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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빠알리 경전

Anattalakkhaṇa-sutta - 빠알리 원전 강독 (2)

by Rihan 2023.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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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ūpaṃ, bhikkhave, anattā( hoti).
"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아다.

 

여기서 rūpaṃ 는 a로 끝나는 중성명사의 주격 단수 형태이다.

a로 끝나는 중성명사의 주격 단수와 목적격 단수는 모두 -ṃ 으로 끝나며, 이를 a로 끝나는 남성명사 목적격과 혼동하면 안 된다.

 

원문은 anattā 로 끝나지만, 문법적으로는 be 동사인 hoti 가 생략된 것이라 한다.

2형식으로 "물질은 무아다."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anattā 는 문법적으로 보어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2.

다음은 "물질은 무아다."를 설명하는 초기불전연구원 주해들이다.

 

「무아의 특징 경」(S22:59) §3의 주해에서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에는 무아인 이유를 다음의 넷으로 설명하고 있다.
"공하고, 주인이 없고, 지배자가 아니고, 자아와 반대된다는 뜻에 의해서, 이러한 네 가지 이유(kāraṇa) 때문에 '무아(anatta)'이다."(MA.ii.113)

『청정도론』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어난 형성된 것들(saṇkhārā)은 머묾에 이르지 말고, 머묾에 이른 것은 늙지 말고, 늙음에 이른 것은 무너지지 말라'고 이 세 단계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지배력(vasavatti-bhāva)을 행사하지 못한다.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므로 공하다. 그러므로 공하고, 주인이 없고,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고(avasa-vatti), 자아와 반대되기 때문에 무아다." (VIS.XX.47)

한편, 본경에서는 두 가지 이유로 오온, 즉 나라는 이 존재가 무아임을 천명하고 있다.
첫째, §3에서 오온에는 이와 같이 되어라거나 이와 같이 되지 말라는 등의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avasavattit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둘째, §4에서는 삼특상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무상하고 괴로움이라는 처음의 두 가지 특상을 통해서 무아라는 특상을 설명하고 있다.

 

『청정도론』 20장 47번 문단

47. [(1) 취하고 버림으로써]: 이 가운데서 취한다는 것은 재생연결이고 버린다는 것은 죽음이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취하고 버림으로써 백 년을 한정한 뒤 상카라들에 대해 세 가지 특상을 제기한다. 어떻게?

이 생에 속하는 모든 상카라들은 무상하다(aniccā). 무슨 이유인가? 일어나고 사라짐이 있기 때문이고, 변하기 때문이고, 잠시뿐이고, 항상함과 반대되기 때문이다(uppādavayavattito, vipariṇāmato, tāvakālikato, niccapaṭikkhepato ca).

일어난 상카라들은 머묾을 얻고, 머무는 상카라들은 늙음으로 고통 받고, 늙음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무너진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핍박받고, 견디기 어렵고, 괴로움의 기지이고, 행복과 반대되기 때문에 괴로움이다(abhiṇhasampaṭipīḷanato, dukkhamato, dukkhavatthuto, sukhapaṭikkhepato ca dukkhā).

'일어난 상카라들은 머묾에 이르지 말고, 머묾에 이른 것은 늙지 말고, 늙음에 이른 것은 무너지지 말라'고 이 세 단계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므로 공하다. 그러므로 공하고, 주인이 없고,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자아와 반대되기 때문에 무아다(suññato, assāmikato, avasavattito, attapaṭikkhepato ca anattā).

 

「나의 존재는 있지 않음 경」(S22:15) §3의 주해에서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a).'라는 것은 [각각] 무상과 괴로움과 무아를 뜻한다."(SA.ii.372; MA.v.83)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는 괴로움이라고 관찰하기 때문에 형성된 것들에 대한 견해에서 내 것이라는 생각(mamaṃ-kāra)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아니고'라는 것은 무상이라고 관찰하기 때문에 이런 견해에서 나라는 생각(ahaṃ-kāra)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것은 이런 견해에서 자아를 거머쥠(atta-ggāha)이 없기 때문이다."(MAṬ.ii.200)

"이 셋은 [각각] 갈애와 자만과 사견(taṇhā-māna-diṭṭhi)으로 거머쥠을 내던지는 것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는 것은 원인(hetu)과 이유(kāraṇa)와 위빳사나와 함께하는 도의 통찰지로써 봐야 한다는 뜻이다."(AA.ii.380)

 

「분석 경」(S12:2) §8의 주해에서

"눈의 문(dvāra) 등에서 속행과정(javana-vīthi)에 의해서 전개되는 갈애의 이름이 '형색에 대한 갈애(rūpa-taṇhā)' 등이다. 이것은 마치 '장자의 아들, 바라문의 아들'이라고 아버지 쪽을 취해서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형색, 소리, ..., 법이라는] 대상을 취해서 이름을 붙인 것(ārammaṇato nāmaṃ)이다. 여기서 형색을 대상으로 가진 갈애가 '형색에 대한 갈애'이다.

이러한 [갈애가] 감각적 욕망을 통해서 형색을 맛보면서 전개되는 것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kāma-taṇhā)'이다. 상견(sassata-diṭṭhi)과 함께하는 탐욕에 의해서 '물질은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다.'라고 이와 같이 맛보면서 전개되는 것이 '존재에 대한 갈애(bhava-taṇhā)'이다. 단견(uccheda-diṭṭhi)과 함께하는 탐욕에 의해서 '물질은 부서지고 파멸하여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와 같이 맛보면서 전개되는 갈애가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vibhava-taṇhā)'이다.

형색에 대한 갈애는 이와 같이 하여 세 가지가 된다. 이렇게 하여 소리에 대한 갈애 등까지 합하면 모두 18가지가 된다. 이것은 안의(ajihatta) 형색 등에 대해서 18가지가 되고, 밖의(bahiddhā) 형색 등에 대해서 18가지가 되어 모두 36가지가 된다. 이렇게 하여 과거의 것(atītāni) 36가지, 미래의 것(anāgatāni) 36가지, 현재의 것(paccuppannāni) 36가지가 되어 모두 108가지 갈애의 분류(taṇhā-vicaritā-ni)가 있게 된다."(SA.ii.15~16)

 

 

 

출처: 초기불전연구원동호회 서울경기공부모임 빠알리 원전 강독 강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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