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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아비담마

문에 따라 일어나는 마음의 대상, 문에서 벗어난 마음의 대상

by Rihan 2023.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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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문에 따른 분류

여기서 오직 형색만이 눈의 문에서 일어나는 모든 마음들의 대상이다.
그것도 현재의 것만이 [대상이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리 등도 귀의 문 등에서 일어나는 모든 마음의 대상이고
그들도 현재의 것만이 [마음들의 대상이 된다].

마노의 문에서 일어나는 마음들의 대상은 여섯 가지인데
그것은 적절하게 현재의 것이거나, 과거의 것이거나, 미래의 것이거나, 혹은 시간을 벗어난 것이기도 하다.

재생연결식과 바왕가와 죽음의 마음이라 불리는, 문에서 벗어난 마음들의 대상도 여섯 가지이다.
그 대상은 환경에 따라 대부분 생을 받기 직전에 여섯 문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 취한 현재의 것이거나, 과거의 것이거나, 혹은 개념이다.

그것은 업이거나, 업의 표상이거나, 태어날 곳의 표상이라 알려졌다.

 

1. 눈의 문에서 일어나는 모든 마음들의: 눈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은 모두 형색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형색은 단지 눈의 알음알이의 대상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오문전향의 마음, 받아들이는 마음, 조사하는 마음, 결정하는 마음, 자와나의 마음들, 여운의 마음들의 대상도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눈의 문에서 일어난 모든 마음들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마음들이 모두 형색만을 그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이런 인식과정 중에서 이들 마음들은 결코 다른 것을 대상으로 가질 수 없다.

최대 17과정으로 표현되는 인식과정(vīthi-citta)에서 바왕가를 제외한 마음들은 모두 같은 대상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난다는 기본 명제를 잊어버리면 인식과정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고 혼란만 생기게 된다.

2. 그것도 현재의 것만이 [대상이 된다]: 여기서 현재라는 말은 바로 이 찰나적 존재로서의 현재만을 말한다.
지금 현재의 인식과정의 대상이 되는 형색만이 눈의 문에서 일어나는 모든 마음들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마음은 물질보다 16배 빠르다는 것이 아비담마의 인식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전제가 된다.
어떤 한 물질이 일어나서 머무는 찰나에 마음은 16번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물론 그 물질이 일어나는(uppāda) 찰나에 개재된 '지나간 바왕가'라는 하나의 마음을 포함하면 모두 17번이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16/17번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마음들 가운데 바왕가를 제외한 마음들은
모두 현재 일어나 있는 그 물질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말이다.

3. 마노의 문에서 일어나는 마음들의 대상: 마노의 문에서 일어나는 마음들은

1️⃣ 다섯 가지 물질적인 대상과
2️⃣ 감각의 문에서는 접근할 수 없는 모든 마노의 대상인 법들을

그 대상으로 가진다.

당연히 마음의 문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대상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 속하는 것들도 포함하고
시간을 벗어난 것(kāla-vimutta)도 포함한다.

여기서 시간을 벗어난 것에는 열반과 개념(paññatti)이 포함된다.
열반은 생기고 변하고 사라짐이 없음을 그 고유성질(sabhāva)로 하기 때문에 시간을 벗어난 것이다.
개념은 고유성질이 없으므로 역시 시간을 벗어난 것이다.

그래서 '빠라맛타디빠니 띠까'는 열반과 개념은 형성된 것(유위법)들과는 달리
일어남이나 생김이 없는 형성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벗어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 경험한 것, 현재에 진행되는 경험, 미래에 관한 것, 시간을 벗어난 모든 것은
모두 마노의 문에서 일어나는 마음들의 대상이 된다.

실제로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과거·현재·미래의 많은 것을 대상으로 하여
삼세를 수없이 넘나들면서 일어나고 멸하며
수많은 개념(명칭)들을 대상으로 삼아 그것에 사로잡혀 있다.

