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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1. 오문(五門)인식과정
Pañcadvāravīthi
§6. 매우 큰 대상
6-1. 어떻게?
일어남, 머묾, 무너짐의 세 찰나를 하나의 심찰나(citta-kkhaṇa)라 한다.
물질의 수명은 이 17개의 심찰나에 해당한다.
다섯 가지 감각의 대상은 한 개의 심찰나나 혹은 여러 개의 심찰나가 지나간 뒤
'머무는 찰나'에 다섯 가지 감각의 문의 영역에 나타난다.
1.
1. 하나의 심찰나(citta-kkhaṇa): 아비담마에서는 마음의 수명을 심찰나라고 부른다... 이렇게 극미의 찰나적인 존재이지만 그 심찰나는 다시 일어남(uppāda)과 머묾(ṭhiti)과 무너짐(bhaṅga)의 세 아찰나로 이루어진다. 이런 극미의 심찰나에 마음은 일어나서 자기의 역할을 수행하고 소멸되는 것이다. 이 마음은 바로 다음에 일어나는 마음의 조건이 되어 그 조건의 힘(paccaya-satti)에 따라서 다음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심찰나는 이렇게 상속되므로 알음알이의 흐름은 강물의 흐름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위바위니 띠까』는 머묾은 일어남이나 무너짐과는 다른 현상(dhamma)이 일어나는 단계로서 이 기간에 그 법(dhamma)은 '무너짐을 대면하면서 머문다(bhaṅga-abhimukkhāvatthā)'고 표현하고 있다. 레디 사야도는 머묾은 일어나고 사라지는(udaya-vaya) 중간 지점이라고 여긴다. 마치 돌을 위로 던지면 그것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는 다시 머무는 찰나는 처음 일어나는 찰나와 마지막의 무너지는 찰나 사이의 모든 기간을 뜻한다고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주석가들은 머무는 찰나(ṭhitikkhaṇa)를 부처님의 말씀에서 찾는다.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유위 경」 (A3:47)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형성된 것에는 세 가지 형성된 것의 특징이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일어남(uppāda)이 알려져 있고 사라짐(vaya)이 알려져 있고 머문 것의 다르게 됨(ṭhitassa aññathatā)이 알려져 있다."라고 말씀하셨고 『상윳따 니까야』 「아난다 경」 1/2(S22:37~38)에서도 "아난다여, 물질의 일어남이 알아지고 사라짐이 알아지고 머문 것의 다르게 됨이 알아진다. 느낌의... 인식의... 심리현상들의... 알음알이의 일어남이 알아지고 사라짐이 알아지고 머문 것의 다르게 됨이 알아진다. 아난다여, 이러한 법들의 일어남이 알아지고 사라짐이 알아지고 머문 것의 다르게 됨이 알아진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머무는 찰나(ṭhitikkhaṇa)는 '머문 것의 다르게 됨(ṭhitassa aññathatta)'과 일치하는 것이다.
머문 것의 다르게 됨, 즉 머무는 찰나의 머묾은 머문 채로 고정불변하는 상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머물면서 변하고, 변하면서 늙고, 늙음으로 고통받으며, 종국에는 반드시 무너진다.
청정도론 20장 47번 문단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나온다.
(Vis.XX.47)
...이 생에 속하는 모든 상카라들은 무상하다. 무슨 이유인가?
일어나고 사라짐이 있기 때문이고, 변하기 때문이고, 잠시뿐이고, 항상함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일어난 상카라들은 머묾을 얻고, 머무는 상카라들은 늙음으로 고통 받고, 늙음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무너진다...
2.
2. 물질의 수명(rūpa-dhammānam āyu): 물질의 현상도 일어남과 머묾과 무너짐의 세 과정을 거친다. 이 물질의 세 과정에 요구되는 시간은 17개의 마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같다고 저자는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앞의 『청정도론』 인용에서 보았듯이 전통적으로 마음은 물질보다 16배 빠르다고 한다. 그러나 물질은 일어나는 찰나에는 미약하여 감각기능들이 그것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 순간에는 존재지속심이 그냥 하나 지나가게 된다. 이것을 지나간 바왕가(atīta-bhavaṅga)라 부르는데 이것을 이 인식과정에 포함시키면 17번이 된다. 그래서 후대로 내려오면서 이 지나간 바왕가까지 포함해서 17개의 마음을 설하고 있다.
