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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빚 없음 경」 (A4:62)
본경은 세존께서 급고독 장자에게 하신 말씀을 담은 경으로 재가자가 바르게 누리는 네 가지 행복을 들고 계신다. 그것은 소유하는 행복, 재물을 누리는 행복, 빚 없는 행복,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다.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을 소유하는 행복을 세존께서는 재가자들이 누리는 첫 번째 행복으로 들고 계신다.
두 번째의 재물을 누리는 행복이란 이렇게 자신의 노력으로 바르게 얻은 재물로 그것을 즐기고 공덕을 짓는 것을 말한다. 재물은 바르게 사용할 때, 특히 이러한 재물로 공덕을 지을 때 그것이 행복이 된다. 그렇지 못한 재물은 화의 근본이 될 뿐이다.
재가자가 누리는 세 번째 행복은 빚 없는 행복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해 진정한 의미에서 아무런 빚도 지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일 것이다.
네 번째 행복은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다. 본경은 몸과 말과 마음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는 업을 짓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구체적으로는 몸으로 살생 투도 사음을 하지 않고 말로는 거짓말, 이간질, 욕설, 잡담을 하지 않는 것이며 마음으로는 강한 탐욕, 악의, 삿된 견해를 가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한편 스리랑카의 릴리 드 실바 교수는 「세속인의 행복」 이라는 글에서 이 넷을 기본 주제로 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⁷⁾
⁷⁾ 『한발은 풍진 속에 둔 채』 김재성 옮김, 고요한 소리, 1990, 11~18쪽 참조.
- 대림스님 옮김,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 P.41, 초기불전연구원(2006)
빚 없음 경 (A4:62)
Anaṇaka-sutta
...2. "장자여, 재가자는 가끔씩 혹은 기회가 주어지면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바, 그 재가자가 얻어야 할 네 가지 행복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소유하는 행복, 재물을 누리는 행복, 빚 없는 행복,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다."
3.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소유하는 행복인가? 장자여, 여기 선남자에게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답고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이 있다. 그는 '내게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답고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이 있다.'라고 행복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 장자여, 이를 일러 소유하는 행복이라 한다."
4.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재물을 누리는 행복인가? 장자여, 여기 선남자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답고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로 재물을 누리고 공덕을 짓는다. 그는 '나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답고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로 재물을 누리고 공덕을 짓는다.'라고 행복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 장자여, 이를 일러 재물을 누리는 행복이라 한다."
5.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빚 없는 행복인가? 장자여, 여기 선남자는 적건 많건 어떠한 [빚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나는 적건 많건 어떠한 [빚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행복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 장자여, 이를 일러 빚 없는 행복이라 한다."
6.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인가? 장자여, 여기 선남자는 비난받을 일이 없는 몸의 업을 구족하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말의 업을 구족하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마음의 업을 구족하였다. 그는 '나는 비난받을 일이 없는 몸의 업을 구족하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말의 업을 구족하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마음의 업을 구족하였다.'라고 행복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 장자여, 이를 일러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라 한다.
장자여, 이것이 가끔씩 혹은 기회가 주어지면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재가자가 얻어야 할 네 가지 행복이다."
7.
"빚 없는 즐거움을 얻고 난 뒤에
소유하는 행복을 기억할지라.
인간은 재물의 행복을 누리면서
통찰지로써 직관한다.
슬기로운 자는 직관하면서
두 가지 부분²⁰⁸⁾을 모두 안다.
그러나 [앞의 셋은]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²⁰⁸⁾ "'두 가지 부분(ubho bhāge)'이란 처음의 셋이 하나의 부분이고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 하나의 부분이다. 이렇게 통찰지로써 꿰뚫어 보는 자는 두 가지 부분을 아는 것이라는 뜻이다." (AA.iii.101)
- 대림스님 옮김,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 P.190~192, 초기불전연구원(2006)
부처님의 재가자에 대한 정의는 '가끔씩 혹은 기회가 주어지면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자'이다.
그리고 아래 재가자의 금생의 행복 4가지를 재가자가 얻어야 할 네 가지 행복이라고 말씀하신다.
먼저 빚 없는 행복을 누린다.
그리고 재산을 소유하는 행복을 얻는다.
그리고 재물을 바르게 쓰며 즐기고 공덕을 짓는다.
마지막으로 위의 재물로 인한 3가지 행복을 잘 알고 있지만,
본인의 비난받을 일 없는 바른 삼업을 숙고하며 그 자체로 더 큰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바른 삼업으로 인해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이 어떠한 재물을 통한 행복보다 더 큰 기쁨과 행복임을 꿰뚫어 안다.
재물로 인한 3가지 행복보다 3가지 업에 의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이 더 크다는 것을 아는 것은 통찰지로써 직관하는 현명한 자이다.
- 재산을 소유하는 행복
- 여법한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재산을 소유하는 것에서 행복과 기쁨을 얻는다.
- 여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재산을 늘리는 것은 불선업이다. 공정하고 정당한 방법으로만 생계를 꾸린다.
- 지나치게 재산에 욕심을 내는 것은 불선업이다. 유지하기 어렵고, 부양하기 어렵고, 원함이 많고, 만족하지 못하는 삶은 부처님이 나무라는 것이다.
- 재가자가 집중수행을 하는 수행자일 때는 재산과 관련된 활동, 생계활동을 멈추고 수행에만 전념한다.
- 재산을 향유하는 행복
- 재가자는 재산을 수용하는 존재이다. 모든 감각욕망을 완전히 버려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여법하게 얻은 재산을 바르게 즐기고, 공덕을 짓는 데 쓴다.
