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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아비담마

“인식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과보의 마음들은 출세간의 과의 마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욕계 과보의 마음들이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5장)

by Rihan 202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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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색계 유익한 업의 과보

31-1. 색계 유익한 업은 [다음과 같다]. 초선을 조금 닦고서 그들은 범중천에 태어난다. 그것을 중간 정도 닦고서 범보천에 태어난다. 수승하게 닦고서 대범천에 태어난다.
1. 색계 유익한 업: 색계의 다섯 가지 선 각각은 그 업의 과보로서 그 각각에 정확히 상응하는 색계 과보의 마음을 일어나게 한다. 이 마음은 유익한 선의 마음 그 자체에 의해서 생긴 단 하나의 과보의 마음이다. 본삼매라는 그 절정에 이르기 전의 선의 준비 단계에서 일어나는 유익한 마음들은 욕계의 유익한 마음이기 때문에 그들의 과보는 모두 욕계 과보의 마음들이지 색계 과보의 마음들이 아니다. 색계 과보의 마음은 재생연결식과 바왕가와 죽음의 마음의 오직 세 가지 역할이나 기능만을 한다. 이것은 단지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으로서만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식과정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으며 유익한 선의 마음은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어떤 과보의 마음도 일으키지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인식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과보의 마음들은 출세간의 과의 마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욕계 과보의 마음들이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522, 초기불전연구원(2021)

 

 

1. Pavatti

 

아비담마 길라잡이에서 '삶의 과정'으로 번역되는 pavatti의 어원은 다음과 같다.

  • pavatti = 전개, 진행, 흐름, 과정
    • pa- 강화·전개를 나타내는 접두사 + √vatt 돌다, 굴러가다, 진행하다 + -ti 추상명사형 어미
    • 정신·물질의 계속된 전개, 찰나들의 연속으로서의 삶, 삶이라는 것이 실체가 아니라 조건 따라 계속 굴러가는 과정임을 강조하는 표현

'본삼매'라는 행위 자체만 본다면 삼매의 유익한 결실은 우리의 일상pavatti에서 유익한 과보로써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것이 위 인용문에서 "유익한 선의 마음은 인식과정vīthi-citta에서 일어나는 어떤 과보의 마음도 일으키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색계/무색계 유익한 업을 짓는 마음은 색계/무색계 과보의 마음을 가져온다. 그리고 색계/무색계 과보의 마음은 오로지 재생연결, 존재지속, 죽음이라는 인식과정을 벗어난vīthi-mutta 마음으로서만 기능한다. 다시 말해 색계/무색계 과보심은 삼매의 결과로서 태어날 곳에 연결되고, 그곳에 태어난 존재를 유지bhavaṅga(bhava + aṅga)하는 마음이지, 현재 나의 인식과정에서 새로운 대상을 취해 작용하는 마음이 아니다.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을 쉽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 재생연결식: 전생에서 죽음 직전 자와나 과정에서 일어난 대상을 쥐고 현생을 시작한다.
  • 존재지속심: 인식과정이 일어나지 않을 때마다 재생연결식의 대상을 쥐고 생명을 유지한다.
  • 죽음의 마음: 현생의 바왕가 대상을 쥔 채 생을 마감한다. 아라한이 아니라면 새로운 대상을 쥐고 내생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현재 새로운 대상(색·성·향·미·촉·법)을 경험하는 작용인 인식과정vīthi-citta은 일상, 즉 삶의 과정pavatti에서만 경험된다. 이 경험은 욕계 마음의 영역이다. 마음을 가졌으면서 선정에 들어있지 않은 삼계의 존재, 즉 욕계 존재뿐만 아니라 색계, 무색계 존재까지도 모두 동일하게 일상pavatti에서는 욕계 마음kāmāvacara citta을 사용하여 인식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위 해설에서 대림·각묵스님이 "거듭 말하지만 인식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과보의 마음들은 출세간의 과의 마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욕계 과보의 마음들이다."라고 강조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색계/무색계 존재의 경우 일상을 욕계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조금 다른 부분들은 있다. 색계/무색계 존재도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아니라면 해로운 마음이 일어날 수 있지만, 욕계 존재와 달리 성냄dosa의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색계/무색계는 선정의 마음으로 태어나는 곳이고, 선정은 성냄이 억눌러져야 증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냄은 불만족을 동반하는데, 색계/무색계는 기쁨이나 평온이 지배하는 곳이다. 하지만 탐욕lobha과 어리석음moha에 뿌리박힌 마음은 일어난다. 자신의 존재(색계에서의 삶)에 대한 집착이나 견해(사견) 등은 욕계 탐욕의 마음이다. 더하여 색계 존재는 코, 혀, 몸의 감각기능이 없으므로 이와 관련된 욕계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무색계 존재는 신체가 없으므로 오직 의문(Mind-door)인식과정에서 욕계 유익한/해로운 마음(탐욕, 어리석음)이 일어난다.

