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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초기불교

“신통과 고행 등에 눈을 팔아서는 출가의 결실인 해탈·열반을 실현하지 못한다.” (D24 빠띠까 경 - 신통 사기꾼)

by Rihan 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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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가 니까야 3권 14쪽

본 품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기본 정신을 역자는 출가(pabbajita, 혹은 pabbajana)라고 파악한다...

먼저 '빠띠까 경'(D24)은 출가와 환속이 경의 중요한 주제며 신통과 고행이라는 이적에 눈을 팔아서는 출가의 성스러운 결실인 해탈·열반을 결코 실현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해준다.

 

 

2. 디가 니까야 3권 16쪽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
절집에 출가하러 들어오면 제일 먼저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출가란 완전히 출가하는 사람 개인 의지이다.
아무도 출가하라고 부추기지 않고 환속한다 해서 잡지 않는다.

부처님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출가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환속을 하였다.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의사이다.

예를 들면 본서 제1권 '뽓타빠다 경'(D9 §32)에 나타나는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찟따는 이미 7번이나 환속하였고 8번째에 자아에 관한 세존의 법문을 듣고 다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3. 디가 니까야 3권 16-17쪽

이처럼 수낙캇따의 환속 사유는 신통과 세상의 기원이라고 하는 출가자가 추구하는 도닦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그는 신통이라는 비본질적인 관심과 세상의 기원이라고 하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견해의 문제 때문에 출가하였으니 환속은 불 보듯 뻔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불교의 근본입장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바른 견해(정견)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근본적으로 신통변화를 비롯한 인간을 넘어선 법(uttarimanussa-dhamma)을 재가자들에게 드러내지 말 것을 비구계목 안에 포함시키셨다.

...비구계목(구족계) 속에 신통변화를 나투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 나타난다는 말은 세존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비구들이 신통을 나툴 수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런 신통이 승가에게 불편함을 주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4. 디가 니까야 3권 38쪽

'수낙캇따여,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오라, 수낙캇따여. 그대는 나를 의지해서 머물러라.'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 출가하라고 해서 출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출가는 자발적인 것이다.

'... 쓸모없는 인간이여, 이와 같은데 그대가 누구이길래 누구를 버리고 떠난단 말인가?
보라, 쓸모없는 인간이여. 이러한 잘못은 그대에게 있다는 것을!'

 

 

5. 디가 니까야 3권 39-40쪽

'...수낙캇따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간을 넘어선 법에 기인한 신통의 기적을 나투든, 인간을 넘어선 법에 기인한 신통의 기적을 나투지 않든, 내가 누구를 위해서 설한 법은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가?'

'세존이시여, 인간을 넘어선 법에 기인한 신통의 기적을 나투시든, 인간을 넘어선 법에 기인한 신통의 기적을 나투지 않으시든, 세존께서 설하신 법은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합니다.'*

*그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하면 괴로움을 멸진하여 해탈·열반을 실현한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괴로움의 해결이 아니라 기적과 세상의 기원과 같은 다른 것에 쏠려있기 때문에 결국은 환속을 하고 만다.

'수낙캇따여, 참으로 그러하다. 인간을 넘어선 법에 기인한 신통의 기적을 나투든, 인간을 넘어선 법에 기인한 신통의 기적을 나투지 않든, 내가 누구를 위해서 설한 법은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한다. 수낙캇따여, 그러므로 여기서 인간을 넘어선 법에 기인한 신통의 기적을 나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보라, 쓸모없는 인간이여. 이러한 잘못은 그대에게 있다는 것을!'

(11번 주해)
수낙캇따의 관심은 이처럼 온통 쓸데없는, 밖의 기이한 현상이나 우주의 기원 등에 쏠려있다. 그러기에 자신을 처절하게 관찰하여 그것을 토대로 염오-이욕-소멸-해탈과 괴로움의 파괴를 설하시는 부처님 가르침이 그의 귀에 들어왔을 리가 없고 온몸에 사무쳤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어쩌면 그의 환속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6. 디가 니까야 3권 42-44쪽

"'수낙캇따여, 나는 그대에게 고하노라. 수낙캇따여, 나는 그대에게 분명히 밝히노라. 이런 그대를 두고 사람들은 '릿차위의 후예 수낙캇따는 사문 고따마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는 견뎌내지 못하자 공부지음을 내팽개치고 저열한 삶으로 되돌아가버렸다.'라고 말들을 할 것이다. 수낙캇따여, 그들은 이렇게 말들을 할 것이다.'

