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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아비담마

3. 아름다운 마음부수들 25가지 - 아름다운 때때로들 6가지 (2)

by Rihan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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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5가지 아름다운 마음부수법은 ‘반드시들’ 19가지와 ‘때때로들’ 6가지로 구분된다.

2. 때때로들 6가지는 절제 3가지, 무량함 2가지, 어리석음 없음 1가지로 구분된다.

어리석음 없음(amoha) 1가지

- 어리석음 없음, amoha는 마음부수에서 통찰지, paññā와 동의어로 쓰인다.
- 그래서 통찰지도 어리석음 없음의 범주에 포함시켜 설명하며, 통찰지를 통찰지의 기능이라고 표현한다.
- 아비담마에서는 탐, 진, 치와 불탐, 부진, 불치의 여섯을 원인(hetu)으로 중요하게 다룬다.
- 담마상가니 §34

“무엇이 그때에 있는 ‘어리석음 없음’인가?

그때에 있는 통찰지, 통찰함, 간택, 꿰뚫어 간택함, 법의 간택, 주시함, 응시함, 차별화함, 영민함, 능숙함, 숙달됨, 분석함, 사색, 자세히 관찰함, 광대함, 현명함, 주도면밀함, 위빠사나, 알아차림, 몰이 막대, 통찰지, 통찰지의 기능, 통찰지의 힘, 통찰지의 칼, 통찰지의 궁전, 통찰지의 광명, 통찰지의 빛, 통찰지의 광휘로움, 통찰지의 보배, 어리석음 없음, 법의 간택, 바른 견해, 어리석음 없음이라는 유익함의 뿌리

이것이 그때에 있는 어리석음 없음이다.”


1. 통찰지의 기능(paññindriya)

- paññā + indriya로 분석된다.
- paññā는 pra(앞으로) + jñā(to know), 그냥 피상적으로 대상을 뭉뚱그려 알거나(sañjānāti, 인식) 분별해서 아는 것(vijānati)을 넘어서서 앞으로 더 나아가서 아는 것을 뜻한다.
- 청정도론은 대상을 경험하는 단계로 ‘산냐-윈냐나-빤냐’, 혹은 ‘인식함(sañjānana)-자세히 앎(vijānana)-꿰뚫어 앎(pajānana)’라는 술어를 통해서 그 깊이를 설명한다.

청정도론 XIV
“3. 무슨 뜻에서 통찰지라 하는가? 꿰뚫어 안다(pajānana)는 의미에서 통찰지라 한다.

그러면 대체 꿰뚫어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식하는(sañjānana) 형태와 자세히 아는(vijānana) 형태와는 달리 여러 측면에서 아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인식(산냐)과 알음알이(윈냐나*)와 통찰지(빤냐)가 공히 아는 성질을 가졌다 하더라도 인식(산냐)은 ‘푸르다, 누르다’라고 단지 대상을 인식하는 정도이며, 무상 고 무아라는 특징을 통찰(paṭivedha)하지는 못한다.
알음알이(윈냐나)는 ‘푸르다, 누르다’라고 대상을 알 뿐만 아니라 특징을 통찰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도(magga)의 현전에 이르지는 못한다.
통찰지(빤냐)는 이미 설한대로 대상도 알고 특징을 통찰할 뿐만 아니라 노력하여 도의 현전에 이른다.
*여기서 윈냐나는 오온의 알음알이가 아니라 ‘자세히 앎’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중략)…

5. 인식(산냐)은 분별없는 어린 아이가 동전을 보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상의 나타난 양상을 푸르다 등의 정도로만 알기 때문이다.

알음알이(윈냐나)는 시골 농부가 동전을 보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상의 양상을 푸르다 등으로 알고 나아가 [무상, 고, 무아의] 특징을 통찰함에 이르기 때문이다.

통찰지(빤냐)는 금속 세공인이 동전을 보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대상의 양상을 푸르다 등으로 알 뿐만 아니라 그것의 특징을 통찰함에 이르고 여기서 더 나아가 도의 현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식함의 형태와 자세히 앎의 형태와는 달리 여러 측면에서 아는 것을 꿰뚫어 앎이라고 알아야 한다.
이것을 두고 꿰뚫어 안다는 의미에서 통찰지라 한다라고 말했다.

6. 그러나 이 통찰지(빤냐)는 인식(산냐)이나 알음알이(윈냐나)가 일어날 때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설령 통찰지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인식이나 알음알이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마음(citta)이 일어나는 곳엔 언제나 산냐나 윈냐나가 함께 일어나지만, 빤냐는 그렇지가 않다.
빤냐는 두 가지 원인을 가졌거나 또는 원인이 없는 마음의 경우에는 일어나지 않고 오직 세 가지 원인을 가진 47가지 마음의 경우에만 일어난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2장 도표 2.2 참고)

‘이것은 인식이고 이것은 알음알이이며 이것은 통찰지다’라고 분리해서 차이점을 취할 수 없고, 아주 미세하며 보기 어렵다…(후략)

- 경이나 아비담마에서 빤냐는 법의 고유성질(자성, sabhāva)을 통찰(paṭivedha)하는 것과 관련이 있고, 무상 고 무아라는 법의 보편적 성질(공성, sāmañña-lakkhana)을 통찰하여 각각 무상 해탈, 무원 해탈, 공 해탈을 실현하는 위빳사나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9장 §36

“수행자가 무아의 관찰로 도를 증득하면 그 도는 열반이 자아가 없이 비었다는 측면으로 대상을 삼는다.
그래서 이것은 공한 해탈이라고 부른다.

수행자가 무상의 관찰로 도를 증득하면 그 도는 열반이 표상이 없다는 측면, 즉 형성된 것들의 표상이 없다는 측면으로 대상을 삼는다.
그래서 이것은 표상 없는 해탈이라고 부른다.

