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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아비담마

존재 지속의 역할을 하는 마음은 3가지가 있다.

by Rihan 202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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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bhūmi)와 종류(jāti)에 따라서 89/121가지로 분류되는 마음은
대상을 안다는 특징으로서는 하나이지만 다시 이렇게 14가지 역할을 한다.

 

§8. 역할의 분석

역할의 길라잡이에서 역할은 14가지가 있다.
즉 재생연결, 존재지속, 전향, 봄, 들음, 냄새 맡음, 맛봄, 닿음, 받아들임, 조사, 결정, 속행, 여운, 죽음이다.

단계에 따라 분류하면 재생연결, 존재지속, 전향, 다섯가지 알음알이 등의 10가지가 있다고 알아야 한다.


왜 ‘단계’로 볼 때 5가지를 하나로 묶을까?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은 동시에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5개 중 하나만 일어난다. 보고 듣고를 동시에 할 수 없다.
마음은 한 번에 한 대상을 안다.

마음의 역할은 14가지이고, 단계로는 10가지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한 존재의 삶의 과정의 흐름 속에서 존재의 흐름과 인식과정의 흐름에 따라 2가지로도 분류할 수 있다.

 

‘존재지속의 역할’로서의 마음은 재생연결식, 존재지속심, 죽음의 마음 3가지이다. 이것은 이후 5장의 주제가 된다.
‘인식과정에 개재된 마음’은 전향부터 여운까지의 마음 11가지이다. 이것은 이후 4장의 주제가 된다.

 

각묵스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은 ‘대상을 알고 싶어하는 알고잡이’이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수많은 대상과 마주친다. 그리고 대상을 아는 과정이 인식과정이다.

 

존재는 존재지속심으로 개체의 연속성이 유지된다.
그러다가 대상이 나타나면 대상을 인식하는 인식과정에 들어가서 대상을 인식하고 업을 짓는다.
그리고 다시 존재지속심으로 돌아가 존재지속심이 흐른다.

이 글에선 먼저 존재지속의 역할을 하는 3가지 마음을 알아본다.


1. 재생연결(paṭisandhi) = ‘한 생의 최초의 알음알이’

 

문자적으로는 ‘다시 함께 만남’이며 ‘연결, 재생, 재생연결, 입태’ 등의 의미로 쓰이는 아비담마의 전문용어이다…(중략)…
아비담마에서는 금생과 내생을 연결하는 알음알이를 재생연결식(paṭisandhi-viññāṇa)이라 부른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중생들은 죽는 순간*에 업(kamma)이나 업의 표상(kamma-nimitta)이나 태어날 곳의 표상(gati-nimitta) 중 하나가 나타나는데, 이것을 대상으로 재생연결식이 생긴다고 한다. (아래 §17의 해설 5 등 참조)
*엄밀히 말하면 죽음의 마음(cuti-citta)이 일어나기 직전의 자와나(속행)의 단계를 뜻한다.

재생연결식은 그 새로 받은 생의 바왕가(존재지속심)로 연결이 된다.


자와나(속행)은 일반적으로 ‘업을 짓는 마음’이다.
그러나 한 생의 맨 마지막 자와나는 업을 짓는 것이 아니고, 예외적으로 다음 생의 재생연결식의 대상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생의 마지막 자와나 과정은 일반적인 자와나와 달리 7번이 아니라 5번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는 이번 생 혹은 여러 이전 생에서 쌓아놓은 여러 가지 업들 중 강력한 하나가 업,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 중 하나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다음 생의 재생연결식의 대상으로 결정되며, 그 과보로 재생연결식이 일어난다.

대상이 없는 마음은 없다. 모든 마음은 대상을 가진다.
한 생의 재생연결식과 존재지속심, 죽음의 마음은 모두 같은 대상을 가진다.



업,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은 각각 어떻게 다를까?

§17의 해설 5

죽음의 마음이 일어나기 직전에 나타나는 대상은 다음의 세 가지 중의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다.

(1) 업(kamma): 이전에 지은 해로운 업이나 유익한 업이 나타나기도 한다.

