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행이 깊어지면 빛이 밝아진다.
아나빠나사띠의 경우 호흡에 대한 집중이 깊어지면서 빛이 더욱 밝아지고,
표상의 형태가 숨 그 자체인 준비표상에서 익힌표상으로, 익힌표상에서 닮은표상으로 확실하게 형태가 갖춰진다.
물론 이 과정에서 숨이 아니라 빛이나 표상을 보겠다고 하면 들뜸이 일어나기 쉽다.
우 실라 사야도께서는 빛이나 표상이 나타나면 나타나는대로, 나타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대로 숨만 편안하게 보는 것이 수행의 목적이라 일러주셨다.
이렇게 수행이 깊어지면 결과적으로 숨 자체가 빛나고 모양을 갖춘 니밋따가 된다.
집중이 깊어질수록 불완전한 익힌표상에서 완전한 닮은표상으로 더 오래 니밋따가 머물고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사야도는 집중되는 시간, 집중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조건과 기능도 무상이기 때문에 항상 일정할 수 없다고 일러주신다.
마치 중량 운동을 할 때에도 컨디션에 따라 어제 수행할 수 있었던 무게의 동작이 오늘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본인의 집중의 정도와 시간도 유연하게 줄여지기도 하고 늘려지기도 한다.
본인의 상태가 편하면 더 깊고 오래 수행하고, 상태가 편하지 않으면 적게 수행한다.
따라서 굳이 한 번 수행 시 딱 스스로 정한 시간을 한 번에 해야한다고 집착하거나 알람 등을 설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편안하고 고요하게 할 수 있는 정도의 시간 만큼 수행한다.
2.
앞서 말한 수행 시 생기는 빛은 어떤 원리로 생기는 것일까?
수행을 하면 생기는 '지혜의 빛'에는 '마음에서 생긴 빛'과 '온도에서 생긴 빛'이 있다.
'마음에서 생긴 깔라빠(cittaja-kalāpa)', '마음에서 생긴 물질(cittaja-rūpa)'에는 8원소가 있다.
지, 수, 화, 풍, 색깔, 냄새, 맛, 영양소가 그것이다.
여기서 색깔(vaṇṇa)이라는 형색(rūparammaṇa)이 밝게 빛나는 것을 우리는 마음에서 생긴 빛이라고 표현한다.
마음에서 생긴 깔라빠의 4대요소 중 불의 요소(tejo dhātu)는 새로운 세대(new generation)의 깔라빠를 만들어 낸다.
즉, 마음에서 생긴 물질이 온도로 생긴 물질을 만든다.
청정도론 복주서에서는 이를 "상속의 과정 속에서 내던져진 온도에서 생긴 물질"이라고 표현한다.
이 불의 요소를 원인으로 만들어진 깔라빠들에도 8원소가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색깔이라는 형색이 밝게 빛나는 물질이 된다.
이것을 우리는 온도에서 생긴 빛이라고 표현한다.
온도로 생긴 물질은 계속해서 만들어지면서 몸 안에서 몸 밖으로 퍼져나간다.
마음에서 생긴 물질은 오직 몸 안에만 있다.
사마타나 위빳사나 수행을 하는 마음의 힘의 차이, 지혜의 힘의 차이에 따라 이 빛의 정도는 차이가 난다.
일례로 부처님께서는 빛을 감추시겠다고 의도하지 않으실 경우, 항상 몸 밖으로 광명이 비추셨다고 한다.
이 빛은 온도로 생긴 물질일 것이다. 다른 존재들도 볼 수 있는 빛이다.
3.
지혜의 빛과 관련하여 설하신 파옥 사야도의 법문이 있어 소개한다.