박가와여, 이와 같이 내가 말하였건만 릿차위의 후예 수낙캇따는 이 법과 율로부터 떠나 버렸다.
마치 불행한 곳과 지옥으로 향하는 자처럼."

 

 

7. 디가 니까야 3권 43-46쪽

'수낙캇따여, 그대는 개처럼 사는 서계를 가졌으며 네 다리로 걷는 나체수행자 꼬락캇띠야가 땅바닥에 던져준 음식을 [손을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만 씹어 먹고 입으로만 빨아먹고 있는 것을 보고는 '오, 참으로 멋진 모습이로구나. 이 사문은 네 다리로 걸으면서 땅바닥에 던져준 음식을 [손을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만 씹어 먹고 입으로만 빨아먹는구나.'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14번 주해)
...세존께서는 이 서계를 실천하는 세니야에게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서계를 닦고,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버릇을 닦고,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마음을 닦고, 완전하고 중단됨이 없이 개의 행동거지를 닦고 나서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는 개들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만일 그가 '이런 버릇과 서계와 고행과 청정법행으로 신이 되거나 다른 낮은 신이 될 것이다.'라는 견해를 가진다면 이것은 그의 잘못된 견해일 뿐이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이런 말씀을 들은 세니야는 다시 세존 문하에 출가해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 쓸모없는 인간이여, 나는 [다른] 아라한을 질투하지 않는다. 단지 그대에게 이러한 삿된 견해가 생겼으니 그것을 버리라는 것이다. 그대에게 오랜 세월 불행과 괴로움이 있게 하지 말거라...'

 

 

8. 디가 니까야 3권 66-67쪽

"... 사방을 두루 굽어본 뒤 세 번 사자후를 토하리라면서 자칼의 소리로 짖었고 여우의 소리로 짖었습니다.
그러니 저 불쌍한 자칼과 사자후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도반 빠띠까뿟따여, 마찬가지로 당신도 잘 가신 분의 훈육으로 삶을 영위하고 잘 가신 분이 남겨주신 것을 먹으면서도 여래·아라한·정등각에게 대들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불쌍한 빠띠까뿟따와 여래·아라한·정등각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사자라고 간주하면서
나는 동물의 왕이노라고 자칼은 생각했지만
그처럼 그는 자칼의 소리로 짖었다.
불쌍한 자칼과 사자후를 어찌 비교하겠는가?...

...다른 자를 따라다니면서
그가 남긴 것을 먹고는 살이 쪄서
자신의 [천성]을 알지 못하는 자칼은
[스스로를] 호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자칼의 소리로 짖었다.
불쌍한 자칼과 사자후를 어찌 비교하겠는가?...

...개구리와 헛간의 생쥐와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들을 먹으면서도
큰 숲과 빈 숲에서 번영을 누리는
나는 동물의 왕이노라고 자칼은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자칼의 소리로 짖었다.
불쌍한 자칼과 사자후를 어찌 비교하겠는가?

 

 

9. 디가 니까야 3권 72-75쪽

(디가 니까야 1권 117쪽 96번 주해)
...여기서는 특정한 세상에서 이곳에 온 자들이 그 세상에 자기보다 먼저 있었던 신이 자기를 창조한 것이라 믿고 그렇게 주장하는 견해를 3가지로 적고 있다. 그래서 그 세상에 먼저 있었던 신은 영속한다고 주장하고, 그다음에 거기 태어난 신들은 영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절대자설과 창조설에 대한 부처님의 분명한 설명이라 할 수 있겠다. 부처님은 그들의 말이 결코 틀렸다고 단정하지는 않으신다. 그들의 본 것에 한해서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특정 시점까지 일뿐 그 이전은 알지 못하는 경우에 속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견해를 국집하고 있는 그들은 견해의 그물에 걸려서 벗어날 기약이 없으니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박가와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스승으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자재천이 창조하고 범천이 창조한 세상의 기원을 천명한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들이 스승으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신이 창조하고 범천이 창조한 세상의 기원을 천명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들은 내가 이렇게 물으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맹세합니다.'라고 한다. 나는 다시 말한다. '그러면 존자님은 어떻게 스승으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신이 창조하고 범천이 창조한 세상의 기원을 천명하는가?' 내가 이렇게 묻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에게 되묻는다. 질문을 받으면 나는 그들에게 설명을 한다."

