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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스님들의 참선 과정은 슬로싱킹과 대단히 비슷하다.
축서사의 무여스님이 지은 법문집 제목은 '쉬고, 쉬고 또 쉬고'다.
이 제목처럼 오랜 기간 슬로싱킹에 의한 몰입을 할 때면 두뇌는 문제를 풀기 위해 100퍼센트 가동하는데,
몸과 마음은 푹 쉬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무여스님은 수행이 괴롭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10분도 고통이지만,
여행 떠나듯 가벼운 마음으로 하면 한두 시간은 거뜬히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평소 '슬로싱킹이란 연인을 생각하듯 가볍게 생각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 또한 여행을 떠나듯 수행하라는 스님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렇게 수행하다 보면 '삼매'라는 종교적 상태에 도달한다.
삼매는 산스크리트어 '사마디'를 음역한 것으로, 오로지 집중하는 대상인 화두와 나만 존재하는 최고의 집중 상태 혹은 고도의 몰입 상태를 말한다.
간화선에서는 선잠을 쫓으라고 하고, 슬로싱킹에서는 반긴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간화선 수행 중에는 자기 의지로 안 되면 따끔한 죽비 소리에 의지해서라도 잠을 물리쳐야 한다.
하지만 슬로싱킹 중에는 잠을 쫓을 필요가 전혀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선잠이 오히려 창의력과 몰입도,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프린키피아의 천재'라는 책에는 뉴턴이 데카르트의 '기하학'을 독학으로 공부할 당시가 묘사되어 있다.
두세 장마다 이해할 수 없는 구절이 앞을 가로막아 난관에 봉착하면 뉴턴은 주저하지 않고 책장을 맨 앞으로 넘겨 처음부터 다시 읽어갔다.
이런 식으로 공부를 계속한 그는 누구의 도움이나 가르침도 없이 기하학 전체 내용에 정통하게 되었다.
뉴턴이 그의 대표 업적인 미분과 만유인력을 포함한 중요한 발견을 한 때는 흑사병으로 케임브리지대학교가 폐교하는 바람에 고향에 머물게 된 2년간이었다.
한적한 시골집 서재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입한 이 시기에 그는 수학, 광학, 천문학, 물리학에서 중요한 업적을 이루었다.
뉴턴 자신도 이 2년간의 휴학 기간을 가리켜 '발견의 전성기'라고 평할 정도였다.
뉴턴의 시골집 서재나 앤드루 와일스의 다락방처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문제 하나에만 몰입할 흔치 않은 장소가 또 있다.
바로 감옥이다...(중략)...
동료 엘리 카르탕은 베유를 격려하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모두가 자네처럼 조용한 곳에서 방해받지 않고 연구를 계속하는 행운을 얻지는 못했네.'
베유도 이 의견에 동의했던 것 같다...(후략)
"...(전략)...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벌여놓은 주제들을 좀 더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오.
이제는 슬슬 감옥이야말로 추상적인 학문에는 그 어떤 것보다도 도움이 된다고 믿기 시작했소.
인도 친구 비즈는 자주 이런 말을 하오.
여섯 달이나 한 해쯤만 감옥에 앉아있게 된다면 리만 가설 정도는 틀림없이 증명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오.
그렇게 된다면 정말 그가 리만 가설을 증명할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그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오."
이처럼 주변의 방해 없이 하나의 문제에 골몰해 오랜 시간 슬로싱킹을 하면 평소에는 경험하기 힘든 고도의 몰입 상태에 다다른다.
바로 이런 이유로 평소의 몰입도로는 평생 노력해도 해결하지 못할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황농문 지음, '슬로싱킹', 위즈덤하우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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