'지혜에는 빛이 있다'고 앙굿따라 니까야 셋의 모음 「니밋따 경」(nimitta sutta)에서 부처님은 설하셨습니다... 수행자는 삼매를 닦기 위하여 삼매(samādhi)의 원인이 되는 니밋따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무엇을 높은 마음(adhicitta)이라고 합니까? 사마타를 닦는 마음(samatha bhavana citta)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vipassana bhavana citta)입니다. 이 높은 마음(adhicitta)인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닦고자 노력하는 비구는 때로는 삼매의 원인인 니밋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Taṃ hoti cittaṃ muduñca kammaññañca pabhassarañca(그때 그의 마음은 부드럽고 적합하고 빛이 난다.) - 사마타를 닦는 마음(samatha bhavana citta)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vipassana bhavana citta)은 부드러워지고 적합하게 됩니다.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적합하게 되므로 삼매도 얻을 수 있고 위빳사나로 전향할 수도 있습니다. 물질(rūpa)을 식별할 수도 있고, 정신(nāma)을 식별할 수도 있습니다. 원인을 식별할 수도 있고 결과도 식별할 수 있습니다. 즉 수행자가 원하는 것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되고 원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 적합한 마음의 상태가 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마음도 빛이 밝게 빛납니다. - pabhassara(빛이 난다). 부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높은 마음(adhicitta)인 선정을 닦는 마음에 빛이 밝게 빛난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위빳사나를 닦는 높은 마음(adhicitta)에도 빛나는 밝음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수행을 할 때에는 삼매의 원인이 되는 표상(nimitta)에만 주의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정진의 원인이 되는 표상(nimitta)에만 주의를 기울여도 안 됩니다. 평온의 원인이 되는 표상(nimitta)에만 주의를 기울여도 안 됩니다. 삼매와 정진, 평온이라는 이 세 가지에 균등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진이 과도하면 마음이 들뜹니다. 삼매가 과도하면 마음이 게을러지고요. 평온이 과도하면 어리석음(moha)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매와 정진은 균형이 잡혀야 합니다.
정진(viriya)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몸의 정진(kayika viriya)과 마음의 정진(cetasika viriya)이 그것인데 이 두 가지 모두가 강해야 합니다. 몸은 비록 앉아있더라도 머릿속에서 수많은 망상들이 방황하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앉아서 좌선하는 것이 힘들다고 못 견디면, 즉 몸의 정진(kayika viriya)이 없다면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정진도 필요하고 삼매도 필요합니다.
만약 명상의 대상에 대한 정진과 삼매가 있다면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너무 과도하게 몰아붙여도 안 되고 너무 느슨해도 안 됩니다. 느슨하면 수행하는 마음(bhavana citta)이 약해집니다. 너무 몰아붙이면 들뜨게 되고 마음이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명상의 대상에 대한 마음은 균형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중립(tatramajjhattata)인데 여기서는 평온의 니밋따(upekkhā nimitta)라고 부릅니다.
삼매와 정진의 균형이 맞았다면, 그리고 수행자가 평온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사마타를 닦는 마음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은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부드러워지고(muduta) 적합하게(kammaniya) 됩니다. 어떤 수행을 해도 마음은 유연하므로 적응할 수 있습니다. Pabhassara(빛이 있다) - 마음은 밝게 빛나게 됩니다. Na ca pabhaṅgu(부서지지 않고) - 이 마음은 장애(nīvarana)라는 오염(kilesa)들 때문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Sammā samādhiyati āsavānaṃ khayāya(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바르게 삼매에 든다.) - 번뇌(āsava)가 제거된 아라한과를 얻도록 마음은 안정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에는 빛이 있다고 가르쳤습니까?
네. 빛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vipassana bhavana citta), 특히 생멸의 지혜(udayabbaya ñāṇa)가 빛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마타를 닦는 마음(samatha bhavana citta)에도 빛이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목갈라나 존자가 아라한이 되는 이야기가 앙굿따라 니까야 「졸고 있음 경」(Pacalāyamāna sutta)에 나옵니다. 이 경에서 부처님은 목갈라나 존자에게 해태와 혼침(thīna middha)에서 벗어나려면 밤과 낮으로 빛(āloka)을 만들라고 가르칩니다.⁴⁾
⁴⁾ 목갈라나여, 그대는 광명상을 마음에 잡도리하여 '낮이다'라는 인식에 집중하면 된다. 낮에 [광명을 본 것]처럼 밤에도 [광명을 보고], 밤에 [광명을 본 것]처럼 낮에도 [광명을 본다]. 이와 같이 열려있고 방해받지 않은 마음으로 그대는 마음을 밝게 만들어야 한다. 그대가 그렇게 머물 때 혼침이 제거될 수도 있다...