물질이나 마음은 일어나는 찰나와 무너지는 찰나의 기간은 같다고 한다. 그러나 물질의 경우에 머묾의 기간은 마음 현상의 49아찰나(sub-moment)와 같다고 한다. 즉 물질의 하나의 존속 기간(찰나)에 마음은 17개가 일어날 수 있고 이 각각의 마음은 다시 일어남과 머묾과 소멸의 셋이 존재하므로 17x3=51 아찰나가 되고, 이 가운데서 일어남과 소멸의 몫으로 2아찰나를 빼면 모두 49아찰나가 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물질이 일어나는 순간과 멸하는 순간은 마음의 생멸과 같이 너무나 빠르다.
물질이 일어나는 순간에 마음은 그것을 결코 알지 못한다. 이것은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머무는 순간은 길어서 16심찰나 동안 머문다.
3.
3. 한 개의 심찰나가 지나간 뒤(eka-citta-kkhaṇa-atītāni): ... 마음이 물질적인 대상을 인식할 때, 일어나는 찰나(uppādakkhaṇa)의 물질은 미약하고 빨라서 마음은 이를 인식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한 개의 심찰나가 지나가버린다. 이것을 ekacittakkhaṇa-atīta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것을 후대 주석가들은 지나간 바왕가(atīta-bhavaṅga)라는 전문용어로 정착시켰다. 이렇게 '어떤 물질이 머무는 찰나 동안에 마음은 16번 일어나고 멸한다'는 전통적인 1:16의 물질과 마음의 관계는 물질과 마음이 일어나고 머물고 소멸하는 전체과정에서는 1:17로 고정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개의 심찰나가 지나간 뒤'라는 것은 아래 <도표 4.2> 오문전향의 인식과정의 등급의 첫 번째로서 한 개의 '지나간 바왕가(atīta-bhavaṅga)'를 포함하는 '매우 큰 대상'을 인식하는 인식과정을 뜻한다.
4. 혹은 여러 개의 심찰나가 지나간 뒤(bahu-citta-kkhaṇātītāni): 이렇게 하나의 심찰나가 지나간 뒤 아주 큰 대상이 인식되듯 나머지 큰 대상이나 작은 대상이나 아주 작은 대상은 여러 심찰나가 지난 뒤에 인식과정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여러 심찰나가 지난 뒤'라는 것은 <도표 4.2>의 나머지 14가지 경우로서 2개에서 15개까지의 '지나간 바왕가'를 가지는 인식과정들을 뜻한다. 이렇게 해서 형색, 소리 등의 다섯 가지 감각 대상은 물질이므로 17심찰나 동안 지속되며 <도표 4.2>에서 보듯이 지나간 바왕가(atīta-bhavaṅga)의 개수에 따라 모두 15가지 인식과정을 상정할 수 있는 것이다.
5. 머무는 찰나에(ṭhiti-ppattāni): 감각의 대상은 일어남의 아찰나에서는 아직 미약하기 때문에 머묾의 단계에 가서야 감각의 통로로 들어올 수 있다...
6-2.
그러므로 (1) 만약 형색이라는 대상이 한 개의 심찰나가 지나간 뒤 눈의 영역에 나타나면,
(2)~(3) 두 심찰나 동안 존재지속심이 흔들리고 존재지속심의 흐름이 끊어진다.
(4) 그때 그 형색이라는 대상으로 전향하는 오문전향의 마음이 일어났다가 멸한다.
(5) 그 다음에 곧바로 그 형색을 보면서 눈의 알음알이(안식)가,
(6)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받아들이는 마음이,
(7) 그것을 조사하면서 조사하는 마음이,
(8) 결정하면서 결정하는 마음이 차례대로 일어났다가 멸한다.
1.
1. 만약 형색이라는 대상이 한 개의 심찰나가 지나간 뒤...: 인식과정이 능동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때 존재지속심들은 모두 같은 대상을 가지고 같은 형태로 연속적으로 계속 흘러간다. 제3장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전생의 죽음의 마음이 생기기 직전에 있었던 자와나의 과정에서 업이나 업의 표상이나 태어날 곳의 표상의 셋 중 하나가 나타나는데 그것을 대상으로 가지고 이 바왕가(존재지속심)는 흘러가는 것이다.
