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죽음이 오는 것은 네 가지가 있으니 (1) 수명이 다함으로써 (2) [생산]업이 다함으로써 (3) 둘 모두 다함으로써 (4) 단절하는 업이 [끼어듦]으로써이다.
1. 죽음이 오는 것(maraṇa-uppatti): 아비담마에서 '죽음(maraṇa)'이란 "생명기능이 끊어진 것"을 말한다. 그리고 승의제의 측면에서 보자면 마음, 마음부수, 물질의 모든 법들은 모두 찰나생 · 찰나멸하는 존재이므로 물 · 심의 모든 현상은 삶의 과정(pavatti)에서 매 찰나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반복한다. 이것을 아비담마에서는 찰나사(khaṇika-maraṇa)라고 부른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527, 초기불전연구원(2021)
아비담마에서 말하는 생명기능jīvitindriya은 물·심의 생명기능 2가지가 있다. 두 가지 생명기능(명근)의 핵심 역할은 자신의 영역에서, 자기와 함께 생겨난 법들을 그 수명 동안(심찰나, 물질찰나)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도록 지탱하는 것anupālana이다. 정신의 생명기능이 지탱하는 대상은 함께 일어난 마음·마음부수들이고, 물질의 생명기능이 지탱하는 대상은 업에서 생겨난 물질·깔라빠들이다. 정신의 생명기능은 모든 마음에 항상 있지만, 물질의 생명기능은 모든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업kamma에서 생긴 물질에만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둘 부분이다. 마음·온도·음식에서 생긴 물질에는 물질의 생명기능이 없다.
죽음maraṇa이 생명기능이 끊어진 것이라고 할 때, 이는 생명기능이 끊어져 더 이상 몸과 마음을 이루는 법dhamma들을 붙잡아두거나 지탱할 수 없게 되어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한 생bhava의 마지막에 생명기능이 완전히 끊어지는 통속적인 의미에서의 죽음sammuti-maraṇa이다. 그리고 인용문의 '승의제(勝義諦)'는 paramattha sacca, 즉 있는 그대로의 실재, 궁극적인 진실을 말하는 것인데 이 구경법의 레벨에서 모든 유위법saṅkhata-dhamma들은 매 찰나 생겨났다가 소멸하기 때문에 찰나사khaṇika-maraṇa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된다. 우리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매 찰나 소멸했다가 다시 새롭게 일어나는 연속적인 흐름(Process)이라는 얘기다.
- parama: 최고, 궁극, 수승함 → 승(勝)
- attha: 뜻, 의미, 이치, 실재, 이익 → 의(義)
- sacca: 진리 → 제(諦)
2. 수명(āyu)이 다함으로써: 이것은 수명의 한계가 결정된 세상(§12, §14, §16)에 머무는 중생들에게 해당된다. 인간 세상에서도 역시 자연사로써 나타난다. 그 세상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의 수명을 살다 죽었지만 아직 그의 생산업이 다하지 않았다면 천신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업의 힘에 의해서 같은 세상이나 더 높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527, 초기불전연구원(2021)
삭까 천왕은 천상에서의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죽음의 전조(pubba-nimitta)를 보았다. 죽음의 전조는 다섯 가지이다. ① 머리의 화환이 시들어가고 ② 옷이 더러워지고 ③ 몸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고 ④ 겨드랑이에서 땀이 나고 ⑤ 천상의 화려한 삶이 즐겁지가 않다. 그는 두려움에 휩싸여 부처님께 도움을 청하러 지상으로 내려갔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삭까왕문경을 설하셨고 천왕은 이 경을 듣고 수다원과를 성취했으며 그 자리에서 죽어 즉시 젊은 삭까로 다시 화생(化生)했다. 천왕이 죽어서 다시 태어난 사실은 부처님과 본인밖에 몰랐다.
- 무념 · 응진 옮김, 『법구경 이야기 3』 p.38, 옛길(2022)
수명이 다하여 죽는 것āyukkhaya은 수명의 한계가 결정된 천신deva 및 범천brahma들, 시대에 따라 유동적인 수명의 한계를 가진 인간들에 해당된다. 사대왕천에서 비상비비상처천까지는 각 천상마다 법칙으로 정해진 최대 수명, 즉 표준 수명이 있다. 인간의 수명은 천상들처럼 딱 고정된 최대 수명이 있는 건 아니지만 선업이 증장되는 시기에는 수명의 한계가 아승기까지 늘어났다가, 악업이 늘어나는 시기에는 10살까지 줄어든다고 알려진다. 부처님은 인간 수명의 한계가 100살에서 10만 살 사이일 때 출현하시고, 동시에 인간 수명이 줄어드는 시기에만 출현하시기 때문에, 고따마 붓다께서 출현하신 이 시대 인간 세상 수명의 한계는 100살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즉, 인간은 표준 수명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셈이다.
