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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아비담마

“업이 익는 곳에 따라 네 가지 업이 있으니, 해로운 업과 욕계/색계/무색계 유익한 업이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5장)

by Rihan 2023.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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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과보를 주는 장소에 따라(pāka-ṭhāna-vasena)

과보를 주는 장소에 따라 네 가지 업이 있으니
(1) 해로운(akusala) 업
(2) 욕계 유익한(kusala) 업
(3) 색계 유익한 업
(4) 무색계 유익한 업이다.

 

마지막으로 업이 익는 곳(pāka-ṭhāna), 즉 과보를 주는 장소에 따라 넷으로 분류하고 그 각각을 다시 여러 조건에 따라서 관찰하고 있다.

 

§22. 해로운 업(불선업, akusala-kamma)

22-1. 이 중에서 업을 짓는 문에 따라 해로운 업은 세 가지가 있으니, 즉 몸으로 짓는 업(신업), 말로 짓는 업(구업), 마노로 짓는 업(의업)이다.

 

이하 몸으로 짓는 세 가지, 말로 짓는 네 가지, 마노로 짓는 세 가지 모두 열 가지 해로운 업을 언급하고 있다. 경장과 논장에서는 이것을 '해로운 업의 길(불선업도, akusala-kamma-patha)'이라 표현하며 해로운 업이 나타나는 길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것은 '유익한 업의 길(선업도, kusala-kamma-patha)'이라 나타난다. 우리에게는 십불선업과 십선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처음의 일곱 가지, 즉 몸으로 짓는 세 가지와 말로 짓는 네 가지는 각각의 행위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의도와 일치한다. 이런 의도 그 자체는 그 행위를 성취했든 성취하지 않았든 간에 해로운 업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업의 길(aniyata-kamma-patha)'이다. 아직 실제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행위를 성취하고 목적하는 바를 달성했다면(예를 들면, 죽이려 작정한 대상을 죽이거나 남의 재물을 탈취해서 가졌을 때) 그것은 '확정된 업의 길(niyata-kamma-patha)'이 된다. 이렇게 확정된 업의 길은 재생연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업의 길은 삶의 과정에서 과보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 하나하나 살펴보자.

 

22-2. 어떻게? 살생과 도둑질과 삿된 음행은 몸의 암시라 불리는 몸의 문에서 주로 일어나기 때문에 몸으로 짓는 업이라 한다.

 

1. 몸의 문(kāya-dvāra)에서 주로 일어나기 때문에: 업에서 말하는 '문(dvāra)'이라는 것은 업을 짓는 매개체를 뜻한다. '몸의 문(kāya-dvāra)'은 몸의 암시(kāya-viññatti)이다. 여기서 몸의 암시라는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물질적인 현상으로 이것을 통해 인간이 마음에서 일어난 의도를 몸을 매개체로 하여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제6장 §4의 해설 참조)

'주로 일어나기 때문에(bāhulla vuttito)'라고 말한 것은 살생과 투도는 남에게 시키는 말로써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도 여기서는 '몸으로 짓는 업(신업)'이라 부르고 있다.

 

22-3. 거짓말, 중상모략, 욕설, 잡담은 말의 암시라 불리는 말의 문에서 주로 일어나기 때문에 말로 짓는 업(구업)이라 한다.

 

1. 말의 문(vacī-dvāra): '말의 문'은 의도하는 바를 말로써 나타내는 말의 암시(vacī-viññatti)를 의미한다. 거짓말 등은 글을 쓴다든지 몸짓을 한다든지 하는 등으로 몸을 통해서도 지을 수 있지만 말이 이들 업을 짓는 주 매개체이므로 모두 '말로 짓는 업(구업)'으로 간주한다.(제6장 §4의 해설 참조)

 

22-4. 간탐과 악의와 그릇된 견해는 암시 없이 오직 마노에서 주로 일어나기 때문에 마노로 짓는 업이라 한다.