(2) 업의 표상(kamma-nimitta): 혹은 다음 생을 결정할 해로운 업이나 유익한 업을 상징하는 표상이나 도구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신심이 깊은 사람에게는 스님이나 절의 표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의사의 경우 환자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고, 백정은 도살한 가축들의 신음소리를 듣거나 소 잡는 칼을 보기도 한다.

(3) 태어날 곳의 표상(gati-nimitta): 혹은 죽어가는 사람이 다음 생에 태어날 곳의 표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천상에 태어날 사람은 천상의 궁궐을 보기도 하고, 축생에 태어날 사람은 숲이나 들판을 보기도 하며, 지옥에 태어날 사람은 지옥의 불을 보기도 한다.

사실 이런 업이나 표상들은 평소 그가 무엇을 대상으로 하여 마음을 많이 일으켜 왔는가에 따라 좌우된다 하겠다.



그렇다면 어떤 업이 재생연결식을 결정하는가?

5장 §19. 과보를 주는 순서에 따라

과보를 주는 순서에 따라 네 가지 업이 있으니

(1) 무거운(garuka) 업
(2) [임종에] 다다라(āsanna) [지은] 업
(3) 습관적인(āciṇṇa) 업
(4) 이미 지은(kaṭattā) 업이다.


이 중의 하나의 업이 재생연결식을 결정한다.
이 중의 하나의 업이 딱 드러나는 계기는 한 생의 맨 마지막 자와나 과정이다.

1. 무거운(garuka) 업: …(전략)… 여기서 말하는 ‘무거운 업’이란 그 힘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업도 이것을 없애고 재생연결식이 될 수 없는 업을 말한다.

(1) 해로운 측면에서 보면 다섯 가지 무간업, 어떤 도덕적인 기준도 다 부정해버리는 아주 삿된 견해가 무거운 업이고
(2) 유익한 측면에서 보면 선의 경지들을 증득하는 것, 즉 고귀한 업이 무거운 업이다.*
*필자 주: 극선업은 깨닫는 것과 본삼매를 체험하는 것이다.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중략)… 다섯 가지 무간업은 빠알리어로는 아난따리야 깜마(ānantariya-kamma)인데…(중략)… 문자적인 뜻 그대로 ‘틈이 없는’을 의미하며 중국에서는 무간으로 직역하였다.
다섯 가지 무간업은 1️⃣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 2️⃣ 어머니를 살해하는 것, 3️⃣ 아라한을 살해하는 것, 4️⃣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 몸에 피를 내는 것, 5️⃣ 승가를 분열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죄업을 지으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해서 무간업이라 부르는 것이다.
먼저 선의 경지를 얻고 나중에 무간업을 지으면 선정의 힘은 무간업의 힘 때문에 상실되고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중략)…
먼저 무간업을 지은 자는 나중에 고귀한 색계나 무색계와 출세간의 경지를 얻을 수 없다.

이렇게 오무간업은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큰 장애인 것이다.

어떤 도덕적인 기준도 다 부정해버리는 아주 삿된 견해(niyatamicchādiṭṭhi)에 대해서는 §22의 해설 마지막 부분에 언급하고 있는 세 가지 그릇된 견해(micchā-diṭṭhi)를 참조하기 바란다.

한편 선업의 측면에서 보면 선의 마음은 무거운 업이다.
그러므로 선정의 힘은 웬만한 악업을 지었더라도 내생에 선처에 태어나게 하는 아주 무거운 업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도 선을 닦는 것은 자신을 향상시키는 아주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불자들은 선정을 닦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22-4 해설)

‘그릇된 견해‘로 옮긴 micchā-diṭṭhi는 이것이 도덕적으로 허무주의적인 견해의 한 형태를 취할 때 확정된 업의 길이 된다.
여기서 도덕적으로 허무주의적인 견해라는 것은 인과를 부정하는 것 등을 말한다.