복주서에도 빛에는 4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도 네 종류의 빛이 있다고... ① 태양의 빛 ② 달의 빛(별빛을 포함하여) ③ 불의 빛 ④ 지혜(통찰지)의 빛, 네 가지가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이 지혜의 빛에 관하여 「졸고 있음 경」(Pacalāyamāna sutta)의 복주서에는 '① 천안통(Dibba cakhu abhiññā)도 빛이 있다. 매우 강력하다. ② 광명 까시나(āloka kasina)도 혹은 모든 까시나에는 빛이 있다. ③ 준비삼매(paraikamma samādhi)로부터 시작하여, 근접삼매(upacāra samādhi)보다 윗단계의 사마타를 닦는 모든 마음(samatha bhavana citta)들에도 역시 빛이 있다. ④ 위빳사나의 경계(upakilesa) 가운데 하나로 위빳사나의 광휘로움(vipassanobhāsa)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위빳사나의 광휘로움'은 밝은 위빳사나 지혜(vipassana ñāṇa)의 빛을 말합니다. 이렇게 네 가지 빛에 관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타를 닦는 마음(samatha bhavana citta)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vipassana bhavana citta)에는 모두 빛이 있는데 왜 유독 광휘로움(obhāsa)이라는 위빳사나 경계(upakilesa)의 빛이 강조되는지요?
이것이 궁금합니까? 초기에 수행자들이 경험하는 빛과 이 광휘로움(obhāsa)은 그 정도와 파워에서 전혀 비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청정도론』 270쪽에 ...('이전에 나에게 이와 같은 광명이 일어난 적이 없다. 확실히 나는 도에 이르렀고, 과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여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과가 아닌 것을 과라고 여긴다.)(Vism, XX, 107) - 때로 수행자들은 '이런 빛은 전에는 결코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틀림없이 이것은 '도와 과이다.'라고 잘못 판단합니다. 도가 아님에도 도라고 하고, 과가 아님에도 과라고 합니다. 그는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벗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위빳사나의 경계(upakilesa)라고 한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빛이 나타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면 '지혜에는 빛이 있는가?', '정신(nāma dhamma)에 빛이 있다는 말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청정도론 복주서 428쪽, 733번째 문단에 나옵니다... (위빳사나의 광휘로움이란 위빳사나를 하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다. 상속의 과정 속에 내던져진 온도에서 생긴 물질이 빛나는 것이다.) - 위빳사나 지혜의 빛이란 무엇인가요?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이 밝은 빛은 위빳사나 마음에서 생긴 것이고 또한 물질 자체의 상속과정(santati)에서 일어난 온도(utu)라고 하는 불의 요소(tejo dhātu)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물질 명상주제(rūpa kammaṭṭhana)를 닦고 있는 수행자라면 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1) 정신(nāma)과 물질(rūpa)을 가진 사람이나 유정들의 심장토대(hadaya vatthu)에 의존해서 일어나는 모든 마음은 마음에서 생긴 물질(cittaja rūpa)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마음에서 생긴 깔라빠'(cittaja kalāpa)라는 '마음에서 생긴 물질'(cittaja rūpa)은 중생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일어납니다. 만약 이런 깔라빠 가운데 하나를 분석해보면, 8가지 물질들이 있습니다. 땅(pathavī), 물(āpo), 불(tejo), 바람(vayo), 색깔(vaṇṇa), 냄새(gandha), 맛(rasa) 그리고 영양소(oja)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색깔은 형색의 요소(vaṇṇa dhātu)라고도 합니다. 사마타를 닦는 마음(samatha bhavana citta)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vipassana bhavana citta)은 모두 마음에서 생긴 물질(cittaja rūpa)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므로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이 '마음에서 생겨난 물질'을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모든 마음에서 생긴 깔라빠에는 색깔(vaṇṇa dhātu)이라는 형색(rūparammaṇa)이 있습니다. 이 형색(rūparammaṇa)이 밝게 빛나는 물질(bhāsuraṃ rūpaṃ) 입니다.