그가 괴로움의 관찰로 도를 증득하면 그 도는 열반이 원함 없는 측면, 즉 갈애를 원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난 측면으로 대상을 삼는다.
그래서 이것은 원함 없는 해탈이라고 부른다.”

- 빤냐는 법의 자상과 공상을 꿰뚫어 아는 것이다.
- 법의 고유성질을 꿰뚫어 아는 방법은 82가지 법들을 특징, 역할, 나타남, 가까운 원인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 한국 불교에서는 빤냐(paññā, 반야)와 냐나(ñāṇa)를 똑같이 지혜로 옮기고 있어서 혼란의 여지가 있다. 물론 아비담마에서 이 둘은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냐나는 초기경에 나타나는 고결한 지혜(빠린냐, 아빈냐, 안냐, 빤냐)를 다 포함하는 개념이다. 빤냐는 그 가운데 하나이다.

(1) 빠린냐(pariññā, 통달지)

- 청정도론 XX
“3. 이것이 판별이다. 세간적인 통달지는 세 가지이다.
1️⃣ 안 것의 통달지 2️⃣ 조사의 통달지 3️⃣ 버림의 통달지이다.
이것을 두고 설하셨다.

“초월지라는 통찰지는 알았다는 뜻에서 지혜이고,
통달지라는 통찰지는 조사하는 뜻에서 지혜이고,
버림이라는 통찰지는 제거하는 뜻에서 지혜이다.”

이 가운데서 1️⃣ 물질은 변하는 특징을 가지고, 느낌은 느껴진 특징을 가진다고 이와 같이 그 법들의 개별적인 특징을 조사함으로써 생기는 통찰지가 안 것의 통달지이다.
2️⃣ 물질은 무상하고 느낌은 무상하다는 방법으로 그 법들에게서 보편적인 특징을 제기한 뒤 생기는 보편적인 특징을 대상으로 가지는 위빳사나의 통찰지가 조사의 통달지이다.
3️⃣ 이런 법들에서 영원하다는 인식 등을 버림으로써 생긴 특징을 대상으로 가진 위빳사나의 통찰지가 버림의 통달지이다.

4. 1️⃣ 여기서 상카라들의 한계를 정함(XVII)으로부터 조건의 파악(XIX)까지가 안 것의 통달지의 범주이다.
이 부분에서는 법들의 개별적인 특징을 통찰하는 것이 주가 된다.

2️⃣ 깔라빠를 명상하는 것부터 생멸의 관찰(XXI. §3이하)까지가 조사의 통달지의 범주이다.
이 부분에서는 보편적인 특징을 통찰하는 것이 주가 된다.

3️⃣ 무너짐의 관찰(XXI. §10)이후부터가 버림의 통달지의 범주이다.
여기서부터는 다음과 같이 영원하다는 인식 등을 버림을 성취하는 일곱 가지 관찰이 주가 된다.

즉 “그는 [행들을] 무상이라 관찰하면서 영원하다는 인식을 버린다.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면서 행복이라는 인식을 버린다.

무아라고 관찰하면서 자아라는 인식을,
역겨워하면서 즐김을,
탐욕을 빛바래게 하면서 탐욕을,
소멸로써 일어남을,
놓아버림으로써 취함을 버린다.”

(2) 아빈냐(abhiññā, 신통지, 최상의 지혜)

(3) 안냐(aññā, 구경지, 구경의 지혜, 번뇌를 다 멸한 아라한의 경지의 지혜)
- 구경의 지혜를 얻는다는 말은 아라한과를 증득한다는 말이다.
- “네 번째 도(아라한도)의 지혜 바로 다음에 구경의 지혜(aññā)가 생긴다. 즉 아라한과가 생긴다는 뜻이다.”(AA.ii.348)

(4) 빤냐(paññā, 통찰지)

- 통찰지(paññā)는 여기서 기능(근)으로 명명되고 있는데,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뛰어난 기능을 가져 탁월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 거듭 말하지만 아비담마에서는 통찰지(반야, paññā)와 지혜(ñāṇa)와 어리석음 없음(불치, amoha)이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 청정도론 XIV

“143. …어리석음 없음은 고유성질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특징을 가진다. 혹은 실패 없이 [적중해서] 꿰뚫는 특징을 가진다. 마치 숙련된 궁수가 쏜 화살이 관통하는 것처럼.
대상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마치 등불처럼
미혹하지 않음으로 나타난다. 마치 숲 속에서 좋은 안내자처럼.

2. 무엇이 통찰지인가? …(중략)… 통찰지는 유익한 마음과 결합된 위빳사나의 지혜이다.

7. 그러면 통찰지의 특징, 역할, 나타남, 가까운 원인은 무엇인가?

통찰지의 특징은 법의 고유성질(sabhāva)을 통찰(paṭivedha)하는 것이다.
그것의 역할은 법의 고유성질을 덮어버리는 어리석음(moha)의 어둠을 쓸어버리는 것이다.
통찰지는 미혹하지 않음(asammoha)으로 나타난다.
통찰지의 가까운 원인은 삼매(samādhi)다.

“삼매를 잘 닦은 자는 있는 그대로 알고 본다.”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것과 같아지는 것들은 13가지이고
해로운 것은 14가지이며
아름다운 것은 25가지이다.

이리하여 52가지를 설했다.


지금까지 52가지 심소법의 정의를 알아보았다.
이제 89가지 마음과 52가지 마음부수간의 상호관계를 알아볼 차례다.


출처: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1’, 초기불전연구원(2017)
출처: 대림스님 옮김, ‘청정도론 2’, 초기불전연구원(2004)
출처: 대림스님 옮김, ‘청정도론 3’, 초기불전연구원(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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