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아비담마

수행하는 선남자에게 일어나는, 자칫 속기 쉬운 10가지 신비적인 현상

Rihan 2022. 12. 3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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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빳사나의 경계

105. 이 초보적인 위빳사나로 위빳사나를 시작한 자에게 열 가지 경계들이 일어난다.

위빳사나의 경계는 진리를 통찰함에 이른 성스러운 제자와
그릇되게 수행하는 자와
명상주제를 놓아버린 게으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바르게 수행하고 지속적으로 명상주제와 함께하는 위빳사나를 시작한 선남자에게 일어난다.
무엇이 그 열 가지 경계들인가?

1️⃣ 광명
2️⃣ 희열
3️⃣ 경안
4️⃣ 결심
5️⃣ 분발
6️⃣ 행복
7️⃣ 지혜
8️⃣ 확립
9️⃣ 평온
🔟 욕구이다.

106.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어떻게 [성스러운]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난 들뜸에 의해서 마음이 붙들리게 되는가?*
*”광명 등에 대해 성스러운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난 들뜸, 산만함이 법에 의한 들뜸이다.
이 법에 의한 들뜸으로 인해 위빳사나의 바른 과정으로부터 벗어나서 다른 형태를 취하여 일어난 마음을
‘[성스러운]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난 들뜸에 의해서 마음이 붙들림’이라 한다.(Pm.732)”

그가 [상카라들을] 무상이라고 마음에 잡도리할 때 광명이 일어난다.
광명이 법이라고 생각하고 광명으로 전향한다.

그것으로 인한 산만함이 들뜸이다.
그 들뜸에 마음이 붙들려 그들이 일어남을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들이 일어남을 괴로움이라고 … 일어남을 무아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상이라고 마음에 잡도리할 때 지혜가 일어난다.

… 희열이 … 경안이 … 행복이 … 결심이 … 분발이 … 확립이 … 평온이 … 욕구가 일어난다.

욕구가 법이라고 생각하고 욕구로 전향한다.
그것으로 인한 산만함이 들뜸이다.

그 들뜸에 마음이 붙들려 그들이 일어남을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들의 일어남을 괴로움이라고 … 일어남을 무아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Ps.ii.100-1)”

107. 여기서 (1) 광명(obhāsa)이란 위빳사나로 인해 생긴 광명이다.
그것이 일어날 때 수행자가 ‘이전에 나에게 이와 같은 광명이 일어난 적이 없다. 확실히 나는 도에 이르렀고, 과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여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과가 아닌 것을 과라고 여긴다.

그가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과가 아닌 것을 과라고 여길 때 위빳사나의 과정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는 자기의 근본 명상주제를 놓아버리고 광명을 즐기면서 앉아있다.

108. 이 광명은 어떤 비구에게는 그가 가부좌한 자리만큼만 비추면서 일어난다.
어떤 자에게는 실내를, 어떤 자에게는 실외를, 어떤 자에게는 절 전체를, 1유순의 4분의 1을, 1유순의 반을, 1유순을, 2유순을, 3유순을 …

어떤 자에게는 땅의 표면부터 색구경천의 세계까지 하나의 광명을 만들면서 일어난다.
그러나 세존께는 일만 가지 세계를 비추면서 일어났다.

…(중략)…

110. 이러한 위빳사나의 경계는 주로 사마타와 위빳사나 [둘 다를] 얻은 자에게 나타난다.
그에게는 삼매의 증득을 통해서 잠복된 경계(결함)들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아라한이다’라는 마음을 일으킨다…(중략)…

스승은 성을 잘 내는 성미였다고 한다.
이러한 비구들은 광명 때문에 흔들린다.

114. (2) 지혜(ñāṇa)란 위빳사나의 지혜이다.
그가 물질과 정신을 고찰하고 조사할 때 인드라의 벼락과 같은 활기차고, 예리하고, 빛나고, 아주 맑은 지혜가 일어난다.