일단 감각의 대상이 일어나 감각의 문으로 들어오는 그 찰나에 한 개의 바왕가가 흘러가버리게 되는데 그것을 지나간 바왕가(atīta-bhavaṅga)라 부른다. 그 다음에 대상과의 충돌 때문에 두 개의 바왕가가 흔들린다. 이 중에서 나중 것이 바왕가의 흐름을 끊는다. 복주서들에서는 이 둘 가운데서 처음의 것을 바왕가의 동요(bhavaṅga-calana)라 부르고 뒤의 것을 바왕가의 끊어짐(bhavaṅga-uppaccheda)이라 부른다.
그 다음에 오문전향의 마음이 일어남과 동시에 바왕가의 흐름은 '인식과정을 벗어나 있는 상태(vīthi-mutta)'로부터 나와서 인식과정으로 돌입하게(vīthi-pāta)된다.
6-3.
(9)~(15) 그 다음에 29가지 욕계의 자와나(속행)의 마음 가운데서 조건을 얻은 어떤 것이 주로 일곱 번 일어난다.
(16)~(17) 자와나 다음에 두 개의 여운의 마음이라는 과보의 마음이 적절하게 일어난다.
그 다음에 바왕가(존재지속심)로 들어간다.
1.
1. 29가지 욕계의 자와나(속행)의 마음 가운데서: 이 29가지는 12가지 해로운 마음, 8가지 유익한 마음, 8가지 작용만 하는 마음, 그리고 미소짓는 마음이다. 물론 이 29가지 가운데서 오직 하나의 마음이 일곱 번 일어나는 속행에서 계속 일어난다. 다른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6-4.
이렇게 해서 17개의 심찰나가 완성되었으니, 그것은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 14개와 바왕가의 동요 2개와 이 이전에 이미 지나갔던 1개의 심찰나를 합한 것이다.
그 다음에 그 대상은 멸한다.
이 대상을 '매우 큰 것'이라고 부른다.
1.
1. 이 대상을 '매우 큰 것'이라고 부른다: 매우 큰 대상에 대해 일어난 인식과정에서, 대상은 지나간 바왕가(atīta-bhavaṅga)가 일어나는 찰나에 같이 일어난다. 감각의 대상과 감각기관은 둘 다 물질인데 17심찰나 동안 존속하기 때문에 두 번째 여운의 마음과 더불어 소멸한다. 그러므로 이런 인식과정은 완전히 17심찰나 동안 지속하며, 이 중에서 오문전향부터 시작하는 14가지 마음이 인식과정에 속하는 마음들이다. 이런 인식과정은 '여운으로 끝나는 과정(tadārammaṇa-vāra)'이라고 불린다.
2.
매우 큰 대상을 대상으로 한 오문인식과정에서 인식과정에 개재된 마음은 14개, 존재지속에 관계된 마음은 3개이다.
오문전향부터 여운의 마음까지 14개의 마음이 인식과정에 개재된 마음이다.
17심찰나 중 존재지속에 관계된 마음은 지나간 바왕가, 바왕가의 동요, 바왕가의 끊어짐 3개이다.
이것은 인식과정에 개재된 것이 아니다. 명칭이 다르게 불려질 뿐 모두 존재지속심, 바왕가의 마음이다.
도표의 숫자 아래 찍힌 3개의 점은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3아찰나를 표현한 것이다.
점 하나가 한 개의 아찰나라고 보면 된다. 밑변이 없는 사다리꼴 모양의 심찰나 그림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3.
여기 '여섯 개 조의 여섯 범주'에서 나타나는 인식과정을 정리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형색이라는 대상이 눈의 감성에 부딪치면 눈의 감성에 부딪친 그 형색을 대상으로 눈의 토대를 의지하여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 눈의 알음알이의 경우 눈의 감성은 토대이자 문이고 형색이 그 대상이다.
오문전향의 마음, 받아들이는 마음, 조사하는 마음, 결정하는 마음, 속행의 마음, 여운의 마음은 모두 마노 또는 마노의 알음알이들이다. 이들도 모두 같은 형색을 대상으로 가지며 눈의 감성을 문으로 하지만 심장토대를 의지하여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마음들은 모두 존재지속심을 문으로 가진다고도 할 수 있다. 전체 과정은 모두 존재지속심으로부터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감각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은 두 가지 문을 가진다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하면 물질의 감성을 특별한 문으로, 마노의 문, 즉 존재지속심을 공통되는 문으로 가진다. 이것은 눈의 문에서 일어나므로 '눈의 문의 인식과정'이라 하고 눈의 알음알이에 의해서 구별이 되므로 '눈의 알음알이의 인식과정'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매우 큰 대상에 대해서 일어난 인식과정이므로 '매우 큰 대상에 대해서 일어난 인식과정'이라고 한다. 다른 감각의 문들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도 이와 같이 이해하면 된다.
