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아비담마 길라잡이의 3장 중 대상의 길라잡이를 공부하다가 의문이 생겨 선배 도반분들과 각묵스님께 질문을 드린 바 있다.
아래는 질문과 그에 따른 답변 내용들과,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에 대한 필자 나름대로의 사유를 써본다.
Q.
아비담마 길라잡이 1권 367쪽을 보면 “나머지 욕계 과보의 마음들과 미소 짓는 마음은 항상 욕계의 대상을 가진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3가지 조사하는 마음과 관련하여 의문이 들었던 것을 여쭤보고자 합니다.
368쪽에서 스님들이 해설해주신 것처럼 이들이 여운의 마음 혹은 문에서 벗어난 마음들로 역할을 할 때 욕계 대상을 가진다는 것은 이해하였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색계 존재가 안문인식과정 혹은 이문인식과정을 통해 현재의 대상을 인식할 때, 이 3가지 조사하는 마음들은 본연의 조사하는 역할을 할 텐데 그 대상들도 욕계의 대상인 건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우 색계 존재의 현재 인식과정에서 3가지 조사하는 마음의 대상은 색계 세상의 형색과 소리일 텐데요.
아비담마 길라잡이 2권 61쪽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모든 물질은 욕계에 속하므로’ 색계 세상의 물질들을 대상으로 한 색계 존재의 3가지 조사하는 마음 역시 ‘항상 욕계의 대상을 가진다’고 해석하면 되는 것일까요?
위 질문에 대한 각묵스님의 답은 아래와 같다.
A.
색계존재의 마음이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면 그것은 색계의 마음이고
색계존재의 마음이 무색계 삼매에 들면 무색계 마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며
이들이 아닌 형색과 소리와 법을 대상으로 하면 비록 그가 색계세상에 머물고 있더라도 욕계마음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색계에 사는 존재가 욕계에 올 일은 별로 없겠으나 예를 들면 욕계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주기를 발원하여 이를 실천하는 색계 존재는 욕계의 형색과 소리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는 색계세상에 사는 존재에게 욕계를 대상으로 한 욕계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색계에 사는 신들이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예를 들면 서로를 쳐다보고 여러 가지 천상의 소리를 듣고 색계의 형색을 보고 있으면 그때는 색계 세상을 대상으로 한 욕계의 마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 겁니다.
색계 마음의 정의가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한 본삼매에 든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색계 존재의 마음은 색계세상을 대상으로 해서도 욕계세상을 대상으로 해서도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이렇게 이해하시면 질문하신 것은 기본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님의 답변을 보면 그 존재가 욕계 존재이든 색계 존재이든, 오문인식과정을 통해 인식하는 욕계 대상을 아는 마음은 욕계 마음임을 알 수 있다.
오문인식의 대상이 욕계 세상의 것이든 색계 세상의 것이든 그 대상을 아는 마음은 욕계 마음이다.
색계 마음은 물질을 대상으로 한 본삼매에 든 마음이고,
무색계 마음은 물질이 아닌 것을 대상으로 한 본삼매에 든 마음이다.
더하여 스님의 답변에서 고찰해볼 수 있는 부분은 '마음의 경지는 대상의 경지와 같다'는 것이다.
대상을 아는 것이 마음이다. 그리고 어떤 대상을 대상으로 알고 있느냐가 마음의 경지를 결정한다.
이것을 더 확장하여 생각해본다면 평소 어떤 대상을 대상으로 마음을 일으켜 왔냐가 그 존재의 경지, 업과 과보, 그로부터 파생되는 고귀함과 저열함을 결정짓는 요소일 것이다.
Q.
1. 마찬가지로 1권 367쪽에는 “해로운 마음들과 지혜와 결합되지 않은 욕계의 속행은 출세간의 법을 제외한 모든 대상을 가진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359쪽 <도표3.5>를 보면 ’해로운, 욕계 지혜 없는 유익한, 욕계 지혜 없는 작용만 하는‘ 마음들이 ’출세간 마음, 열반‘을 제외한 모든 대상을 가지는 것으로 분류되어 있는데요.
여기서 해로운 마음들과 지혜 없는 마음들이 색계와 무색계 등의 고귀한 마음들을 대상으로 가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368쪽의 3번 설명을 보면 출세간법 9가지는 극도로 청정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이 마음들이 파악할 수 없다고 하는데, 물론 출세간법과 고귀한 법은 그 정도와 수준은 다르겠지만 이 설명 방식은 고귀한 마음들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귀한 마음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가?‘를 특정해서 말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의문은 ’해롭거나 지혜 없는 마음들이 어떻게 세간의 경지의 모든 대상(세속적인 마음, 마음부수, 물질, 개념들)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인가?‘ 였습니다.