115. (3) 희열(pīti)이란 위빳사나 마음과 함께한 희열이다.
그때 그에게 작은 희열, 순간의 희열, 넘치는 희열, 격앙된 희열, 충만한 희열이라는 이 다섯 가지 희열이 온 몸을 가득 채우면서 일어난다.*
*다섯 가지 희열은 IV. §§94-99를 참조할 것

116. (4) 경안(passaddhi)이란 위빳사나의 경안이다.

그가 밤에 머무는 장소나 혹은 낮 동안에 머무는 장소에 앉아있을 때 몸과 마음에 불안함이 없고, 무거움이 없고, 뻣뻣함이 없고, 일에 적합하지 않음이 없고, 병이 없고, 구부러짐이 없다.
오히려 그의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가볍고, 부드럽고, 일에 적합하고, 아주 활동적이고, 곧게 된다.

이러한 경안 등으로 몸과 마음이 도움을 받아 인간을 넘어선 즐거움을 누린다.
이것을 두고 설하셨다.

“빈집에 들어갔고, 마음이 안정되었고 바르게 법을 관하는 비구에게
인간을 넘어선 즐거움이 있다.

무더기들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명상하기 때문에 희열과 기쁨을 얻고
그것이 불사인 줄 안다.(Dhp.373-4)”

이와 같이 이 인간을 넘어선 즐거움을 성취하면서 가벼움 등과 연관된 경안이 그에게 일어난다.

117. (5) 행복(sukha)이란 위빳사나와 [함께한 마음부수들의] 행복이다.
그때 그에게 온 몸에 넘쳐흐르는 아주 수승한 행복이 일어난다.

118. (6) 결심(adhimokkha)이란 믿음이다.
위빳사나와 함께한 것으로 마음과 마음부수들이 확신에 가득하여 깊은 믿음이 그에게 일어난다.

119. (7) 분발(paggaha)이란 정진이다.
위빳사나와 함께한 것으로 너무 느슨하지도 너무 무리하지도 않게 열심히 분발하는 정진이 그에게 일어난다.

120. (8) 확립(upaṭṭhāna)이란 마음챙김이다.
위빳사나와 함께한 것으로 잘 확립되었고, 기초가 튼튼하며, 고정되고, 동요가 없는 산의 왕과 같은 마음챙김이 그에게 일어난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그것이 어떤 것이든 수행자가 그곳으로 전향하고, 의식적으로 반응하고, 마음에 잡도리하고, 반조하면 그것은 마음챙김 때문에 그에게 들어오고 나타나서 확립된다.
마치 천안통을 가진 자에게 다른 세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121. (9) 평온(upekkhā)이란 위빳사나의 평온과 전향의 평온이다.
그때 그에게 모든 상카라들에 대해 중립적인 강한 위빳사나의 평온이 일어나고, 의문에는 전향의 평온이 일어난다.

그가 어느 곳이든 그곳으로 전향할 때 전향의 평온은 빛나고 예리하게 작용한다.
마치 인드라의 벼락처럼, 낙엽이 담긴 자루를 향해 던진 시뻘겋게 달구어진 창처럼 [바로 대상을 취한다].

122. (10) 욕구(nikanti)란 위빳사나에 대한 욕구이다.
이와 같이 광명 등으로 그의 위빳사나가 장엄될 때 그것에 집착하면서 미세하고 고요한 형태의 욕구가 일어난다.

그는 그 욕구가 경계인지 파악할 수가 없다.

123. 광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른 경계들이 일어날 때 수행자는

’이전에 나에게 이와 같은 지혜가 일어난 적이 없다 …
이와 같은 희열이, 경안이, 행복이, 결심이, 분발이, 확립이, 평온이, 욕구가 이전에 일어난 적이 없다.

확실히 나는 도에 이르렀고, 과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과가 아닌 것을 과라고 여긴다.