4.
아비담마의 대가들은 이런 감각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을 망고 먹는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머리를 뒤집어쓰고 망고가 열린 나무 아래서 잠에 들었다. 그 때 익은 망고가 그의 귀를 스치며 땅에 떨어졌다. 그 소리에 깬 그는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그 후 손을 뻗어 망고를 집어들고 그것을 비틀어서 짜고 냄새를 맡았다. 그런 후 망고를 먹고 그 맛을 느끼며 삼켰다. 그 후 다시 잠에 빠졌다.
여기서 망고 나무 아래서 잠에 들어있는 시간은 존재지속심이 흐르고 있는 것과 같다. 익은 망고가 그 사람의 귀를 스치며 떨어지는 것은 감각의 대상이 눈 등의 다섯 가지 감각의 문 가운데 하나를 치는 것과 같다. 그 소리에 깨어나는 시점은 오문전향의 마음이 대상으로 향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눈을 떠서 바라보는 것은 눈의 알음알이가 보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솓을 뻗어 망고를 잡는 것은 받아들이는 마음이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망고를 비틀어서 짜는 것은 조사하는 마음이 대상을 조사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냄새를 맡는 것은 결정하는 마음이 대상을 결정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망고를 먹는 것은 속행(자와나)의 마음들이 대상의 맛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망고의 맛을 느끼며 삼키는 것은 여운의 마음이 속행이 가졌던 것과 같은 대상을 가져 여운을 가지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다시 잠에 드는 것은 다시 존재지속심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담마상가니 제1권 529쪽 주해 798번)
다시 『앗타살리니』는 이렇게 결론을 짓는다.
"이 비유는 무엇을 밝히는가? 대상이 [귀 등의] 감성을 치는 역할과 그것이 감성을 칠 때 작용만 하는 마노의 요소(오문전향의 마음)에 의해서 바왕가로부터 전향하는 [역할과], 눈의 알음알이의 단지 보는 [역할과], 과보로 나타난 마노의 요소(받아들이는 마음)에 의해서 대상을 단지 받아들이는 [역할과], 과보로 나타난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조사하는 마음)에 의해서 대상을 단지 조사하는 [역할과], 작용만 하는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결정하는 마음)에 의해서 대상을 단지 결정하는 역할을 [밝히고], 마침내 자와나가 대상의 맛을 경험한다는 것을 밝힌다."(DhsA.272)
5.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런 전체 인식과정은 어떤 '자아'나 '주체'가 그 배후에서 경험자나 지배자 혹은 아는 자로 있으면서 이런 인식과정을 경험하거나 지배하거나 저 밖에서 지켜보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찰나적인 마음들 그 자체가 인식과정에 필요한 모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과정의 단위들은 모두 상의상관의 법칙에 의해 서로 역동적으로 협력하면서 오차 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인식과정에 개재되는 마음들은 마음의 정해진 법칙(citta-niyama)에 따라서 생겨나는 것이지 결코 제멋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전의 마음(citta)과 대상(ārammaṇa)과 문(dvāra)과 육체적인 토대(vatthu) 등의 조건(paccaya)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일어나서는 그 자신의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고 다음 마음의 조건이 되어 소멸하고 다시 다음 마음도 일어나서 같은 방법으로 소멸한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은 정해진 법칙에 따라서 끊임없이 생멸을 거듭하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담마상가니 제1권 530쪽 주해 798번)
"여기서 '그대는 바왕가가 되고 그대는 전향의 마음이 되고 그대는 보는 마음이 되고 그대는 받아들이는 마음이 되고 그대는 조사하는 마음이 되고 그대는 결정하는 마음이 되고 그대는 자와나가 되시오.'라고 어떤 행위자(kattā)나 행하게 하는 자(kāretā)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각각 자기의 법다움에 의해서 대상이 감성을 치는 시점에서부터 시작하여 작용만 하는 마노의 요소인 마음이 바왕가를 전향하게 하고 눈의 알음알이가 보는 역할을 달성하고 과보로 나타난 마노의 요소가 받아들이는 역할을 달성하고 과보로 나타난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가 조사하는 역할을 달성하고 작용만 하는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가 결정하는 역할을 달성하고 자와나가 대상의 맛을 경험한다.
이것이 마음의 정해진 법칙(citta-niyāma)이다."(DhsA.274)
인용 출처: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초기불전연구원(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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