경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그릇된 견해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1️⃣ 원인을 부정하는 견해(ahetuka-diṭṭhi, 무인론자들의 견해): 중생의 번뇌와 청정에는 아무런 원인(hetu)도 조건(paccaya)도 없다는 견해로서 중생들은 우연이나 운명이나 필요에 의해서 오염되기도 하고 청정해지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2️⃣ 업의 과보를 부정하는 견해(akiriya-diṭṭhi, 도덕부정론자들의 견해): 행위는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한다라는 견해로서 선업이 가지는 특질을 인정하지 않는다.
3️⃣ 허무주의의 견해(natthika-diṭṭhi, 허무론자들의 견해):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는 식으로 사후 개체의 영속성을 부정하는 견해로 행위의 도덕적인 중요성을 부정한다.

…(중략)…“이 가운데서 뿌라나 깟사빠는 ‘행해도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여 업(kamma)을 부정한다.
아지따 께사깜발리는 ‘몸이 무너지면 단멸한다’고 주장하여 과보(vipāka)를 부정한다.
막칼리 고살라는 ‘원인도 없다’고 주장하여 둘 다를 부정한다.

여기서 업을 부정하면 과보도 부정하는 것이고 과보를 부정하면 업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모두는 뜻으로는 둘 다를 부정하므로 무인론자이고, 도덕부정론자이고, 허무론자이다.”
2. [임종에] 다다라(āsanna) [지은] 업: …(전략)… āsanna는 … ’가까운‘을 뜻하는 형용사로 쓰인다…(중략)…

여기서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이란 임종에 임박해서 지은 업*, 구체적으로 말하면 금생의 마지막 자와나의 과정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지은 강한 업을 뜻한다.
*복주서들은 “임종 시에 기억한 것이나 그때 지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나쁜 성질을 가진 사람이 죽기 직전에 그가 지은 선행을 생각하거나 죽기 직전에 선업을 지으면 좋은 생을 받게 된다.
착한 사람이 만일 죽기 직전에 그가 지은 악업을 생각하거나 죽기 직전에 악업을 지으면 불행한 곳에 태어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상좌부 불교 국가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지은 선업을 기억해 내도록 유도하고 마지막 순간에 좋은 생각을 일으키도록 힘을 다해서 도와주고 있다.

위에서 말한 무거운 업을 일생 동안에 짓지 않은 사람이 임종에 다다라서 강한 업을 지으면 이것이 일반적으로 재생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물론 그 사람이 일생 동안 지은 선업이나 악업에서부터 벗어날 수도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런 업들도 조건을 만나면 그들의 과보를 나타낼 것이다.
한편 ’청정도론‘에서는 습관적인 업을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보다 위에 두고 있다.

3. 습관적인(āciṇṇa) 업: …āciṇṇa는… ’행한, 닦은, 축적한‘의 뜻으로도 쓰이며 업과 관계된 뜻으로는 ’습관적으로 계속해서 빠져든‘의 뜻으로 설명한다.

즉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지어온 선업이나 악업이라는 의미이다.
무거운 업이나 임종에 다다라 지은 강한 업이 없으면 이 습관적인 업이 재생연결식을 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4. 이미 지은(kaṭattā) 업: … 위 세가지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업들이 이 영역에 속한다. 이 업도 역시 재생연결을 결정하는 힘은 충분히 지니고 있다.
위의 세 가지 업이 없으면 이미 지은 업이 재생연결 시에 그 기능을 발휘한다.


참고로 이런 업에 대처하는 불교의 가르침은 “어떤 일이 있어도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쁜 과보에 반응하여 해로운 의도를 내면 악순환의 연속이다. 나쁜 과보에 반응하면 안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선업을 지으려 노력해야 한다. 이는 부처님도 대신해줄 수 없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믿음으로 선업을 더욱 증장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다시 재생연결식의 해설로 돌아온다.

아비담마에서는 이 재생연결을 한 생의 출발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 재생연결의 역할을 마음의 14가지 역할 가운데 첫 번째로 들고 있다.

아비담마에서는 입태하는 찰나에 이 재생연결이 일어나는 것으로 간주한다.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한 생과 그 다음 생을 연결하는 중간 과정으로 존재한다고 북방불교에서 설명하는 중유(antarā-bhava)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중생은 한 생을 죽음의 마음(cuti-citta)으로 종결짓고 나면
즉시 다른 형태의 존재로 재생하는(화생도 포함) 재생연결식이 일어나고
그것은 그 생의 바왕가로 연결이 된다고 한다.