그가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과가 아닌 것을 과라고 여길 때 위빳사나의 과정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자기의 근본 명상주제를 놓아버리고 욕구를 즐기면서 앉아있다.

124. 여기서 광명 등은 경계(결함)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경계라고 했을 뿐 그것이 해로운 것(불선)이기 때문에 경계라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욕구는 경계이면서 동시에 경계의 바탕이다.

바탕으로 볼 때 이들은 열 가지이고, 움켜쥐는 것으로 볼 때 서른 가지이다.

125. 어떻게?

’나에게 광명이 일어났다‘고 여길 때 이 움켜쥠은 사견으로 인한 것이다.
’사랑스런 광명이 일어났다‘고 여길 때 이 움켜쥠은 자만으로 인한 것이다.
그가 광명을 누릴 때 이 움켜쥠은 갈애로 인한 것이다.

이와 같이 광명에 대해 사견과 자만과 갈애에 의해 세 가지 움켜쥠이 있다.
나머지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움켜쥠을 통해서 서른 가지 경계(결함)가 있다.
이 때문에 숙련되지 않고 경험이 없는 수행자는 광명 등에 대해 흔들리고 산만해진다.

광명 등의 각각에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 나고,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말씀하셨다.

“광명과 지혜와 희열에 대해 흔들리고
경안과 행복으로 인해 마음이 동요된다.

결의와 분발과 확립에 대해 흔들리나니
전향의 평온과 [위빳사나의] 평온과 욕구에 대해서도 그러하다.(Ps.ii.102)”


도와 도 아님의 구분

126. 숙련되고 슬기롭고 경륜이 있고 지성을 갖춘 수행자는 광명 등이 일어날 때

‘나에게 이런 광명이 일어났구나.
그러나 이것은 무상하고, 형성된 것이고, 조건 따라 일어났고,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고,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고,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고,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라고 이와 같이 그는 통찰지로 한계를 정한 뒤 면밀히 조사한다.

혹은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한다.
‘만약 광명이 자아라면 자아라고 여김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자아가 아닌데도 자아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것은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에서 무아다.
생겼다가 없어지는 뜻에서 무상하다.
일어나고 사라짐에 의해 압박받는다는 뜻에서 괴로움이다’라고.

이 모든 것은 정신의 일곱 가지에서 설한 방법대로 상세하게 알아야 한다.
광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머지도 그와 같다.

127. 그는 이런 광명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면밀히 관찰한다.
지혜를 … 욕구를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면밀히 관찰한다.

이와 같이 면밀히 관찰할 때 광명 등에 대해 흔들리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말씀하셨다.

“통찰지를 가진 그는 이 열가지 경우를 결택하여
법이라고 [여기면서] 일어난 들뜸에 대해 능숙해지고 더 이상 산만하지 않게 된다.(Ps.ii.102)”

128. 그가 이와 같이 산만함이 없이 이 30가지 경계(결함)의 얽힘을 푼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도와 도 아님을 구분한다.

‘광명 등의 법들이 도가 아니라,
경계에서 벗어난 [일어나고 사라짐의 관찰 등으로 위빳사나의] 과정에 들어있는 위빳사나의 지혜가 도다’라고.

129. ‘이것은 도고, 이것은 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그가 도와 도 아님을 알고서 얻은 지혜를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이라고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여 세 가지 진리들을 구분하였다.

130. 어떻게?

견의 청정에서는 정신·물질을 구분함으로써 괴로움의 진리(고제)를 구분하였다.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에서는 조건을 파악함으로써 일어남의 진리(집제)를 구분하였다.

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와 견에 의한 청정에서는 바른 도를 강조함으로써 도의 진리(도제)를 구분하였다.
이와 같이 세간적인 지혜로 세 가지 진리들을 구분하였다.



출처: 대림스님 옮김, ‘청정도론 3’ 제20장, 초기불전연구원(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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