- 그러나 선남자는 점점 더 재산과 관계,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착을 줄여나간다. 그는 원함이 적어 쉽게 만족하고 생활은 간소하여 유지하기 쉬운 재가의 삶을 산다. 감관이 고요하고 다른 이들에게 탐착하지 않아 관계를 여의고 교류하지 않는다. 그는 바른 생계를 실천하고 친한 관계의 위험이 없으며 감각적 쾌락을 가능한 한 멀리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선한 사람은 점차 재산, 권력도 다 팽개치고 숲 속에 초막에서 만족하며 사는 선인이 된다.
- 재산을 누리는 행복 중 수승한 것은 공덕을 짓는 행복이다. 재물은 바르게 사용할 때, 특히 재물로 공덕을 지을 때 행복이 된다. 사분법 등 가르침에 따라 재산의 일부분을 보시하는 선행에 쓴다. 그 중 최상의 보시 공덕은 승가에 보시하고 받들어 섬기는 것이다.
- 지속가능하게 재산을 향유하고 누리기 위해서는 균형이 필요하다. 수입보다 지출이 지나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 적당하게 지출한다.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재물은 화의 근본이 된다.
- 빚이 없는 행복
- 재가자의 행복 세 번째는 빚이 없는(무채, 無債) 행복이라고 한다. 적건 많건 어떠한 빚도 가지고 있지 않다.
- 빚이 있으면 빚을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 잦은 빚 독촉에 행복할 수 없다. 책임지지 못하는 것은 불행을 가져다준다.
- 재미있는 것은 빚을 의미하는 債(빚 채)를 파자하면 비난을 의미하는 責(꾸짖을 책)에서 人(사람 인)자를 더한 형태라는 것이다. 빚을 지면 타인으로부터 비난받고 꾸짖음을 당한다는 뜻인 걸까?
- 빚 없는 행복에서 더 나아가면 이 세상에 빚을 지기보다 더 많이 베푸는 자가 궁극적으로 더 행복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부채의식이 없고 항상 베풀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고 진정으로 행복하다.
- 비난받지 않는 행복
- 재가자의 행복 네 번째는 비난받지 않는(무책, 無責) 행복이라고 한다. 비난받을 일이 없는 몸의 업, 말의 업, 마음의 업을 행한다. 이렇게 비난받을 일이 없는 삼업을 구족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숙고하여 행복과 기쁨을 얻는다.
- 수행자는 항상 삼업(신업, 구업, 의업)을 주의깊게 알아차려야 한다. 제멋대로 방일하게 살아 몸과 말과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하면 사람들로부터 비난받는다. 비난받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 부처님은 방일한 삶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씀하신다.
- 제멋대로 방일하게 살지 않고 바르고 착하게 살면 비난받지 않는다. 방일하지 않고 주의깊게 깨어있으면 비난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간에서나 출세간에서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간다. 바르고 착한 삶은 찬탄할 만하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 방일은 빠알리어로 pamāda이다. 태만, 나태, 나른함, 부주의함의 뜻이 있다. 자신과 타인의 행복과 이익에 도움이 되는 선을 짓는데 게을리하도록 하고 도덕적으로 나쁜 행위들을 하게 만드는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노는 것, 방종하여 욕망이 작용하는 대로 흘러가 선을 위해 힘쓰지 않는 마음 상태이다.
- 불방일은 apamāda이며, 이는 반대로 나쁜 행위를 방지하고 선을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불음주계는 방일의 원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을 멀리하도록 하는 계이다.
-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책임(責任)은 꾸짖을 책, 맡길 임 자를 쓴다. 책임을 흔히 맡아서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임무라고 말하는데, 맡겨진 의무가 있고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비난받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 본인의 역할에 따른 소임을 바르게 알고, 방일하지 않아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이 책임을 지는 자세일 것이다. 예를 들어 '가문을 지킨다'는 것은 부모, 스승, 자식과 아내, 친구와 동료, 하인과 고용인, 사문과 바라문을 예경하고 그에 따른 의무를 다해야 "자식과 아내라는 짐을 지고 집에 거주할 자격이 있다"고 디가 니까야 주석서에서는 말한다.(DA.iii.957)
- 재가자든 출가자든 본인의 역할에 따른 소임과 의무가 있다. 이것을 바르게 지켜나갈 때 비난받지 않고 방일하여 소홀히 할 때 비난받는다. 소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 비난받는 것이 책임의 뜻이다. 그리고 비난받는 삶은 행복하지 않다. 따라서 방일한 삶은 행복하지 않으며, 방일하지 않은 삶은 행복을 누리고 찬탄할 만한 삶이라 할 수 있다.
- 몸과 말과 마음으로 선한 행위를 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지 않고 사는 행복을 누린다. 앞서 언급한 3가지 행복은 이 비난받지 않는 행복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부처님은 말한다. 재산이 많고, 누리면서 살고, 빚이 없어도 몸과 말과 마음의 악행으로 비난받는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 몸과 말과 마음의 악행은 무엇인가? 십불선업도이다. 몸으로 해치고, 훔치고, 책임을 저버린 채 음행을 한다. 말로 거짓말하고, 이간질하고, 거친 말을 하고, 핵심이 없는 잡다한 말을 한다. 마음으로 남의 것을 가지려 하고, 남을 괴롭히고 해치려 하며, 유익함과 해로움의 인과법칙을 부정하여 나와 남을 비참한 곳으로 이끄는 잘못된 견해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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