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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아비담마

“재생연결식은 무명에 의해 던져졌고 갈애에 뿌리박은 업형성에 의해 생긴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5장)

by Rihan 2026.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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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죽음과 재생연결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 인식과정의 끝에서 혹은 존재지속심이 다할 때 금생의 마지막인 죽음의 마음이 죽음으로서 일어났다가 멸한다.

그 [죽음의 마음이] 멸하자마자 바로 다음에 그와 같이 잡은 대상을 대상으로 하여 [재생연결식이 일어난다. 재생연결식은] 경우에 따라서 [심장]토대를 갖기도 하고 혹은 가지지 않기도 하며, 무명의 잠재성향에 의해 던져졌고 갈애의 잠재성향에 뿌리박은 [업]형성에 의해 생겼으며, 관련된 [마음부수들과] 결합되어 있으며, 함께 생겨난 [마음부수들에게] 활동 무대(adhiṭṭhāna)가 됨으로써 이들의 선구자가 된다(pubbaṅgama). [금생과] 다음 생(bhavantara)을 연결하기 때문에 재생연결식이라 불리는 이 마음이 일어나서 다음 생에 확립된다.
1.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 마지막 인식과정은 바왕가가 방해받으면서 시작된다. 바왕가는 한 찰나 동안 동요하고 끊어진다. 그다음은 다섯 감각의 문의 하나에 어떤 감각의 대상이 나타나서 오문의 과정이 시작되거나, 마음의 문에 나타난 감각의 대상이나 마음의 대상을 대상으로 삼아 의문의 과정이 시작된다. 이 맨 마지막의 자와나(속행) 과정은 아주 미약하기 때문에 보통의 일곱 번이 아닌 오직 다섯 번의 심찰나만 일어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보통 속행과정이 가지는 생산업의 능력이 없다. 단지 재생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는 과거의 업을 위한 통로의 역할을 한다. 다섯 번의 속행 다음에는 두 가지 여운의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바왕가(존재지속심)가 마지막 인식과정에 따라오기도 한다. 그럴 경우에는 맨 마지막의 마음인 죽음의 마음이 금생으로부터 떠나가는 역할을 수행한다. 죽음의 마음이 멸하면 생명기능(jīvitindriya)은 끊어진다. 그러면 육체는 단지 온도에서 생긴 무정물의 덩어리로 남게 되며 그렇게 해서 송장이 가루가 되어 없어질 때까지 지속된다.

2. 그 [죽음의 마음이] 멸하자마자: 죽음의 마음이 멸하는 순간을 따라 새로운 세상에서 재생연결식이 마지막 속행과정에서 얻은 그 대상을 인지하면서 일어난다. 이 마음은 물질이 있는 세상에서는 심장토대를 의지하고 물질이 없는 무색계 세상에서는 토대가 없이 일어난다. 이것이 [업]형성에 의해서 생겼다고 표한한 것은 바로 전생의 마지막 속행과정에서 생겼다는 뜻이다. 속행과정이 바로 유익하거나 해로운 업이 일어나는 [업]형성(saṅkhāra), 즉 의도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생의 마지막 속행과정은 윤회의 과정에서 두 가지 뿌리에 근거하고 있으니 그것은 무명의 잠재성향(avijjānusaya)과 갈애 혹은 갈망의 잠재성향(rāgānusaya)이다.

3. 선구자가 된다(pubbaṅgama): 재생연결식이 함께 생겨난 [마음부수들]의 선구자가 된다라는 뜻은 이것이 함께 생긴 마음부수들보다 먼저 생겼다는 것이 아니고 본문에서 지적했듯이 함께 생긴 마음부수들의 활동 무대 혹은 토대(adhiṭṭhāna)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p.530~533, 초기불전연구원(2021)

 

죽음의 마음이 멸하자마자 바로 다음 심찰나에 그 직전 자와나 과정에서 잡았던 대상을 재생연결의 대상으로 하여 틈없이 재생연결식이 일어난다. 마치 존재bhava의 구성요소aṅga로서 끊임없이 흐르며 삶을 유지시키는 bhavaṅga와 같이, paṭisandhi는 죽음의 마음으로 끝나는 금생bhava과 다음 생bhava 사이antara를 단 한 심찰나의 틈도 없이 연결한다.