"'도반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수축한다. 세상이 수축할 때 대부분의* 중생들은 광음천에 나게 된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오랜 세월 산다.

*대부분의라는 것은 범천보다 위의 세상이나 무색계에 태어난 자들을 제외한 신들을 두고 한 말이다... 선을 닦아서 도달하는 색계와 무색계를 범천의 세상(brahma-loka)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수승한 신들은 우주의 팽창과 수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선에 든 마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마음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도반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팽창한다. 세상이 팽창할 때 텅 빈 범천의 궁전*이 출현한다. 그때 어떤 중생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서 텅 빈 범천의 궁전에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도 역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오랜 세월 살게 된다.

*"...이곳을 만들었거나 만들게 한 자는 아무도 없다. '청정도론' (XX.29)에서 설명한 대로 업을 조건한 온도에서 생긴 보배로 된 곳이다."(DA.i.110) 즉 이 범천의 궁전은 누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업을 조건한 온도에서 생긴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모든 물질은 업, 마음, 온도, 영양분에서 생긴다고 한다.

도반들이여, 그가 그곳에서 오랜 세월 홀로 살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싫증과 따분함이 생겨, '오, 다른 중생들이 여기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갈망하였다]. 그러자 다른 중생들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해서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 범천의 궁전에 태어나 그 중생의 동료가 되었다. 그들도 역시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오랜 세월 살게 된다.'"

"'도반들이여, 그러자 그곳에 먼저 태어난 중생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나야말로 이 중생들의 창조자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내게 전에 '오, 다른 중생들이 여기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이런 생각이 일어났고 이러한 내 마음의 염원 때문에 이 중생들이 여기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다시피 창조자라는 것은 그곳에 먼저 태어나서 혼자됨에 싫증이 나고 초조하던 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착각일 뿐이다.

뒤에 그곳에 태어난 중생들에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존자는 범천이요...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시다. 이 존귀하신 범천이야말로 우리들의 창조자이시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우리는 이 분이 여기에 먼저 계신 것을 보았고 우리는 후에 생겨났기 때문이다.'라고.'"

"'도반들이여, 거기서 먼저 태어난 그 중생은 수명이 더 길고 더 아름답고 더 힘이 세었으며 뒤에 태어난 중생들은 수명이 더 짧았고 더 못생겼으며 더 힘이 약하였다.

도반들이여,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곳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을 떠나 출가한다. 집을 떠나 출가하여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삼매에 들어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삼매에 도달한다.*

*...영속론자들보다 삼매의 힘으로 기억하는 정도가 현저하게 떨어져서 단지 한 생 앞만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존자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이 존귀하신 범천이 이 우리들의 창조자이시다. 그는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 존자 범천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그런 우리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이곳에 왔다.'라고.'

그대 존자님들은 이러한 것을 두고 스승으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신이 창조하고 범천이 창조한 세상의 기원이라고 천명하지 않는가?'
그러자 그들은 '도반 고따마시여, 고따마 존자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참으로 우리는 그와 같이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10. 디가 니까야 3권 75쪽-79쪽

"...'도반들이여, '유희로 타락해 버린 자'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기 때문에 마음챙김을 놓아버렸다. 마음챙김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그 신들은 그 무리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이 신들은 본경에 나타나듯이 놀이에 빠진 신들이다.. 사대왕천의 영역에 속한다고 한다... 그들은 천상의 정원에서 노는데 빠져서 먹고 마시는 것조차 잊어버려 마치 화환이 시들듯이 죽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신들은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의식하기 때문에 죽는다고 한다...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유희로 타락해 버리지 않은 그분 신들은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내지 않았다.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들은 마음챙김을 놓아 버리지 않았다. 마음챙김을 놓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 신들은 그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유희로 타락해버려서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다.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챙김을 놓아버렸다. 마음챙김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무리에서 떨어졌고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이곳에 왔다.'..."

