 성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중략)…

대념처경의 주석은 모두 고, 집, 멸, 도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청정도론에 의하면 해탈에는 세 가지 관문이 있다.
그것은 무상, 고, 무아이다.

무상을 꿰뚫어 알아서 체득한 해탈을 표상 없는 해탈이라 하고,
고를 꿰뚫어 알아 증득한 해탈을 원함 없는 해탈이라 하고,
무아를 꿰뚫어 알아 요달한 해탈을 공한 해탈이라 한다.

대념처경은 그러므로 고를 통찰하는 원함 없는 무원의 해탈로 결론짓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성제를 철견하는 것이야말로 초기경에서 초지일관되게 설명하고 있는 깨달음이요 열반의 실현이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은 불교 수행법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후략)

…(중략)…

그러므로 본서를 정독한다면 대념처경과 주석서 문헌이 전하고자 하는 실참수행법을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역자의 관점을 가급적이면 자제하였음을 밝힌다.

 

 

 

출처: 각묵스님 지음, '네가지 마음챙기는 공부', 초기불전연구원(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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