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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는 북방 구사론에 나타나는 여러 시간 단위를 비교해서 보면 75분의 1초에 해당하는 시간이라 합니다.
상좌부의 심찰나는 물질보다 다시 16배가 더 빠르므로 75*16=1,200 하여 1,200분의 1초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산술적인 시간 개념이 아니라,
찰나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의 특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라 보면 됩니다.
즉, 예를 들면 분노라는 법이 분노라는 특징을 유지하는 최소의 시간이 1,200분의 1초라는 말입니다.
찰나는 다시 더 작은 여러 시간으로 나눌 수 있지만 찰나를 더 나누게 되면 이러한 법의 고유성질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찰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옛 아라한 스님들의 한결같은 말씀입니다.
찰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할 것이고, 사물을 분해하고 해체해서 보는 훈련을 해야할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을 우리는 위빳사나 수행이라 합니다.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매 순간 관찰한다든지, 호흡에 따라서 일어나고 꺼지는 복부의 운동을 매 순간 관찰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정념, 정지)을 통해서 집중하고 관찰하는 훈련을 합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위빳사나 수행이라 합니다.
찰나를 이해하기 전에는 존재론적인 실체를 상정하고 그것을 자아니 대아니 마음이니 주인공이니 하는 여러 이름으로 부르지만,
찰나를 이해하면 이런 실재론적인 사고를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일어나고 사라지는 연기적 흐름으로 관찰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집착과 갈애가 점점 해소되고 삶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생깁니다.
존재론적인 실재를 상정하고 있으면 찰나를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개념적 존재(빤냣띠)와 법을 정확하게 구분 짓습니다.
찰나를 이해하면 아비담마가 왜 법을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며
부처님께서 왜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본다고 하셨는지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연기법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하게 됩니다.
출처: 각묵스님 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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