 

 

2. Samādhi

 

그렇다면 삼매에 드는 것은 일상에서는 아무런 이익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본삼매에 이르기 전 준비 단계(c.f. 준비, 근접, 수순, 종성)에서 일어나는 강력한 선업 마음들은 욕계 유익한 마음들이다. 그것들은 강력한 욕계 선업 과보를 가져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근접삼매에 들어가기 위한, 닮은 표상을 일으키기 위한 수행 역시 강력한 욕계 선업 과보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근접삼매, 본삼매에 들기 위한 수행의 노력은 다음과 같은 여러 효익이 있다.

  1. 일단 삼매라는 행위 자체가 고요하고 행복한 것이다. 삼매는 수행자에게 '현생의 행복한 머묾diṭṭhadhamma-sukhavihāra’을 준다. 번뇌로 괴로운 삶 속에서 선정은 일시적이지만 완벽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2. 삼매를 익히면 위빳사나를 잘할 수 있다. 삼매는 오장애를 억누른다. 마음이 고요하고 투명해야citta-visuddhi 현상의 있는 그대로를 꿰뚫어 보고 사물의 ① 고유한 특성sabhāva-lakkhaṇa, ② 조건paccaya, ③ '무상·고·무아'라는 보편적 특성sāmañña-lakkhaṇa을 여실히 볼 수 있다.
  3. 본삼매에 이르는 준비 단계parikamma나 근접삼매upacāra 과정에서 지혜가 함께한 수준 높고 많은 양의 유익한 욕계 선업ñāṇa-sampayutta-mahā-kusala을 지을 수 있다. 이런 욕계 선업은 금생과 내생들에서 복puñña과 행운이 많은 삶을 살 수 있는 원인이 될 것이다.
  4. 삼매에 숙달된 수행자가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고,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그 선정 상태에 들거나 선정의 대상을 반조하며 임종을 맞는다면, 이는 무거운 업garuka-kamma이 되어 다음 생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이렇게 ① 어떤 존재로 어떤 곳에 태어나 살아가느냐를 결정하는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 ② 태어난 후 살아가는 경험을 결정하는 '인식과정의 마음'을 구분해서 생각한다면, 삶의 과정pavatti 에서 좋은 과보를 많이 누리려면 수준 높은 욕계 유익한 업을 많이 많이 짓는 게 중요한 것임을 역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선정의 과보(색계/무색계 과보의 마음)는 태어나고(재생연결), 존재하고(바왕가), 죽는(죽음) 역할만 한다. 즉, '어떤 존재가 되느냐'는 결정하지만, '살면서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하느냐'는 결정하지 못한다.

  • 인식과정(vīthi)에서 작동하는 과보심은 출세간 과보를 제외하면 전부 욕계 과보심이다.
  • 색계/무색계 과보심은 존재의 ‘바탕’을 유지할 뿐 일상 체험의 질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 삶이 부드럽고, 즐겁고, 유리하게 흘러가는가는 욕계 유익한 업의 축적량과 질에 달려 있다.

부처님의 32상을 보는 안식,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이식은 모두 욕계 과보의 마음이다. 이런 최상의 형색과 소리를 접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과거 전생에 지어놓은 욕계 유익한 업(보시, 지계, 수행)이 있기 때문이다. 삼계의 어떤 존재든 삶의 과정에서 긍정적인 감각 경험(좋은 것을 보고 듣는 등)을 하려면 '욕계 유익한 업'이 필수적이다. 삶의 과정(pavatti)에서 체험되는 거의 모든 즐겁고 유익한 과보는 욕계 유익한 업의 결과다.