상좌부에서 중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처님 말씀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죽으면 틈없이 바로 다음 생으로 태어난다.

중유를 인정하기 때문에 49재를 지내는 것인데, 49재는 조상신과 연관이 깊다.
조상신은 아귀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중유는 아귀(peta)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이 재생연결식은 모든 중생에게 한 생에서 단 한 번만 일어난다.
이 재생연결식은 새로 받은 그 생의 바왕가로 연결되며 재생연결식과 바왕가는 모두 바로 직전의 생에서 죽을 때 나타난 위 세 가지 중 하나, 즉 업,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 중의 하나를 대상으로 가진다.
그것은 한 생의 마지막인 죽음의 마음(cuti-citta)의 대상이 되어 종결된다.

그러므로 아비담마에 의하면 임종 직전에 가지는 마음의 태도가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상좌부에서는 죽고 나서 천도재를 베푸는 것보다 죽기 직전에 선하고 고결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서 임종 직전에 여러 가지 선한 마음을 일으키도록 유도하고 있다.

 

2. 바왕가[존재지속, bhavaṅga] = ‘한 개체의 존재를 연속, 상속, 유지시켜주는 구성요소’

 

마음의 두 번째 역할은 존재지속의 역할이다.

…바왕가는 bhava+aṅga의 합성어이다. 존재로 옮기고 있는 bhava는 12연기에서 유로 번역되는 용어이며… aṅga는 ‘요소, 가지, 부분’을 뜻하는 명사이다.
그래서 bhavaṅga는 ‘존재의 구성요소, 존재의 부분’이라는 의미이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이 존재지속심들은 한 개체가 삶의 과정(pavatti)에서 생명이 끝날 때까지 그 연속성을 유지시켜주는 구성요소가 되는 것(aṅga-bhāva)을 그 역할로 하는 마음이다.
이런 뜻을 살려내기 위해 서구학자들은 예외 없이 바왕가를 life-continuum(생명연속체)이라고 옮기고 있다.

이것은 보통의 색, 성, 향, 미, 촉, 법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마음이 아니라
재생연결식의 대상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아주 미세하며 알기 어려운 마음이라서 요즘 심리학에서 잘 쓰는 잠재의식과 견주어 볼 수 있다.

잠재의식은 사전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자각되지 않는 의식’으로 정의되지만 이 단어는 자칫 의식의 기저에 놓여있는 큰 무의식이나 의식의 덩어리를 뜻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어서 역자들은 바왕가를 ‘존재지속[심]’으로 옮기고 있다.
바왕가는 ‘존재를 지속시켜주는 구성요소’로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중략)… 불교의 마음이라는 개념이 다 그러하듯이 이 바왕가, 즉 존재지속심은 의식의 수면 아래에 잠복해있는 잠재의식의 덩어리가 결코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바왕가 역시 찰나생, 찰나멸을 거듭하는 것이다.
여섯 가지 감각장소에 대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 바왕가의 심찰나가 계속 흐르는 것(santati)이다.

그래서 바왕가는 항상 강이나 흐름에 비유되며, ‘바왕가의 흐름(bhavaṅga-sota, bhavaṅga-santati)’이라는 말이 주석서에서 적지 않게 등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불교, 특히 초기불교와 상좌부 불교에서 모든 마음은 대상을 가진다고 설하고 있음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이 바왕가도 마찬가지이다. 이 존재지속심의 대상은 전생의 죽기 직전 나타났던 업이나 업의 표상 혹은 태어날 곳의 표상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전생과 금생을 연결하는 재생연결식과 동일한 대상을 가진다.

금생의 모든 존재지속심들은 모두 이것을 대상으로 가진다.
그리고 이 바왕가도 감각접촉, 느낌, 인식, 의도, 집중, 생명기능, 마음에 잡도리함의 7가지 공통되는 마음부수와 항상 함께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비록 깊은 잠 속에 들어있더라도 존재(bhava)의 동일성이나 구성요소(aṅga)는 매 찰나 유지되어 나가는 것이다…(중략)…

그리고 인식과정은 모두 이 바왕가를 거쳐서 다음의 인식과정으로 넘어간다는 점도 반드시 유념하고 있어야 한다.