 

나머지 세 가지 업의 길은 몸과 말로써 의도적으로 표현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오직 마노, 즉 마음에서만 발생한다. 이런 업은 마노의 문(의문, mano-dvāra)을 통해서 일어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마노의 문이란 이런 의도적인 행위에 개입된 매 찰나 일어나는 알음알이를 전체적인 측면에서 일컫는 집합적인 명칭이다.

'간탐'으로 옮긴 abhijjhā는 탐욕(lobha)의 한 요소인데 남의 재물을 가지려는 욕구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남의 재산을 가지려는 탐욕(lobha)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확정된 업의 길(niyata-kamma-patha)이 되지는 않는다. 그 재산을 소유하려는 욕구가 일어나야만 확정된 업의 길이 되는 것이다.

'악의'로 옮긴 vyāpāda는 성냄(dosa)의 한 요소인데 남을 해치고 괴롭히려는 욕구가 일어날 때 확정된 업의 길이 된다.

'그릇된 견해'로 옮긴 micchā-diṭṭhi는 이것이 도덕적으로 허무주의적인 견해의 한 형태를 취할 때 확정된 업의 길이 된다. 여기서 도덕적으로 허무주의적인 견해라는 것은 인과를 부정하는 것 등을 말한다. 경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그릇된 견해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① 원인을 부정하는 견해(ahetuka-diṭṭhi, 무인론자들의 견해): 중생의 번뇌와 청정에는 아무런 원인(인, hetu)도 조건(연, paccaya)도 없다는 견해로서 중생들은 우연이나 운명이나 필요에 의해서 오염되기도 하고 청정해지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② 업의 과보를 부정하는 견해(akiriya-diṭṭhi, 도덕부정론자들의 견해): 행위는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한다는 견해로서 선업이 가지는 특질을 인정하지 않는다.

③ 허무주의의 견해(natthika-diṭṭhi, 허무론자들의 견해):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natthi)는 식으로 사후 개체의 영속성을 부정하는 견해로 행위의 도덕적인 중요성을 부정한다.

...이 셋은 각각 무인론자들(ahetu-vādā)과 도덕부정론자들(akiriya-vādā)과 허무론자들(natthika-vādā)로 나타나고 있다... 업(kamma)과 과보(vipāka)를 부정하는 것을 통해서 이 셋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 뿌라나 깟사빠는 '행해도 죄악을 범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여 업(kamma)을 부정한다. 아지따 께사깜발리는 '몸이 무너지면 단멸한다.'고 주장하여 과보(vipāka)를 부정한다. 막칼리 고살라는 '원인도 없다.'고 주장하여 둘 다를 부정한다. 여기서 업을 부정하면 과보도 부정하는 것이고 과보를 부정하면 업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모두는 뜻으로는 둘 다를 부정하므로 무인론자(ahetuka-vāda)이고, 도덕부정론자(akiriya-vādā)이고, 허무론자(natthika-vāda)이다."(DA.i.166)...

 

§23. 원인과 마음의 분류에 따라

이 중에서 살생과 욕설과 악의는 성냄의 뿌리에서 일어나고,
삿된 음행과 간탐과 그릇된 견해는 탐욕의 뿌리에서,
나머지 넷은 두 가지 뿌리에서 일어난다.

마음의 일어남에 따라 이 해로운 업은 모두 12가지이다.

 

엄밀히 말하면 ① 악의(vyāpāda)는 성냄의 뿌리(dosa-mūla)의 한 형태이고, ② 간탐(abhijjhā)은 탐욕의 뿌리(lobha-mūla)의 한 형태이며, ③ 그릇된 견해(micchā-diṭṭhi)는 마음부수법들 가운데 속하는 사견의 한 형태이다. 이와 같이 이 셋은 그에 상응하는 마음부수법들과 일치한다.