 

 

3. Paṭisandhi

 

다만 세속적 복과 안락의 관점에서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그래도 윤회의 흐름에서 내 삶의 양태를 크게 결정하는 것은 재생연결의 과정이다. 이것이 많은 재가 불자들이 더 좋은 내생을 위해 선업을 쌓는다고 발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속적 복의 관점에서 흔히 말하는 '더 나은 삶'은 삶의 과정(pavatti)에서의 유익한 과보가 많은 것보다 재생연결(paṭisandhi)이 수승한가가 더 중요하다. 색계/무색계 과보심은 주로 재생연결·존재지속·죽음으로 기능하지만, 그 결과로 그 생에서 어떤 감각문이 가능/불가능한지, 어떤 과보가 그 생에 나타날 수 있는지와 같은 삶의 조건을 크게 규정한다. 한편, 일상적 인식과정(vīthi)에서 전개되는 감각 경험의 구체적 과보(보는·듣는 등)는 주로 욕계 과보심으로 나타난다.

 

재생연결paṭisandhi은 ‘그릇’이고, 삶의 과정pavatti은 ‘채워지는 내용물’이다. 재생연결을 결정하는 업은 그 존재의 기본값base-line을 설정한다. 즉, 우선순위로 보자면 잘 태어나는 것이 일상에서 좋은 과보를 받는 것보다 윤회 속에서는 더 중요하고 우선순위가 높다. 비유하자면 거지의 운수 좋은 하루보다 왕자의 불행한 하루가 객관적으로는 더 나은 것과 같다. 인간으로서의 최상의 삶이 욕계 천신의 삶이나 범천의 삶보다 일반적으로 삶의 질이 더 좋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수행의 측면에서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아무리 부유한 왕의 개(pavatti의 복이 많음)로 태어나도, 축생이라는 재생연결(ahetuka, 뿌리 없음)의 한계 때문에 그 생에서는 선정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한 생의 상한선과 하한선은 재생연결식의 성격에서 대체로 정해진다. pavatti의 과보들은 재생연결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흔들린다. 아무리 pavatti에서 좋은 과보가 많아도 재생연결이 하열하면 구조적 한계를 넘기 어렵다.

  • 태어나는 존재계 (욕계 / 색계 / 무색계)
  • 감각 구조 (눈·귀·몸·마음의 성격)
  • 평균적인 행복/고통의 범위
  • 수행 가능성의 천장과 바닥(c.f. 도·과를 깨닫거나 선정을 증득할 수 있는지 여부)

태어날 곳의 성취gati-sampatti가 있다면 과거에 지은 해로운 업(악업)이 있어도, 천상의 환경이 너무나 훌륭하기 때문에 그 생에서 결과가 아주 약하게 나타나거나 아예 나타나지 못한다. 악처에 태어나면gati-vipatti 과거에 지은 유익한 업(선업)이 있어도, 지옥이나 아귀계의 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그 생에서 결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아주 미미하게 나타날 것이다. 즉, 태어날 곳을 잘 태어나는 것(재생연결)이 삶의 과정에서 자잘한 좋은 과보를 챙기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함을 알 수 있다.


욕계 천신deva의 신체는 인간보다 훨씬 미세하고 아름다우며, 그들이 경험하는 색·성·향·미·촉은 인간의 최상급 대상보다 훨씬 즐겁고 매혹적이라고 한다. 비유하자면 인간 왕의 쾌락도 천신의 하녀가 누리는 쾌락보다 못하다고 볼 수 있겠다. 색계 범천brahma은 육체적 고통, 성냄, 슬픔 없이 오직 선정의 희열과 행복, 혹은 평온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행복하고 안락한 과보를 누리는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삶의 과정(pavatti)에서의 자잘한 행운보다 재생연결(paṭisandhi)을 통해 좋은 차원(천상, 범천)에 태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우선순위가 높을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과보를 받는 것’이 아닌, ‘새로운 업을 짓는 것’의 측면에서 재생연결을 바라봤을 때다. 천신과 범천은 너무 행복해서 괴로움을 자각하기 어렵고(고성제를 보기 힘듦), 수명이 너무 길어서 무상을 보기 어렵다. 따라서 그들은 '수행을 시작할 동기(괴로움의 자각)'를 얻기가 인간보다 훨씬 어렵고, 새로운 강력한 선업(특히 출리바라밀)을 짓기가 인간보다 어렵다. 인간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섞여 있어, 지혜로운 자는 여기서 위빳사나를 수행하거나 윤회를 끊을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즉, 해탈의 가능성, 수행의 측면에서라면 인간계가 무상·고·무아를 관찰하기 가장 유리하다. 너무 괴로워서 수행할 힘이 없는 지옥과, 너무 즐거워서 수행할 마음을 내기 어려운 천상 사이에서, 인간은 적당한 괴로움dukkha이 있어 출리심을 내기가 비교적 쉽다. 범천들은 몸이 아프지 않으니 인욕을 닦을 일이 없고, 주변이 다 풍요로우니 보시할 대상이 없다.