그 원리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인데요.
아비담마를 배우면서 해로운 마음이나 지혜 없는 마음들, 혹은 더 확장하자면 욕계의 법들이 ’제한된 위력을 가졌다‘는 것을 도처에서 배웠던 터라 이들이 출세간법을 제외한 모든 세간법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 작동 원리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데,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요?
2. 담마상가니 2권 4편 1422번 문단과 355번 주해를 보면 제가 여쭈었던 해로운 마음, 지혜와 결합하지 않은 욕계의 유익하거나 작용만 하는 마음에 대해서 해설합니다.
355번 주해에서 말하는 “아주 능숙하게 초선 등을 반조할 때에는 ‘고귀한 대상을 가진 것’이다.”는 것이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인데요.
해당 주해 앞부분에 서술된 것처럼 지혜없는 8가지 유익하거나 작용만 하는 마음은 욕계 대상을 대상으로도 ‘정성을 다하지 않으며’ 그 역할을 성취하는 것인데, ‘아주 능숙하게 초선 등을 반조‘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3. 더하여 해로운 마음도 초선 등을 반조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같은 카테고리에 묶여서 설명하다보니 묶였을 뿐, 해로운 마음은 초선 등의 색계, 무색계 고귀한 마음을 반조할 수는 없는 걸까요?
4. 또한 1422번 문단 마지막에 “[그러나] 제한된 대상을 가진 것이라고도 고귀한 대상을 가진 것이라고도 말해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다.”라고 적힌 부분은 ’개념‘, 즉 규정할 수 없는 대상을 대상으로 해로운 마음, 지혜 없는 유익하거나 작용만 하는 마음이 일어났을 때를 말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들부터는 스님께 답변을 받지는 못했고, 선배 도반들과도 긴 문답을 나누었지만 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지금부터 작성되는 내용은 그간 선배 도반들과의 문답을 통해 사유한 필자 개인의 견해이며 법에 대한 이해가 적절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1.
필자가 선뜻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서 인식하는 마음과 그 마음의 대상은 다음과 같다.
- 인식하는 마음: 해로운 마음, 지혜 없는 유익한 마음, 지혜 없는 작용만 하는 마음
- 이 마음들이 취할 수 있는 대상: 세속적인 마음, 마음부수, 물질, 개념
이 마음들이 출세간 법을 대상으로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
마음부수 52가지와 물질 28가지, 개념에 대해서도 대상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에도 별다른 의심이 들지 않았다.
질문에도 적혀있듯이, 필자가 의문이 들었던 부분은 이 마음들이 81가지 마음들을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것은 담마상가니 2권 411쪽 355번 주해를 다시 한 번 읽어보며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2.
먼저 해로운 마음 12가지가 제한된 것(=욕계), 고귀한 것(=색계, 무색계), 규정할 수 없는 것(=개념)을 대상으로 어떻게 역할을 성취할까?
355번 주해에 모두 설명이 되어있다. 주해에서는 사견, 적의, 의심, 들뜸으로 해로운 마음 12가지를 분류하여 설명한다.
참고로 아래 주해에 1️⃣~5️⃣로 번호를 매긴 것은 주해 원문의 번호와 조금 다르다.
필자가 편의에 따라 번호를 다시 매긴 것임을 참고하길 바란다.
1️⃣ ...해로운 것 가운데 사견과 결합된 마음의 일어남 네 가지는 55가지 욕계에 속하는 법들(필자 주: 욕계 54가지 마음 + 물질 1가지 = 55가지)을 두고 '중생, 중생'이라는 [실체가 있다고] 집착하여 맛보고 즐길 때에는 제한된 대상을 가진다...
...2️⃣ 사견과 결합되지 않은 것들 가운데 이러한 [제한된 것이나 고귀한 것이나 규정할 수 없는] 법들을 대상으로 하여 오직 맛보고 즐기는 것을 통해서,
3️⃣ 삶의 과정에서 적의와 결합된 것들 가운데 불만족을 통해서
4️⃣ 의심과 결합된 마음의 일어남의 바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함을 통해서
5️⃣ 들뜸이 함께한 것의 산란함과 가라앉지 않음을 통해서
삶의 과정에서 제한된 것이나 고귀한 것이나 [이 둘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을 대상으로 가짐을 알아야 한다.
사견과 함께한 해로운 마음은 자아나 실체가 있다는 유신견을 가지고 욕계의 법들을 대상으로 갈애를 일으킨다.
사견과 함께하지 않은 해로운 마음은 욕계, 색계, 무색계 법이나 개념을 대상으로 갈애를 일으킨다.