2) 좀 더 식별을 하면 모든 마음에서 생긴 깔라빠(cittaja kalāpa)에는 땅(pathavī), 물(āpo), 불(tejo), 바람(vayo)이라는 사대요소가 있습니다. 이 사대에는 온도(utu)라는 불의 요소(tejo dhātu)가 있는데, 이 불의 요소(dhātu)가 새로운 세대의 깔라빠를 만들어 냅니다. 사마타를 닦는 마음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의 힘에 따라 이 불의 요소에서 새로운 세대의 깔라빠가 재생되어 안(ajjhata)에서 밖(bahiddhā)으로 퍼져나가게 합니다. 이 불의 요소가 원인이 되어 만들어진 모든 깔라빠에는 8가지 물질이 있습니다. 땅(pathavī), 물(āpo), 불(tejo), 바람(vayo), 색깔(vaṇṇa), 냄새(gandha), 맛(rasa) 그리고 영양소(oja) 입니다. 이 모든 '온도에서 생긴 깔라빠'(utuja rūpa kalāpa)들에는 색깔(vaṇṇa dhātu)이라는 형색(rūparammaṇa)이 있습니다. 이 형색(rūparammaṇa)이 밝게 빛나는 물질(bhāsuraṃ rūpaṃ) 입니다.
즉 ① 위빳사나를 하는 마음(vipassana citta)에서 생긴 모든 물질 깔라빠(cittaja rūpa kalāpa)에 있는 색깔(vaṇṇa dhātu)의 밝음 ② 마음에서 생긴 물질 깔라빠에 있는 온도(utu)라는 불의 요소(tejo dhātu)에서 생긴 모든 깔라빠의 색깔(vaṇṇa dhātu)의 밝음, 이 두 가지를 위빳사나의 광휘(vipassanaohāsa) 혹은 지혜(vipassana ñāṇa)의 빛이라고 합니다. 이런 설명은 사마타를 닦는 마음(samatha bhavana citta)에서 생긴 빛에도 적용이 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것이 위빳사나 지혜의 빛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문헌들에 나오는 표현은 은유적입니다. 즉 지혜를 원인으로 만들어진 결과인 물질이 빛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데, 원인인 지혜 자체가 빛이 있다고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마음에서 생겨난 물질과 온도에서 생겨난 물질에 존재하는 색(vaṇṇa dhātu), 형색(rūparammaṇa)의 다른 이름입니다... 왜 이 경우에 은유적 표현을 하였을까요? 사마타를 닦는 마음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이 강력해질수록 빛은 더욱 밝아지기 때문입니다.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래서 정신(nāma dhamma)에도 빛이 있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마음(정신)에 빛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생긴 물질 깔라빠와 온도에서 생긴 물질 깔라빠, 두 가지 모두에 존재하는 색깔(vaṇṇa dhātu)과 대상물질인 형색(rūparammaṇa)의 밝음이 빛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점이 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방에 전깃불이 들어와 있습니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그 빛은 방에 있는 모든 다른 대상들에 의해 반사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과 온도에서 생긴 깔라빠들에 있는 색깔(vaṇṇa dhātu), 형색(rūparammaṇa)이 밝아지면 나머지 다른 깔라빠들, 예를 들어 업에서 생긴 물질(kammaja rūpa)과 음식에서 생긴 물질(āhāraja rūpa)에 있는 색깔(vaṇṇa dhātu)도 역시 반사가 되어 함께 빛이 납니다. 그러므로 복주서는 'sasantati patitaṃ(상속에서 함께 밝게 빛난다) - [이 빛은 물질의] 상속과정에서 일어난다.'고 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복주서는 마음에서 생긴 물질의 빛과 온도에서 생긴 물질의 빛의 힘을 비교하였습니다... -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에서 생긴 모든 깔라빠'에 있는 색깔(vaṇṇa dhātu) 그 형색(rūparammaṇa)의 밝음은 오로지 몸에만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모든 온도에서 생긴 깔라빠(utuja kalāpa)의 색깔(vaṇṇa dhātu)은 몸 안에서만 번지는 것이 아니라 몸 밖으로,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갑니다. 그러므로 밖으로 퍼져나가는 빛은 온도에서 생긴 깔라빠(utuja kalāpa)에 있는 색(vaṇṇa dhātu) 그 형색(rūparammaṇa)의 빛을 말합니다. 이 밝음의 정도는 통찰지의 힘의 크기에 따릅니다.(ñāṇānubhāvānurūpaṃ) - 즉 지혜의 힘이 크다면 빛은 매우 밝습니다. 지혜가 약하면 빛은 그렇게 밝지 않습니다. 밝음의 정도는 지혜의 힘에 비례합니다.