 

이런 사실을 숙고해보면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양면이 있다는 것이 와닿는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지혜로운 자는 대상에 취착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신의 생의 목적에 따라 스스로의 길을 현명하게 '취착없이 선택하여' 결정할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내용을 보편적인 관점에서 정리하자면 삶의 평균적 질은 재생연결이 결정하고, 일상에서 체감하는 행복은 욕계 과보가 결정하며, 수행과 해탈의 가능성 측면에서는 인간 재생연결이 유리하고, 세속적 복의 측면에서는 천상과 범천의 재생연결이 유리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4. Vipassanā

 

보시는 수승한 행위이다. 지계는 더 어렵지만, 더 수승한 결과를 가져다준다. 수행은 번뇌를 제거하고, 지혜가 예리해지며, 청정해진다는 핵심 목적 외에도 그 부수적인 효익으로 더더욱 수승한 세속적 복까지 가져다준다.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순간의 마음은 지혜와 결합된 욕계 유익한 마음ñāṇa-sampayutta mahā-kusala citta이다. 이는 욕계에서 지을 수 있는 선업 중 최상급의 선업이다. 위빳사나의 마음은 대상을 무상·고·무아로 관찰하려는 의도가 들어간 욕계의 마음이고, 주 목적은 해탈(윤회의 종식)이지만, 해탈에 이르기 전까지 윤회하는 동안에는 역설적으로 그 강력한 선업의 힘으로 인해 가장 탁월한 욕계의 과보를 받게 된다.

 

위빳사나 수행의 부수적인 효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 재생연결: 세 가지 원인ti-hetuka을 갖춘 총명한 인간이나 천신으로 태어난다.
  • 삶의 과정: 부유함, 건강, 명예, 좋은 가문, 타인의 존경 등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복락을 부수적으로 얻게 된다.
  • 수행자는 수행을 하기에 유리한 편안한 인식, 장애 감소, 유리한 조건, 심리적 안정이라는 욕계 유익한 과보를 받게 된다.
  • 법을 탐구하고 질문하는 업은 '지혜'를 가져오고, 수행 과정에서의 인내와 노력 등은 다양한 세속적 복을 함께 가져온다.
  • 비유하자면 나무를 심는 목적은 '과일(깨달음)'을 얻기 위함이지만, 그 과정에서 '시원한 그늘(세속적 행복)'과 '목재(재물)'는 덤으로 얻어지는 것과 같다.
  • 즉, 위빳사나 수행은 깨달음을 위한 수행일 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윤회하는 삶을 가장 풍요롭고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공덕행puñña이기도 하다.

이러한 세속적 복, 유리한 조건은 저쪽 언덕(피안)으로 가기 위한 튼튼한 뗏목과도 같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 필요하지만, 완전히 건너려면 버려야 한다. 뗏목을 이고 저 언덕을 오를 순 없기 때문이다. 앞서 위빳사나의 부수적인 효과는 행복한 삶, 풍요로운 삶, 성공을 동반한다고 했지만, 위빳사나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번뇌의 소멸과 해탈, 윤회의 굴레로부터 완전한 벗어남이 위빳사나의 목적이다. 수행은 필연적으로 그 과정에서 질적으로 매우 높은 욕계 유익한 업을 대량으로 쌓게 한다. 그 결과 수행자는 삶의 과정 속에서 비교할 수 없이 안정되고 유리한 과보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목표로 삼는 순간 수행자의 길은 그 목표가 빗나가게 된다.