 

이렇게 찰나생 찰나멸의 흐름으로 전생에서 금생으로, 금생에서 내생으로 이어지는 것이 윤회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삶은 아트만(자아)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불변하며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식과정citta-vīthi과 더불어 존재지속심이 흘러가는 것bhavaṅga sota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이 흐름이라는 실재sacca를 있는 그대로yathā-bhūta 보려는 견해조차 잡혀있지 않거나, 혹은 견해가 잡혔더라도 실제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공부와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므로 존재를 습관적으로 실체화해서 보게 된다. 이로써 avijjānusaya에 의해 거듭해서 의도적인 행위를 짓는다saṅkhāra. 그리고 대상을 실체화해서 보는 주체는 자연스럽게 대상을 붙잡는 갈망을 일으키게 되므로 rāgānusaya에 의해 업형성을 짓게 된다(kāmarāgānusaya, bhavarāgānusaya).

 

따라서 이러한 원리로 모든 생의 마지막 속행과정과 그에 따른 재생연결은 예외 없이 무명과 갈애라는 두 가지 뿌리에 기반한 것일 수밖에 없게 된다. 정신과 물질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통찰)지혜가 있다면 형성된 상카라를 애착하지 않을 것이다. 애착하지 않는 자에게 다시 태어남은 없다. 따라서 다르게 말하면 아무리 수승한 존재로의 태어남도 따져보면 어리석음과 갈망의 결과일 뿐이다.

 

잠재성향은 자기가 속해 있는 정신적인 흐름santāna을 따라 누워 있다가anuseti, 적당한 조건들을 만나면 표면으로 드러나서 오염원kilesa으로 작용하는 것이다(VṬ.220). 즉 잠재성향은 잠재된 번뇌의 경향/씨앗과 같은 것이고, 번뇌가 출세간 도에 의해 제거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평소에 번뇌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조건이 맞는다면 쉽게 일어나도록 만드는 깊은 습성이자 성향이 마음의 흐름에 잠복해 있다. 드러난 번뇌kilesa는 표면에 올라온 상태이고, 잠재성향anusaya는 표면 아래의 습관성, 경향, 자동적인 반응이다. 이는 마치 마른 장작과 같다. 대상(자극)과 조건이 맞으면 번뇌가 불꽃처럼 쉽게 확 올라오게 만든다.

 

윤회라는 '새로운 탄생의 화살'을 쏘는 데에 무명과 갈애의 잠재성향 두 가지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무명의 잠재성향은 눈을 가리는 자다. 삶의 괴로움을 보지 못하게 한다. 삶이 본질적으로 불만족스럽고 무상하다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마음은 새로운 상카라를 짓는다. 갈애의 잠재성향은 접착제나 자석과도 같다. 새로운 대상을 움켜쥐도록 한다. 무명에 의해 던져진 마음은 갈애(목마름, 집착) 때문에 새로운 생을 발견하자마자 자석처럼 달라붙는다. “나는 계속 존재하고 싶다”, “새로운 감각을 느끼고 싶다”는 그 욕망이 새로운 삶을 싹트게 하는 뿌리가 된다.

 

밤이 어둡지 않았다면(지혜가 있었다면) 헤매지 않았을 것이고(무명), 불빛을 보고 쉬고 싶다는 욕망이 없었다면(갈애) 그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무명·갈애가 남아 있는 한 업은 반복해서 형성된다. 그 업의 힘으로 재생연결은 매번 조건 지어진다. 윤회를 굴리는 가장 핵심 축은 2가지이며, 결국 모름(무명) 때문에 의도적 행위가 계속 만들어지고(업형성), 붙잡고 원하는 마음(갈애/탐) 때문에 “다음 존재로 이어지려는 연료”가 공급되는 원리다.

 

§41. 마음의 흐름(santati)

이와 같이 재생연결을 받은 자에게 재생연결식이 소멸한 직후부터 그 대상을 대상으로 삼아서 이 마음은 죽음의 마음이 일어나기 전까지 인식과정이 일어나지 않는 한 끊임없이 강의 흐름처럼 일어난다. 이것은 삶(bhava)의 구성성분이며 바왕가의 흐름이라 불린다.

[한 생의] 마지막에 죽음으로서 죽음의 마음이 되어 멸한다.

