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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들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이들 문장에서 ‘느낌들에 대해서 느낌을 관찰하며’라는 등의 느낌과 마음과 법에 관한 것도 몸의 관찰에서 설한 방법대로 알아야 한다.
1.
여기서 느낌(vedanā)은 [즐겁고, 괴롭고, 괴롭지고 즐겁지도 않은] 세 가지가 있다.
이것은 세간적인 것이다.
마음(citta)도 세간적인 것이고 법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분류는 뒤의 세부적인 설명에서 분명하게 밝혀질 것이다.
관찰해야 할 느낌이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을 다만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느낌들에 대해서 느낌을 관찰함이라고 알아야 한다.
이 방법은 마음과 법의 관찰에도 꼭 같이 적용된다.
2.
그러면 어떻게 느낌을 관찰해야 하는가?
즐거운 느낌은 고통이라고,
괴로운 느낌은 화살이라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무상하다고 [관찰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행복을 고통이라 보고
괴로움을 화살이라 여기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저 평화로운 느낌을 무상이라 보는
바른 안목을 가진 그러한 비구야말로 고요하게 유행할 것이다.”(S36:5)
이 모든 [느낌들은] ‘괴로움’이라고 관찰되어야 한다.
“느껴진 것은 모두 괴로움에 속한다고 나는 말한다.(S36:11)”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느낌은 즐거움과 괴로움의 측면에서도 관찰되어야 한다.
“즐거운 느낌은 머무르면 즐거움이요 변하면 괴로움입니다.
괴로운 느낌은 머무르면 괴로움이요 변하면 즐거움입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지혜가 있으면 즐거움이요 지혜가 없으면 괴로움입니다.(M44)”라고 상세하게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느낌을 무상함 등의 일곱 가지 관찰로써 관찰해야 한다.
나머지는 나중에 세부적인 설명에서 분명하게 밝혀질 것이다.
3.
마음과 법에 대해서도, 우선 마음은
1️⃣ 대상, 지배, 함께 생김, 세계, 업, 과보, 단지 작용만 함 등의 여러 분류에 따라
2️⃣ 무상 등의 관찰에 따라
3️⃣ 세부적인 설명에서 전해 내려오는 애욕과 함께함 등의 분류에 따라 관찰되어야 한다.
법은
1️⃣ 개별적 특징과 보편적 특징에 따라
2️⃣ 공한 성질에 따라
3️⃣ 무상 등의 일곱 가지의 관찰에 따라
4️⃣ 세부적인 설명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요함 등의 분류에 따라 관찰되어야 한다.
4.
물론 여기서 몸이라 불리는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린 자는
그의 느낌 등에 대해서도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당연히 버린다.
그러나 인간이 각양각색이고 또 마음의 매 순간에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음이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곳에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림을] 설하셨다.
혹은 한 곳에서 버리면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버린다.
그러므로 그곳에서도 버림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것을 설하셨다고 알아야 한다.
출처: 각묵스님 옮김,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 초기불전연구원(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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