 

복puñña은 윤회 안에서 좋은 결과를 주는 것이고, 해탈vimutti은 윤회 구조 자체를 끊는 것이다. 훌륭한 행위들은 겉으로 보면 '복을 닦는 중인지, 해탈을 향해 가는 중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 구분은 그 행위를 하는 수행자의 '의도'에 달려있다. 선업을 행하는 의도가 출세간을 향해 있다면, 그것은 빠라미pāramī가 될 것이다. 세속적 복을 희구할 뿐이었다면, 그것은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로 돌아온다. 착한 일은 복puñña이지만, 그 행위를 "이 공덕으로 윤회를 건너가리라"는 출리nekkhamma의 의도로 행할 때 같은 행위는 빠라미가 된다.

 

대상이 무상·고·무아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면 그것을 의지처로 삼지 않고 놓게 될 것이다. 대상을 즐길 가치가 있는 것으로 취하면 꽉 쥐려 할 것이고,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법으로 본다면 미련 없이 놓을 것이다. 선한 의도, 좋은 결과, 마음의 평온, 천상의 행복, 더 수승하고 미세한 상태에 대해 "이것이 좋다, 이것을 유지하고 싶다"는 '존재로서 좋다'는 미세한 취착이 있다면 그것은 윤회를 거듭하는 업과 공덕일 뿐이다. “이 평온도 조건 지어진 것이다”, “이 미묘한 기쁨도 생겨났다 사라진다”, “여기에도 나라는 실체는 없다”는 사실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지혜로써 알고 보게 될 때 출세간을 향하는 수행의 목적은 성취된다.

 

다르게 말하면, 도와 과는 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복을 넘어서 복 자체도 버리는 것이다. 복은 '잘 살고 싶다'는 방향의 정화이고,
해탈은 '살고 싶은 방향 자체가 문제였음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복은 윤회를 정교하게 만들고, 해탈은 윤회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복은 좋은 삶이고, 해탈은 끝내는 삶이다. 복과 해탈의 경계선은 ‘무상·고·무아를 보면서도 여전히 취하는가, 아니면 그것조차 놓는가’에서 갈린다. 이것은 이해가 아니라 태도의 전환이다.

 

 

참고 1. ① sabhāva-lakkhaṇa, ② paccaya, ③ sāmañña-lakkhaṇa

 

①: "이것은 물질이다", "이것은 마음이다"라고 대상을 뭉뚱그려 보는 개념적 인식을 깬다. 단단함(지), 뜨거움(화), 느낌(수), 아는 기능(식) 등 정신과 물질을 최소 단위로 쪼개어 그 고유한 성질을 확인한다. 이로써 '나atta'라는 단일한 실체가 있다는 착각(덩어리라는 상, ghana-saññā)을 깨뜨리고 오직 법dhamma만이 있음을 확인한다. (견청정)
*핵심 키워드 - 해체deconstruction

 

②: 앞서 확인한 정신과 물질이 우연히 생겨나거나 신(God)이 만든 것이 아님을 통찰한다. 과거의 업, 현재의 마음, 온도, 음식 등의 조건이 모였을 때 결과가 일어나고, 조건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인과관계를 파악한다. 이를 통해 과거·현재·미래의 생존에 대한 의심을 제거한다.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
*핵심 키워드 - 인과causality

 

③: 이제 개별적인 존재(1단계)와 그 원인(2단계)이 파악되었으므로, 이들 형성된 모든 것saṅkhāra에 보편적인 진리를 적용한다. 찰나생·찰나멸하는 현상을 목격함으로써 "변하므로 무상anicca하고, 무너지므로 괴로움dukkha이며,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으므로 무아anatta다"라는 세 가지 특성을 뼈저리게 통찰한다. (도와 도 아님을 알고 보는 견해의 청정 이후)
*핵심 키워드 - 삼법인Three Marks

 

 

참고 2. "법을 탐구하고 질문하는 업은 '지혜'를 가져오고, 수행 과정에서의 인내와 노력 등은 다양한 세속적 복을 함께 가져온다."의 근거

"...바라문 학도여,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잔인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살해와 파괴를 일삼고 뭇 생명들에게 자비가 없는 행위는 수명을 짧게 하는 길이다."
"...바라문 학도여,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며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으며, 양심적이고 동정심이 있으며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무는 행위는 수명을 길게 하는 길이다."

"...바라문 학도여, 손이나 흙덩이나 막대기나 칼로써 중생들을 해코지하는 행위는 병약하게 하는 길이다."
"...바라문 학도여, 손이나 흙덩이나 막대기나 칼로써 중생들을 해코지하지 않는 행위는 건강하게 하는 길이다."