그 다음에 재생연결과 다른 마음들이 수레의 바퀴처럼 순서대로 회전하면서 일어난다.
1. 재생연결식이 소멸한 직후부터: 재생연결식 다음에는 열여섯 찰나의 존재지속심이 일어난다. 그런 후에 의문전향의 마음이 일어나고 계속해서 일곱 가지 자와나(속행)의 과정이 일어난다. 이 자와나들에서 새로운 존재에 대한 집착이 생긴다. 이런 새로운 삶의 과정에서의 첫 번째 일어나는 자와나 과정을 '존재에 집착하는 자와나(bhava-nikanti-javana, PdṬ.45)'라 부른다. 이 첫 번째 자와나의 과정은 재생연결식을 그 대상으로 가진다. 이 자와나들은 탐욕에 뿌리하고 사견과 함께하지 않고 자극을 받지 않은 욕계의 마음들로 구성된다. 이런 과정이 끝나면 다시 바왕가(존재지속심)가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인식과정이 끼어들지 않는 한 이 바왕가는 계속 흐른다. 이렇게 하여 마음의 흐름은 입태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죽음에서부터 새 삶으로 수레바퀴 돌 듯이 계속해서 돌아간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p.541~542, 초기불전연구원(2021)

 

 

"재생연결식 다음에는 열여섯 찰나의 존재지속심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때 다섯 무더기로 이루어진 존재라면 심장토대 물질 역시 재생연결식과 함께 일어난다. 이렇게 먼저 생긴 심장토대를 의지하여 이후 두 번째 바왕가부터 열여섯 번째 바왕가가 순차적으로 일어난다. 이것이 태어남에 따른 첫 번째 사이클이다.

25. 심장토대는 재생연결의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에 일어나서 머무름에 이른다. 이 먼저 생긴 심장토대를 의지하여 두 번째 잠재의식이 일어난다. 두 번째 잠재의식과 함께 일어나서 존재해있던 먼저 생긴 심장토대를 의지하여 세 번째 잠재의식이 일어난다. 이러한 방법으로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마음이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임종에 다다른 자에게는 머무름에 이른 먼저 생긴 단 하나의 [심장]토대만을 의지하여 열여섯개의 마음들이 일어난다.

26. 재생연결의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에 일어난 물질은 재생연결의 마음 다음에 열여섯 번째의 마음과 함께 멸한다. 재생연결의 마음이 머무는 순간에 일어난 물질은 열일곱 번째의 마음이 일어남과 함께 멸한다. 재생연결이 멸하는 순간에 일어난 물질은 열일곱 번째의 마음이 머무는 순간에 이르러서 멸한다. 이것은 윤회의 진행이 계속되는 한 계속된다.

- 대림스님 옮김, 『청정도론』 제3권 pp.233~234, 초기불전연구원(2019)

 

 

태어남에 따른 두 번째 사이클은 의문전향의 마음이 일어나며 시작하고, 7개의 자와나 과정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삶에서 첫 번째로 일어나는 자와나 과정이며, 이 생에서의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이 생겨나는 과정이므로 '존재에 집착하는 자와나bhava-nikanti-javana'라고 불린다. 이 7개 자와나 마음의 대상은 재생연결식이다. 이 자와나들은 탐욕에 뿌리하고 사견과 함께하지 않고 자극을 받지 않은 욕계의 마음들로 구성된다고 한다.

 

범부부터 불환과 성자까지 윤회하여 다시 태어나는 모든 존재는 새 생명을 얻자마자 이 집착부터 시작한다. 새롭게 태어난 존재가 처음으로 주의를 기울여(의문전향) 적극적으로 한 생각(자와나)이 자신의 새로운 생명(재생연결식)을 꽉 움켜쥐는 것인 셈이다. 탐욕에 뿌리했다는 것은 "존재하고 싶다, 살고 싶다"는 애착과 욕망을 뜻한다. 사견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는 영원한 영혼이다" 같은 복잡하고 철학적인 잘못된 생각이 개입된 게 아니라, 그냥 갓 태어난 아기가 본능적으로 엄마 젖을 찾듯 논리 없이 순수하게 생존에 집착하는 본능이라는 뜻이다. 자극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누가 옆에서 "너 이제 태어났으니 기뻐해라, 집착해라"라고 가르쳐주거나 자극을 준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하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이 두 번째 사이클이 끝나면 바왕가가 이어지고, 인식과정이 끼어들지 않는 한 이 바왕가가 계속 흐른다. 이후부터는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보고, 듣고, 생각할 때마다 바탕화면(바왕가)에서 앱(인식과정)이 실행되었다가 다시 바탕화면으로 돌아가는 일이 죽을 때까지 수없이 반복되는 식이다. 이렇듯 새 생명의 부팅 과정은 총 25심찰나이며, 그것은 재생연결식과 이어지는 16심찰나의 바왕가, 의문전향심과 새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 과정인 자와나 7번으로 이루어진다. 새 생은 재생연결식으로 ‘시작’되고 → 잠깐 바왕가로 ‘유지’되다가 → 처음 인식과정이 돌면서 ‘이 존재에 대한 미세한 집착’이 한 번 생기고 → 다시 바왕가 흐름과 인식과정이 교대로 굴러가다가 → 죽음의 마음으로 ‘종료’되고 → 다음 생으로 또 이어진다. 그래서 “수레바퀴처럼 돈다”라고 표현한다.