"...'존자들이여, '마음이 타락해 버린 자'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한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했기 때문에 서로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다. 그들은 서로서로 마음이 타락했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하였다. 그래서 그 신들은 그 무리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사대왕천의 신들인데 축제에서 마차를 타고 가다가 서로 분노하여 경쟁하고 다투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 신들은 [지나치게] 남들을 의식하기 때문에 죽는다고 한다.

"...'존자들이여, 무상유정이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인식이 생겨나면 그 무리로부터 죽게 된다.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곳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을 떠나 출가한다...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바로 인식이 생겨난 것을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아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나는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제 존재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았지만 존재로 전변했기 때문이다.'라고..."

 

 

11. 디가 니까야 3권 81쪽

"박가와여, 다른 견해를 가졌고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다른 [가르침을] 좋아하고 다른 수행을 추구하고 다른 스승을 따르는 그대가 청정한 해탈을 구족하여 머물기란 어렵다. 박가와여 그대는 다만 그대가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이러한 청정한 믿음을 잘 보호하여라."*

*...초기경의 여러 군데서 부처님께서는 다른 사상과 다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불교의 근본을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히려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대로 수행할 인연이 성숙해야 말씀을 해 주신다. 여기서도 박가와는 세존께 깊은 믿음을 가지기는 하였지만 아직 다른 사상과 다른 견해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단지 청정한 믿음을 그대로 잘 보호하라고만 말씀하시는 것이다.

 

 

12. 맛지마 니까야 3권 663쪽

"수낙캇따여, 내 앞에서 구경의 지혜를 선언하여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꿰뚫어 안다.'라고 하는 그들 가운데 어떤 비구들은 바르게 구경의 지혜를 선언했고, 어떤 비구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구경의 지혜를 선언했다. 수낙캇따여, 거기서 바르게 구경의 지혜를 선언한 비구들의 선언은 사실이다. 수낙캇따여, 그러나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구경의 지혜를 선언한 비구들에 대해서는 여래는 '이들에게 법을 설하리라.'라는 생각을 한다. 수낙캇따여, 이와 같이 참으로 이런 경우에 여래는 '이들에게 법을 설하리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 어떤 쓸모없는 사람들은 질문을 고안하여 여래에게 와서 질문을 한다. 수낙캇따여, 그런 경우에도 여래는 '이들에게 법을 설하리라.'라고 생각하지만 [여래의 마음이] 바뀐다."*

*...세존께서는 도닦는 자들에게 법을 설하신다. 그러나 여기 자신의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보신다. '이들은 이 경을 듣고 잘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체하고, 증득하지 못하고서도 증득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오랜 세월 손해와 괴로움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이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법을 설하리라는 마음이 일어나지만 그 마음이 변해버린다... 즉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버린다는 뜻이다...

 

 

13. 맛지마 니까야 3권 672-673쪽

"수낙캇따여, 참으로 성스러운 율에서 공부지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가버린 자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수낙캇따여, 오염된 범계를 저지르는 자는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겪을 것이다."

 

 

14. 맛지마 니까야 3권 677쪽

"수낙캇따여, 예를 들면 맹독을 가진 독사가 있다고 하자. 그때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며 즐거움을 원하고 괴로움에 진저리치는 사람이 온다고 하자.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낙캇따여? 그 사람은 내가 이 독사에게 물리면 죽거나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맹독을 가진 독사에게 손이나 손가락을 주겠는가?...

수낙캇따여, 그와 같이 참으로 비구가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에서 단속하여 집착이 괴로움의 뿌리임을 알아 집착을 여의고 집착을 부수어 해탈하면 집착의 대상으로 몸을 향하게 하거나 마음을 일어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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