"...바라문 학도여, 성을 잘 내고 성미가 급하며 사소한 비난에도 노여워하고 화를 내고 분노하고 분개하며 분노와 성냄과 불만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행위는 못생기게 하는 길이다."
"...바라문 학도여, 성을 잘 내지 않고 성미가 급하지 않아 많은 비난에도 노여워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분개하지 않으며 분노와 성냄과 불만족을 드러내지 않는 행위는 잘생기게 하는 길이다."

"...바라문 학도여, 질투가 심하여 다른 사람이 얻은 이득과 환대와 존중과 존경과 칭송과 예경을 질투하고 시샘하여 질투심에 묶여버리는 행위는 세력을 없게 하는 길이다."
"...바라문 학도여, 질투를 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얻은 이득과 환대와 존중과 존경과 칭송과 예경을 질투하지 않고 시샘하지 않으며 질투심에 묶이지 않는 행위는 세력을 있게 하는 길이다."

"...바라문 학도여, 사문과 바라문에게 음식과 음료와 옷과 탈것과 화환과 향과 연고와 침상과 거처와 등불을 보시하지 않는 행위는 가난하게 하는 길이다."
"...바라문 학도여, 사문과 바라문에게 음식과 음료와 옷과 탈것과 화환과 향과 연고와 침상과 거처와 등불을 보시하는 행위는 부유하게 하는 길이다."

"...바라문 학도여, 완고하고 거만하여 예경해야 할 사람에게 예경하지 않는 행위는 낮은 가문에 태어나게 하는 길이다."
"...바라문 학도여, 완고하지 않고 거만하지 않아서 예경해야 할 사람에게 예경하는 행위는 높은 가문에 태어나게 하는 길이다."

"...바라문 학도여, 사문이나 바라문을 찾아가서 '존자시여, ...'라고 질문을 하지 않는 행위는 우둔하게 하는 길이다."
"...바라문 학도여, 사문이나 바라문을 찾아뵙고 '존자시여, ...'라고 질문하는 행위는 통찰지를 갖게 하는 길이다."

-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 니까야』 제4권 pp.408~414, 초기불전연구원(2021)

 

MN135 『작은 업 분석 경Cūḷakammavibhaṅga Sutta』 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생명을 죽이면 수명이 짧아진다. 연민으로 생명을 보호하면 수명이 길어진다.
  • 생명을 해코지하면 병약해진다. 생명을 해코지하지 않으면 건강해진다.
  • 성미가 급하고 화를 잘 내면 용모가 추해진다. 온화하고 인욕하면 용모가 아름다워진다.
  • 타인의 이익을 질투하면 위세(세력)이 없어진다. 타인의 이익을 함께 기뻐하면 큰 위세를 떨친다.
  • 보시하지 않으면 가난해진다. 베풀고 나누면 부유해진다.
  • 거만하여 남을 공경하지 않으면 천한 가문에 태어난다. 겸손하여 남을 존중하면 귀한 가문에 태어난다.
  • 무엇이 유익하고 해로운지 묻지 않으면 우둔해진다. 법을 탐구하고 질문하면 지혜로워진다.

질문하고 탐구하는 행위는 지혜의 기능paññindriya을 사용하여 무지moha를 깨뜨리는 작용이다. 이러한 '지혜와 결합된 마음ñāṇa-sampayutta citta'의 반복은 내생에 '지혜'라는 과보를 맺는 직접적인 원인hetu이 될 것이다. 따라서 법을 탐구하고 질문하는 업은 나의 상속흐름에 지혜를 가져온다.

 

성내지 않고adosa 인내khanti하는 업의 과보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외모vaṇṇa로 나타난다. 화를 내면 얼굴이 찌푸려지고 흉해지지만, 인내하면 마음이 부드럽고 온화해져 그 과보로 아름다운 색신(몸)을 받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정진viriya하는 것, 보시하는 것, 질투issā하지 않고 타인의 공덕을 기뻐하는 마음muditā 등은 명예와 재물을 가져오는 원인이 될 것이다. 수행을 지속하는 '노력viriya' 자체가 삶을 지탱하는 강력한 에너지가 되어 성공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행 과정에서의 인내와 노력 등은 세속적 복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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