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담마에서는 89가지 마음을 종류와 경지로 분류한다.
여기서 종류는 ‘업과 과보‘에 따른 분류이며, 빠알리어로 jāti를 의미한다.
경지는 욕계, 색계, 무색계, 출세간의 경지에 따른 분류이며, 빠알리어로 bhūmi를 의미한다.
여기서 bhūmi는 경지 외에 세상으로도 의역이 가능하며,
세상으로 의역할 때 bhūmi는 존재들이 거주하는 거주처, 세상을 의미한다.
즉 욕계 세상의 존재가 색계 경지의 마음을 낼 수 있고,
색계와 무색계 세상의 존재가 욕계 경지의 마음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존재가 속한 세상에서 그 세상을 벗어난 마음을 내는 경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필자가 그런 경우를 겪었는데, 바로 ’색계와 무색계 존재는 삶의 과정에서 과보를 어떻게 받는가‘에 관한 것이다.
욕계 존재는 삶의 과정에서 원인 없는 해로운 과보의 마음, 원인 없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으로 과보를 받는다.
색계와 무색계 존재의 경우는 어떨까?
아래는 선배 도반과의 문답을 바탕으로 필자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
아비담마 길라잡이 1권 450쪽을 보면 색계 세상에서 색계 존재의 인식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마음 64가지를 말한다.
색계의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 64가지는 다음과 같다.
10가지 해로운 마음(적의와 함께하는 2가지는 제외) +
9가지 원인 없는 과보의 마음(색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코의 알음알이, 혀의 알음알이, 몸의 알음알이의 쌍을 제외함) +
3가지 원인 없는 작용만 하는 마음 +
16가지 큰 유익한 마음과 작용만 하는 마음 +
10가지 색계의 유익한 마음과 작용만 하는 마음 +
8가지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과 작용만 하는 마음 +
8가지 출세간 마음이다.
적의는 선을 증득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억압된다. 따라서 색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1권 448쪽)
색계 존재들은 다섯 가지 선의 경지에 대응하는 색계 과보의 마음이 재생연결식이 되며, 이 마음이 그 생의 존재지속심(바왕가)과 죽음의 마음으로 이어진다.
색계 존재는 눈과 귀, 마노의 세 가지 감각 기능만 가진다.
따라서 원인 없는 과보의 마음 중에서도 한 쌍의 비식, 설식, 신식은 제외된다.
눈과 귀가 있으니 안문인식과정, 이문인식과정을 통해 받아들이는 마음, 조사하는 마음도 일어난다.
그렇다면 색계 존재가 삶의 과정의 인식과정에서 받는 세간적인 과보의 마음은 원인 없는 과보의 마음 9가지가 될 테다.
즉, 해로운 과보로서 안식, 이식, 받아들임, 조사하는 마음 네 가지와
유익한 과보로서 안식, 이식, 받아들임, 기쁜 조사, 평온 조사의 마음 다섯 가지가 그것이다.
물론 이것은 세간적인 경지인 것이고, 출세간의 경지에 이른다면 네 가지 출세간 과보의 마음도 일어날 수 있다.
2.
마찬가지로 아비담마 길라잡이 1권 450쪽을 보면 무색계 세상에서 무색계 존재의 인식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마음 42가지를 말한다.
무색계에서 일어나는 마음 42가지는 다음과 같다.
10가지 해로운 마음 +
1가지 의문전향 +
16가지 큰 유익한 마음과 작용만 하는 마음 +
8가지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과 작용만 하는 마음 +
7가지 출세간의 마음(예류도는 제외)이다.
무색계 존재도 적의와 함께하는 해로운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소짓는 마음은 육체적인 몸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다고 한다.
무색계 존재는 색계 선에 들 수 없으며, 자신의 경지보다 낮은 무색계선에도 들 수 없다고 한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449쪽)
무색계 존재는 정신적 존재이므로 다섯 가지 감각의 기능이 없고, 따라서 오문인식과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원인 없는 과보의 마음들 15가지와 오문전향의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운의 마음은 욕계에서만 일어나므로 색계, 무색계 존재들의 삶의 과정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이렇게 소거해나가면 무색계 존재의 삶의 과정에서는 세간적인 인식과정에서의 과보의 마음이 사실상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식과정을 벗어나서는 네 가지 선의 경지에 대응하는 무색계 과보의 마음이 존재지속심(바왕가)으로 흐르고 있을 것이다.
무색계에서의 의문인식과정은 본삼매 인식과정(본삼매 속행과정)으로 일어날 것이다.
본삼매 속행과정은 속행(자와나)만이 일어난다. 그리고 속행이 끝나면 존재지속심(바왕가)로 들어간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1권 419쪽)
속행에서는 유익하거나 해로운 마음, 작용만 하는 무기의 마음, 성자들이 열반을 대상으로 하는 과의 자와나(= 과보에 속하는 무기의 마음)가 일어날 수 있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1권 337쪽)
여기에 삶의 과정에서 세간적인 경지로 인식과정에서 일어날만한 과보의 마음은 없어 보인다.
출세간의 경지에서는 삶의 과정에서 4가지 출세간 과보의 마음은 일어날 수 있다.
무색계 존재에게 세간의 경지에서는 인식과정에서 과보의 마음이 일어날 틈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문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 1권의 446쪽 도표에서는 무색계 존재에게 일어나는 마음으로 ‘4과보’가 명시되어 있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인식과정을 벗어난 ‘재생연결식-존재지속심-죽음의 마음’에 해당하는 무색계 과보의 마음 4가지를 언급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따라서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세간적 경지의 인식과정에서의 마음으로 보고 있지 않다.
이 부분은 추후 기회가 된다면 각묵스님에게 직접 문의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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