 

 

 

 

참고로 위 청정도론 인용문에서 "임종에 다다른 자에게는 머무름에 이른 먼저 생긴 단 하나의 [심장]토대만을 의지하여 열여섯개의 마음들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업에서 생긴 물질kammaja-rūpa은 죽음의 마음 17심찰나 전부터는 더 이상 새로 생성되지 않는다는 법칙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죽음으로부터 17심찰나 전에 마지막 심장토대(물질)이 업에 의해 생겨난다. 첫 번째 마음은 마지막 심장토대가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고, 이후 심장토대 물질이 머무름의 단계에 있을 때 16개의 마음이 일어나고, 머무르고,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 17번째 죽음의 마음이 멸하는 순간 17심찰나 전에 생겨났던 마지막 심장토대도 수명을 다하고 동시에 멸한다.

 

임종 시 업에 의한 심장토대 생성 역시  끊기는 것인데, 비유하자면 마지막으로 생성된 심장토대 물질이 수명(17심찰나)을 버티는 동안 그 위에서 총 16개 마음이 그 낡아가는 하드웨어를 끝까지 쥐어짜며 사용하다가, 죽음의 마음이 멸하는 찰나에 심장토대도 수명을 다해 박살나면서 완전한 송장이 되는 격이다.

 

임종 시가 아닌 평소 업에서 생긴 물질은 마음이 일어날 때, 머물 때, 사라질 때의 매 아찰나(sub-moment)마다 쉴 새 없이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새롭게 일어난다. 이전에 생긴 심장토대 물질의 수명(17심찰나)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파도가 계속 밀려오듯, 수백 수천 개의 심장토대 물질들이 수명을 겹치면서(중첩되어) 폭포수처럼 생성되고 유지된다. 그러다가 수명이 다해 죽음이 예약되면, 정확히 죽음의 마음으로부터 역산하여 17번째 마음의 '머무는 아찰나'에 도달하는 순간, 그 시점부터는 더 이상 새로운 업생색(심장토대 등)이 생겨나지 않고, 이전에 겹겹이 생겨났던 물질들이 각자의 17심찰나 수명을 다하며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소멸하다가, 마지막 죽음의 마음과 함께 전부 소멸해 버린다.

§25. 죽을 때에

그러나 죽을 때에 죽음의 마음 이전의 17번째 마음이 머무는 단계부터 업에서 생긴 물질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이전에 일어난 업에서 생긴 물질은 죽음의 마음과 동일한 시간(sama-kāla)까지만 머물다가 멸한다. 그다음에 곧바로 마음에서 생긴 물질과 음식에서 생긴 물질이 멸하고, 그다음에 온도에서 생긴 물질의 흐름이 송장이라 불리는 곳에서 계속된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2권 p.87, 초기불전연구원(2020)
§42. 결론

이 생에서처럼 다음 생에서도
재생연결과 바왕가와 인식과정과 죽음의 [마음]이 일어난다.
다시 재생연결과 바왕가로 이 마음의 흐름이 회전한다.

그러므로 이 [삶의] 견고하지 못함을 깊이 숙고하고서
오래도록 좋은 원력을 가진 깨달은 분들은 
불사의 경지를 체득하고 
집착의 족쇄를 근절하여 고요함을 얻는다.

-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pp.542~543, 초기불전연구원(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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