...이 빛은 오로지 수행자의 통찰지로만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이 빛을 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사람들은 맨 눈으로 X-레이를 볼 수 있나요?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맨 눈으로는 X-레이가 안 보이니까 X-레이는 없다고 말할 수 있나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X-레이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까요.
... 빛이 밖으로 퍼져 나가며 어떤 장소를 지나면서 부딪칠 때 그 곳을 식별하면 다양한 형태의 대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보일까요? ...빛이 지나가는 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대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 존경받는 스승들은 그것을 눈의 알음알이(cakkhu viññāṇa)로 보는 것인지, 아니면 마노의 알음알이(mano viññāṇa)로 보는 것인지 알아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위빳사나를 하는 마음에서 생긴 빛은 외부의 대상을 식별하거나 보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마타를 닦는 마음에 빛이 있다면 이 빛도 역시 외부의 대상을 식별하는데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안통(dibba cakkhu abhiññā)처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천안통처럼 강력하지는 않아도 외부의 대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외부의 대상을 볼 때 눈의 알음알이(cakkhu viññāṇa)로 봅니까? 아니면 마노의 알음알이(mano viññāṇa)로 봅니까? 청정도론 복주서에 결론이 있습니다... (천안통이 있는 자가 보는 것처럼 그도 (외부의 대상을) 마노의 알음알이로 본다). - 결론은 눈의 알음알이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심장토대(hadaya vatthu)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의문인식과정의 속행의 마음(manodvārika javana vīthi citta)으로 보는 것이지 눈투명요소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눈의 알음알이(cakkhu viññāṇa citta)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사마타를 닦는 마음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을 계발하고 있는 자는, 특히 자애관(metta kammaṭṭhāna)을 하고 있다면 이러한 대상들을 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천인', '모든 천신(sabba deva)들이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이라고 자애를 보낼 때 빛의 힘이 퍼져나가는 정도에 따라 수행자는 '어떤 천인들'을 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악처에 떨어진 중생(sabba vinipatika)들이~' 라고 고통 받는(apāya) 중생들을 향하여 자애를 보낼 때는 그곳(apāya)의 중생들을 볼 수도 있습니다.
마노의 알음알이(mano viññāṇa)로 보는 것이지 눈의 알음알이(cakkhu viññāṇa citta)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위빳사나 명상주제(vipassana bhavana kammaṭṭhāna)를 닦는 자들에게 이런 빛이 없다면 밖에 있는 31존재계의 정신물질(nāmarūpa)을 명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마타를 닦는 마음(samatha bhavana citta)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vipassana bhavana citta)에는 빛이 있습니다. 「표상 경」(nimitta sutta)에서 부처님께서는 사마타를 닦는 마음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에는 빛이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 빛이 나타나는 순간마다 생멸의 지혜(udayabbaya ñāṇa)의 단계에 와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가요?
아니요. 모든 빛이 생멸의 지혜도 아니고 생멸의 지혜에만 빛이 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닙니다.
다른 사마타를 닦는 마음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에도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멸의 지혜의 단계에서 생긴 빛은 다른 것들과 비교해 볼 때 앞서 경험한 빛들과 같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럼 어떻게 다를까요? 수행을 하고 있는 분들은 이 말을 이해할 것입니다.
- 파아옥 또야 사야도 법문 · 정명 스님 옮김, '사마타 위빳사나 지혜의 빛' 44~55쪽, 도서출판 푸른향기(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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