4. 적절하게: '위바위니 띠까'는

'마음들이 욕계의 속행들인지,
신통지(abhiññā)의 속행들인지, 
나머지 고귀한 속행들인지에 따라서 적절하게'

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한다.

욕계의 속행들은 미소짓는 마음을 제외한 모든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속하는 것과 시간을 벗어난 것 모두를 그 대상으로 한다.
미소짓는 마음은 삼세에 속하는 것을 그 대상으로 한다.*
*"'기쁨이 함께하는 원인 없는 작용만 하는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미소짓는 마음)'는 현재에 대해서는 여섯 가지 문에서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는 마노의 문에서 제한된 형색 등의 법들을 대상으로 하여 번뇌 다한 분들(아라한들)이 미소를 띠는 모습을 만들면서 일어난다고 해서 제한된 대상을 가진 것이다."(DhsA.411)

신통지들은 삼세에 속하는 것과 시간을 벗어난 것 모두를 그 대상으로 한다.
고귀한 속행들은 과거의 마음들을 대상으로 가지는 무색계의 두 번째와 네 번째 선을 제외하고는 시간을 벗어난 것(즉 개념, paññatti)을 그 대상으로 한다.
출세간의 속행들은 모두 시간을 벗어난 것, 즉 열반을 그 대상으로 한다.

5. 문에서 벗어난 마음: ...모두 19가지 마음이 문을 벗어난(dvāra-vimutta) 마음의 역할을 한다.
과거와 현재의 다섯 감각의 대상과 마노의 대상, 이 여섯 가지가 이 마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 생에서의 죽음의 마음이 일어나기 직전에 어떤 대상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다음 생의 시작이 되는 재생연결식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다시 다음 생의 모든 존재지속심의 대상이며 다음 생이 끝날 때 생기는 죽음의 마음의 대상이 되어 종결된다.

...이 죽음의 마음이 일어나기 직전에 나타나는 대상은 다음의 세 가지 중의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다.

(1) 업(kamma): 이전에* 지은 해로운 업이나 유익한 업이 나타나기도 한다.
*...꼭 그 생에서만 지은 것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전에'로 적었다.

왜냐하면 '위방가 주석서'는 업(kamma)이나 업의 표상(kamma-nimitta)을 설명하면서
"과거 백천 겁의 시간 이전에 업을 지은 것도 바로 그 [재생연결의] 찰나에 업이나 업의 표상으로 도달하여 확립된다."라고 설명하고 있고,

레디 사야도도 이미 지은 업(kaṭattā kamma)을 설명하면서 이미 지었음에 대해서
"이 생에서거나 이전의 생들에서거나 이전의 시간에 지었다는 뜻이라고 알아야 한다."(Pdt. 214~215)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업의 표상(kamma-nimitta): 혹은 다음 생을 결정할 해로운 업이나 유익한 업을 상징하는 표상이나 도구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신심이 깊은 사람에게는 스님이나 절의 표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의사의 경우 환자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고,
백정은 도살한 가축들의 신음소리를 듣거나 소 잡는 칼을 보기도 한다.

(3) 태어날 곳의 표상(gati-nimitta): 혹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다음 생에 태어날 곳의 표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천상에 태어날 사람은 천상의 궁궐을 보기도 하고,
축생에 태어날 사람은 숲이나 들판을 보기도 하며,
지옥에 태어날 사람은 지옥의 불을 보기도 한다.

사실 이런 업이나 표상들을 평소 그가 무엇을 대상으로 하여 마음을 많이 일으켜 왔는가에 따라 좌우된다 하겠다.

 

업,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에 관해서는 이 글에서 소개한 바 있다.

과거에 발생한 의도는 시간에 따라 업으로서 성숙해가며, 네 가지 모습(āvatthā)으로 드러난다.

 

1️⃣ 최초의 의도가 일어난다. '의도의 발생'(cetanāvatthā)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유아의 단계라고 볼 수 있겠다.

2️⃣ 발생한 의도의 기능이 소멸되지 않고 마음의 흐름을 따라 이어진다. '의도의 지속'(kammāvatthā)이다. 소년으로 볼 수 있겠다.