"그 세상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의 수명을 살다 죽었지만 아직 그의 생산업이 다하지 않았다면 천신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업의 힘에 의해서 같은 세상이나 더 높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서술된 인용문의 내용의 경우 천신들의 경우 화생(化生)하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언급된 것으로 보인다. 「제석문경」(Sakkapañha Sutta, DN21)에서 부처님 당시 삭까는 이미 늙어서 '겨드랑이에서 땀이 나고 꽃이 시드는 등' 죽음의 징조가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수명이 다했음을 알고 두려움에 떨며 부처님을 찾아가 법문을 들었고, 법문을 듣고 깨달음(수다원과)을 얻는 순간, 늙은 제석천의 몸은 죽어서 사라지고, 그 즉시 새롭고 젊은 제석천의 몸으로 그 자리에서 화생(化生)한다. 이는 수명은 다했지만, 부처님께 귀의한 강력한 공덕으로 인해 "수명은 다했으나 업이 남아 다시 태어나는" 사례로 해석할 수 있겠다.
3. [생산]업이 다함으로써: 이것은 비록 정상적인 수명이 다하지 않았고 그밖에 수명을 연장할 좋은 조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생을 가져온 업 자체가 그 힘을 상실해서 생기는 죽음이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p.527~528, 초기불전연구원(2021)
네 악도에 있는 중생들의 수명은 악업의 강도에 의지하기 때문에 정해진 수명이 없다. 그러므로 지옥에서 어떤 중생들은 단지 며칠 정도만 고통을 받고 다른 곳으로 재생하기도 하며 어떤 자들은 수백만 년 동안 고통을 받기도 한다. 인간의 세상에서도 수명은 태어나자마자 죽는 것에서 백 년 정도까지 다양하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485, 초기불전연구원(2021)
업이 다해서 죽는 것kammakkhaya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4악처 중생들이다. 여기는 정해진 표준 수명이라는 개념이 없다. 마치 감옥의 죄수가 자신의 형량만큼 갇혀 있듯이, 이들은 오직 자신이 지은 악업의 강도와 양에 따라 악처에 살며 고통받는다.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그 악처에 재생을 일으킨 생산업(재생업)이 다 소진되면 1년 만에도 죽어서 다시 태어날 수 있고, 1억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식이다. 즉, 재생을 이끈 업이 다하는 순간이 곧 죽음이다.
인간의 세상에서도 실제 개별 존재들의 수명은 태어나자마자 죽는 것에서 백 년 정도까지 다양하다. 시대의 수명은 100세인데 태어날 때 가져온 생산업(재생을 가져온 업, 비유하자면 '배터리')이 약해서 30살이나 50살에 자연적으로 병이나 쇠약함으로 죽는 경우도 있다. 수명 그릇은 남았는데 애초에 연료가 너무 적어서 금방 연료가 떨어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부처님 당시 마하깟사빠 존자는 120세, 바꿀라 존자는 160세까지 사셨다고 알려지기도 한다.
천신/범천의 경우에도 그 세상의 수명의 한계는 있지만 개별 존재는 업이 다하면 그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범망경」(Brahmajāla Sutta, DN1)에서 우주가 성립되고 파괴되는 내용 중에는 광음천 무리에서 어떤 존재가 수명이 다해서āyu-khaya 혹은 공덕이 다해서puñña-khaya 떨어져(= 그 처소에서 죽어) 범천궁에 다시 태어난다는 서술이 있다. 여기서 공덕이 다해 죽는 것을 kamma-kkhaya에 대응시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단절하는 업이 [끼어듦]으로써: 정상적인 수명이 다하기 전에라도 아주 막강한 단절하는 업이 끼어들어서 재생을 일으키는 업의 힘을 끊어버린 경우이다. 여기서 '단절하는 업'은 upacchedaka-kamma를 옮긴 것인데 주석서는 §18의 파괴업(upaghātaka-kamma)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MA.v.12; MAṬ.ii.375)
여기서 처음의 세 가지 경우를 정상적인 죽음(kāla-maraṇa)이라 하고 네 번째를 불시의 죽음(akāla-maraṇa)이라 한다. 예를 들면 등불은 심지가 다하거나 기름이 다하거나 이 둘이 동시에 다하면 꺼지고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의해서 꺼질 수도 있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528, 초기불전연구원(2021)
죽음maraṇa이란 생명기능jīvitindriya이 끊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경우는 수명이 다해 죽는 것, 업이 다해 죽는 것, 둘 모두 다해 죽는 것, 단절하는 업이 끼어들어 죽는 것의 4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둘 모두 다해서 죽는 것ubhayakkhaya은 굳이 왜 말한걸까?
심지는 수명, 기름은 [생산]업, 바람은 단절업에 비유된다. 심지와 기름이 동시에 떨어졌다는 것은 수명의 한계(예: 100세)에 도달함과 동시에, 이번 생을 지탱해주던 업의 연료(배터리)도 바닥난 경우를 말한다. 앞서 인용문에서 언급한 '수명은 다했지만 업이 남은 경우'라면 이번 생의 업의 힘으로 같은 세상이나 더 높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는 수명 그릇도 다 찼고 연료도 다 썼기에 다시 태어나지 못하고 완전히 새로운 업으로 재생하게 될 것이다.
이 4가지를 다룸으로써 아비담마는 비로소 중생들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경우의 수를 설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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