나머지 일곱 가지 업의 길은 해로운 원인들과 함께 일어나는 의도(cetanā)의 마음부수와 일치한다. 예를 들면 탐욕이 ④ 살생의 저변에 깔려있는 동기가 되고 성냄이 ⑤ 삿된 음행의 저변에 깔려있는 동기가 될 수 있지만 아비담마에서는 남의 사지를 잘라서 목숨을 빼앗는 그 행위는 항상 성냄, 즉 그 상대가 계속 살아있는 것에 대한 혐오에 뿌리박고 있다고 여기며 음행을 가져오는 의도는 항상 탐욕, 즉 성행위를 즐기려는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여긴다. 나머지 네 가지 행위, 즉 ⑥ 도둑질(투도), ⑦ 거짓말(망어), ⑧ 중상모략(양설), ⑨ 잡담(기어)을 유발하는 의도는 탐욕이나 성냄과 함께 일어나고 ⑩ 욕설(악구)은 성냄의 뿌리에서 일어난다.

열 가지 해로운 업의 길(십불선업)은 물론 항상 어리석음의 뿌리(moha-mūla)와 함께 일어난다. 모든 해로운 업은 12가지 해로운 마음(akusala-citta)에 있는 의도와 일치한다.

 

§24. 욕계 유익한 업(선업, kusala-kamma)

24-1. 업을 짓는 문에 따라 욕계 유익한 업도 세 가지가 있으니, 즉 몸의 문에서 일어나는 몸으로 짓는 업, 말의 문에서 일어나는 말로 짓는 업, 마노의 문에서 일어나는 마노로 짓는 업이다.

 

1. 업을 짓는 문(kamma-dvāra)에 따라: 업을 짓는 문에 따라서 열가지 유익한 업의 길(십선업, kusala-kamma-patha)이 열거된다. 이 10선업은 위의 10불선업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궁극적인 것(dhamma)의 관점에서 본다면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선업과 말로 짓는 네 가지 선업은 두 가지 절제, 즉 바른 행위와 바른 말의 마음부수법에 해당한다. 물론 이런 절제와 관련된 의도와도 일치한다. 마노로 짓는 세 가지 유익한 업은 각각 불탐, 부진, 불치의 세 가지 유익함의 뿌리(선근, kusala-mūla)인 마음부수법들에 해당한다.

 

24-2. 그와 마찬가지로 보시, 지계, 수행에 따라서도 세 가지이다.
그러나 마음의 일어남에 따라서는 여덟 가지이다.

24-3. 이것은 또한 10가지가 있으니, 즉 보시, 지계, 수행, 공경, 가까이 섬김, 덕을 타인에게 회향함, 타인의 공덕을 따라 기뻐함, 법을 배움, 법을 설함, 자기의 견해를 올곧게 가짐이다.

24-4. 이 [해롭거나 유익한] 20가지 업은 욕계의 업이라고 한다.

 

1. 그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이다... 여덟 가지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세 가지와 아래의 열 가지는 일반적으로 선행의 토대(puñña-kiriya-vatthu)로 알려져 있다. 여덟 가지 욕계 유익한 마음으로 이런 선업을 짓는다. 그러므로 이들 욕계의 유익한 마음을 큰(mahā)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미 살펴보았다.

 

선업은 보시, 지계, 수행의 3가지이다.

선정과 깨달음의 극선업은 수행으로 지을 수 있다.

 

§25. 색계 유익한 업(kusala-kamma)

색계 유익한 업은 순전히 마노로 짓는 업이다. 이것은 본삼매에 이른 수행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선의 구성요소의 분류에 따라 다섯 가지이다.

§26. 무색계 유익한 업(kusala-kamma)

그와 마찬가지로 무색계 유익한 업도 순전히 마노로 짓는 업이다. 이것도 본삼매에 이른 수행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대상의 분류에 따라 네 가지이다.

 

거듭 말하지만 색계를 다섯 가지로 분류하는 기준은 그 선의 각 경지에 나타나는 마음부수법들이고 무색계를 네 가지로 분류하는 기준은 대상이다.

즉 공무변처는 허공(ākāsa)이 그 대상이고,
식무변처는 공무변처의 알음알이가 그 대상이며,
무소유처는 식무변처의 대상이었던 공무변처의 알음알이의 부재(natthibhāva)가 그 대상이고(Vis.X.32),
비상비비상처는 무소유처의 알음알이가 그 대상이다. (제9장 §12의 『청정도론』 인용 참조)

 

 

 

 

인용 출처: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초기불전연구원(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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