적의와 결합된 마음은 불만족을 통해 욕계, 색계, 무색계 법이나 개념을 대상으로 가진다.
의심과 결합된 마음은 의심으로 인해 바른 결론을 가지지 못하며 욕계, 색계, 무색계 법이나 개념을 대상으로 가진다.
들뜸과 결합한 마음은 산란함을 통해 욕계, 색계, 무색계 법이나 개념을 대상으로 가진다.
해로운 마음 중 사견을 가진 것은 제한된 것, 즉 욕계 법을 대상으로 가진다.
나머지 4개 분류의 해로운 마음들은 위에서 설명한 특징을 드러내며 제한된 것, 고귀한 것, 규정할 수 없는 것을 모두 대상으로 가질 수 있다.
이 5개 분류의 해로운 마음들은 모두 무량한 대상(= 출세간 법)을 대상으로 가질 수 없다.
그런데 필자가 위 3번 질문에서 의문을 가졌듯이, 해로운 마음이 초선 등의 본삼매의 마음을 대상으로 가진다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
사마타 수행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때, 대상을 아는 마음은 수승하고 행복하다.
그렇기 때문에 본삼매에서 출정하여 그 대상을 반조할 때, 수행자의 마음에서는 탐욕 등의 해로운 법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각묵스님이 말씀하시는 "수행은 잘 될 때가 문제다"라고 하는 것도 이 경계에 수행자가 속아서 탐착하는 것을 이르는 말일 테다.
수행하는 선남자에게 일어나는 신비적인 현상인 10가지 위빳사나의 경계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라 볼 수 있겠다.
바르게 수행하는 수행자가 신비적인 현상에 대해서 도와 도 아님을 구분하지 못할 때, 이 대상에 속는다.
이 대상에 속는 마음이 해로운 마음일 것이다.
물론, 속지 않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3.
지혜와 결합하지 않은 유익한 마음과 작용만 하는 마음의 작용 역시 355번 주해에 설명되어 있다.
이 마음들이 욕계 법을 대상으로 일어날 때에는 '정성을 다하지 않은' 보시와 반조와 법을 들음 등으로 그 역할을 성취한다.
참고로 지혜와 결합한 유익하거나 작용만 하는 마음들은 '정성을 다한' 보시와 반조와 법을 들음 등으로 제한된 것, 고귀한 것, 규정할 수 없는 것, 무량한 것(= 출세간법) 모두를 대상으로 취할 수 있다.
필자는 유익하거나 작용만 하는 마음을 '지혜'라는 기준으로 분류했을 때,
분류된 2개 무리의 마음들의 작동 방식이 '정성을 다하거나 다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진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4.
본론으로 돌아와, 이 마음들이 고귀한 대상을 가질 때는 어떻게 그 역할을 성취하는가?
355번 주해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주 능숙하게 초선 등을 반조할 때에는 ‘고귀한 대상을 가진 것’이다.
고귀한 대상에 대한 설명은 단 한 줄이다.
아직 스스로 원문을 더 파고들지 못하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된 경전, 주석서, 복주서 범위의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필자의 실력으로 인해 현재로서는 이 한 줄에서 논의를 더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 8가지 마음들은 욕계 법을 대상으로는 '정성을 다하지 않으며' 그 역할을 성취한다.
필자는 같은 맥락으로 오히려 능숙하기 때문에 색계, 무색계 본삼매의 마음들을 대상으로 '세심하게 반조 등을 하지 않기에' 이 '지혜 없는' 마음들이 '고귀한 대상'을 대상으로 '능숙하게 초선 등을 반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였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지혜와 함께한 8가지 욕계 마음들은 제한된 것, 고귀한 것, 규정할 수 없는 것, 무량한 것 모두를 대상으로 '정성을 다한 보시와 반조와 법을 들음 등'을 행한다.
따라서 이와 비교해 보았을 때, 필자는 지혜가 없는 이 8가지 마음이 오히려 이전에 그 경지를 성취하여 현재 능숙하고 자유자재함이 있기 때문에 고귀한 것을 대상으로 '정성을 다하지 않으며' 역할을 성취하는 것은 아닐까 추정한다.
5.
마지막으로 필자는 담마상가니 2권 1422번 문단 마지막에 “[그러나] 제한된 대상을 가진 것이라고도 고귀한 대상을 가진 것이라고도 말해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다.”라고 적힌 부분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문을 가졌었다.
355번 주해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까시나의 표상 등의 개념을 반조할 때에는 [이 둘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을 대상으로 가진다.
이 부분은 주해를 읽다 보니 필자의 종전 생각대로 ’개념‘, 즉 규정할 수 없는 대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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