즉 인식과정에서 특정한 대상을 대상으로 일어난 마음들은 일련의 인식과정을 거치고 난 뒤 사라진다.
그러면 반드시 바왕가가 흐르게 된다.

이 바왕가의 흐름(bhavaṅga-sota)은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 다른 과정이 전개될 때까지 계속된다.
대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재생연결식의 대상을 대상으로 한 바왕가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렇게 바왕가가 지속되다가 어떤 대상이 나타나면 바왕가는 흔들리게 되는데 이것을 ‘바왕가의 동요(bhavaṅga-calana)’라 부른다.
흔들린 바왕가는 바왕가의 상태에서 동적인 마음으로 전환된다. 이것을 ’바왕가의 끊어짐(bhavaṅga-upaccheda)’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바왕가가 끊어지면 마노는 새로운 대상으로 전향을 하는데 이것이 바로 다음에 나오는 전향이다.

바왕가에서 중요한 또 다른 개념은 ‘지나간 바왕가(atīta-bhavaṅga)’인데 제4장 §6의 해설 2를 참조하기 바란다.
(제4장 §6의 해설 2)

…(전략)…전통적으로 마음은 물질보다 16배 빠르다고 한다.
그러나 물질은 일어나는 찰나에는 미약하여 감각기능들이 그것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 순간에는 존재지속심이 그냥 하나 지나가게 된다.

이것을 지나간 바왕가(atīta-bhavaṅga)라 부르는데 이것을 이 인식과정에 포함시키면 17번이 된다…(중략)…

마음이 물질적인 대상을 인식할 때 일어나는 찰나의 물질은 미약하고 빨라서 마음은 이를 인식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한 개의 심찰나가 지나가버린다. 이것을… 지나간 바왕가라는 전문용어로 정착시켰다.

이렇게 ‘어떤 물질이 머무는 찰나 동안에 마음은 16번 일어나고 멸한다’는 전통적인 1:16의 물질과 마음의 관계는
물질과 마음이 일어나고 머물고 소멸하는 전체 과정에서는 1:17로 고정되는 것이다.


물질이 일어나는 순간에 마음은 그것을 결코 알지 못한다고 한다.
물질이 일어나는 순간은 너무 빠르기 때문에, 부처님도 그것은 알지 못한다고 한다.

물질이 일어나는 순간과 멸하는 순간은 마음의 생멸과 같아서 너무나 빠르다.
머무는 순간은 길어서 16심찰나 동안 머무른다.

 

재생연결식과 존재지속심과 죽음의 마음은 그 대상이 같다.
재생연결식은 생애 최초의 존재지속심이고, 죽음의 마음은 한 생의 마지막 존재지속심이다.

존재지속심은 재생연결식이 계속해서 찰나생, 찰나멸 하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존재지속심은 한 개체의 존재를 연속시켜주고 상속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마음이다.


14. 죽음(cuti) = ‘한 생의 마지막 존재지속심‘

 

마음의 마지막 역할은 죽음의 역할이다…. 아비담마에서는 이렇게 죽음의 마음(cuti-citta)이라는 용어로 사용된다.
이것은 한 존재의 생에서 마지막 찰나에 일어나는 마음이며 이 마음으로 한 생명의 일생은 종결이 된다.

이 죽음의 마음은 그 생의 재생연결식과 존재지속심이 가진 대상을 대상으로 가지고 한 생을 종결짓는 마음이다…(중략)…

[청정도론 XIV]: “124. 죽음의 [마음] 다음에는 계속해서 재생연결 [마음이], 재생연결 [마음] 다음에는 또 존재지속심이 생긴다.

이렇게 해서 존재(bhava), 태어날 곳(gati), 머묾(ṭhiti), 거처(nivāsa)에서 윤회하는 중생들에게 마음의 흐름(citta-santāna)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아라한과를 증득한 자의 경우 죽음의 마음과 더불어 이것도 끝난다.“



출처: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1’ 3장, 초기불전연구원(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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