3️⃣ 죽음에 임박했을 때, 의도가 성숙되어 스스로를 표상으로서 드러낸다. '의도의 표상'(nimittāvatthā)이다. 청년으로 볼 수 있겠다.

4️⃣ 사람이 세 가지 대상 중 하나에 주의를 고정하여 죽으면 다음 생에서 그 업이 스스로를 개인으로 변형시켜서, 새로운 생에서 하나의 중생으로 출현한다. '마지막 과보'(vipākāvatthā)다. 장년으로 볼 수 있겠다.

 

죽음의 순간에

1️⃣ 업은 그 사람이 현재 그 업에 관련된 행동을 직접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며 스스로를 드러낸다.

2️⃣ 업이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실패하면 업의 표상이 나타난다. 그 사람이 업을 행할 때 사용한 물건을 현재 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3️⃣ 때로는 그가 다음 생에 태어날 곳의 표상이 나타난다. 집, 궁전, 불, 물건과 같은 태어날 세계의 대상들이다.

 

이와 같이 과보란, 의도가 성숙된 것에 붙여진 이름이다.

 

6. 환경에 따라: '위바위니 띠까'는 문에서 벗어난 마음이 인지하는 대상은

본래 전생의 마지막 인식과정이 대상을 인지했던 문에 따라 다양하게 되고,
그것이 현재의 대상인지 과거의 대상인지 개념인지에 따라서도 다양하게 되며,
그것이 업인지 업의 표상인지 태어날 곳의 표상인지에 따라서도 다르다고 설명한다.

'위바위니 띠까'의 설명을 풀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욕계에 재생하는 경우에는 바로 전생의 마지막 속행의 과정에서 여섯 문들이 인지한 다섯 가지 감각의 대상 중의 하나가 업의 표상이 된다.

그런 대상은 재생연결식과 제일 처음의 존재지속심의 흐름의 경우에 과거이거나 현재가 된다.
바로 전생의 마지막 속행의 과정에서 인지된 감각의 대상은 새로 받은 생의 처음 몇 심찰나에도 현전하기 때문에 그 대상은 현재의 것이 될 수 있다.
그 후 새로 받은 생에서의 존재지속심들과 죽음의 마음에게 그 대상은 반드시 과거에 속하는 것이다.

바로 전생의 마지막 속행과정에서, 마노의 문에서 인지된 마음의 대상은 과거의 업이나 업의 표상이 되어 다음 생의 재생연결과 바왕가와 죽음의 마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만일 그 대상이 태어날 곳의 표상이라면 그것은 항상 마노의 문에서 인지되는 현재에 속하는 형색이다.

2️⃣ 색계에 재생하는 경우의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들 세 가지는 바로 전생의 마지막 속행과정의 마노의 문에서 인지된 것을 마노의 대상으로 한다.
그것은 [시간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개념(paññatti)이고 업의 표상이다.

3️⃣ 무색계 가운데 첫 번째와 세 번째 무색계에 재생하는 것은 색계에 재생하는 경우와 같다.
두 번째와 네 번째 무색계에 재생하는 경우에는 마음이 대상이 되므로 그것은 마노의 대상이고 과거의 것이며 업의 표상으로 간주된다.

7. 대부분: 이 단어는 색계에 속하며 알음알이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인식이 없는 중생들(asaññā-sattā)'의 경지로부터 떨어져 재생하는 자들을 염두에 두고 사용되었다.
그런 중생들의 인식과정에서 벗어난 마음들은 바로 전생에서 인지된 무엇을 그 대상으로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경지에서는 알음알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중생들에게는 그 인식이 없는 경지의 이전의 생에서 지었던 과거의 업이 기회를 얻어 그 업의 힘으로 업의 표상 등을 통해서 재생연결식과 존재지속심과 죽음의 마음의 대상을 생기게 한다.

 

 

 

인용문 출처: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1' 제3장, 초기불전연구원(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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