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말과 행동, 본삼매를 가져오는 바른 사유(sammā-saṅkappa)
1.
청정도론 16장 78번~80번 문단을 보면 3가지 절제가 각각 연결되어 있는 대상을 말한다.
- 바른 말(sammā-vācā)은 바른 사유(sammā-saṅkappa)와 연결되어 있다.
- 바른 행위(sammā-kammanta)는 바른 말과 연결되어 있다.
- 바른 생계(sammā-ājīva)는 바른 말과 바른 행위와 연결되어 있다.
필자는 여기서 바른 행위와 바른 생계 역시 '바른 사유'와 연결되어있다고 하지 않고,
굳이 각각 '바른 말’, ‘바른 말과 바른 행위’와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우 실라 사야도께 이 부분을 여쭈어보니, 뜻으로는 바른 행위와 바른 생계도 '바른 사유'와 연결되어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하셨다.
바른 사유를 통해 생계와 상관없는 바른 말과 행위, 생계와 관련된 바른 말과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일 테다.
2.
바른 사유는 출리(욕망에서 벗어남)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해치지 않음)에 대한 사유이다.
사유로 옮기는 saṅkappa는 생각, 일으킨 생각으로 옮기는 vitakka와 동의어이다.
따라서 바른 사유는 출리(nekkhamma), 악의 없음(avyāpāda), 해코지 않음(ahiṃsa)으로 향하는 일으킨 생각(vitakka)이다.
『초기불교이해』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른 사유는 불자들이 세상과 남에 대해서 항상 지녀야 할 바른 생각을 말한다.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초기경들에서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자애·연민·더불어 기뻐함·평온의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사범주, 사무량심)을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각묵 스님 지음, '초기불교이해' P.370, 초기불전연구원(2010)
왜 바른 사유를 자비희사의 사무량심과 연관지어 설명할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인용한다.
(2) 바른 생각의 세 가지 마음
둘째, 삼마상깝빠sammāsaṅkappa, 정사유, 바른 생각이란 무엇인가.
바른 견해와 바른 생각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는 것이 틀리면 생각도 틀릴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바르게 아는 지혜가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나쁜 행동을 했을 때 나쁜 결과가 올 것임을 알면 행동을 바르게 하려고 챙기고 계율을 지키게 됩니다. 계율을 어기면 내가 원하지 않는 고통을 겪게 되고 행복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에 계속 번뇌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렇게 바른 생각은 바른 견해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 바른 생각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가 넥캄마상깝빠nekkhammasaṅkappa, 출가심입니다. 오욕락에 빠져 사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 오욕락에 대한 갈망과 집착을 버리고 계율을 지키며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업과 과보를 알게 되니 욕심을 버리고 보시를 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욕심의 위험을 아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노예들이 아는 것이 없을 때는 노예로서의 자신의 삶을 편하다고 여겨 만족하지만, 그것이 부당하다는 바른 견해를 갖게 되면 그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바른 견해가 없을 때는 갈애와 탐욕에 이끌려 살다가 바른 견해를 갖게 되니 어떻게 하면 갈애와 탐욕의 노예처럼 사는 이런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리를 합니다. 오욕락에 대한 욕심을 차츰 줄여 가게 되고 다섯 가지 기본적인 계율을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살생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술이나 약물에 빠지는 등의 나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결국 자신과 남을 괴롭게 하는 것임을 알고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넥캄마상깝빠의 원래 뜻은 출가심이지만, 꼭 출가를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갈애 탐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 시간 될 때마다 수행처에 와서 수행하는 것도 출가심입니다. 불선업에 빠져 있다가 선업을 하는 것, 5장애(빤짜니와라나pañcanīvaraṇā: 탐욕, 성냄, 해태·혼침, 들뜸·후회, 의심)에서 벗어나 선정을 가지는 것, 사견에서 벗어나 위빳사나 지혜를 가지는 것, 탐·진·치에서 벗어나 불탐·부진·불치가 되는 것 등 안 좋은 것에서 나와 좋은 것으로 가는 것이 모두 넥캄마입니다. 이 출가심은 정견이 없으면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아뱌빠다상깝빠abyāpādasaṅkappa, 자애심입니다. 뱌빠다는 미움, 성냄의 마음이고 아뱌빠다는 그 반대예요. 미움, 성냄, 적의에서 벗어나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니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자애(멧따mettā)이지요. 모든 중생들이 위험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자애 또한 바른 견해가 있어야 가능해집니다. 진정한 지혜는 항상 자비와 함께 합니다.
세 번째, 아위힘사상깝빠avihiṃsāsaṅkappa, 남을 고문하고 괴롭히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연민심을 지니는 것입니다. 위힘사는 남을 고문하고 괴롭히고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아위힘사는 그것의 반대말로 연민심, 즉 까루나karuṇā예요. 고통에 빠져 있는 대상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멧따mettā가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까루나karuṇā는 고통에 빠진 모든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른 견해에 대한 신심이 있어야 바른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심은 지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믿는 맑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신심은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지혜로 알고 믿는 것입니다. 넥캄마가 무엇인지, 업과 과보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바르게 알고 자신감을 가지고 믿고 따르는 것, 지금 내가 확실하게 알고 믿기 때문에 마음에 하나도 걸림이 없고, 걱정이나 의심 또는 두려움이 없으며, 아주 분명하고 맑은 마음이 신심입니다.
정견과 정사유, 이 두 가지가 지혜, 빤냐paññā입니다. 팔정도를 세 영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가 지혜, 다른 하나가 집중,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계율입니다. 그것을 간단히 계정혜라고 하지요. 그중 바른 견해와 바른 생각이 바로 지혜 요소, 빤냐막강가paññāmaggaṅga에 속합니다.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계가 계행 요소인 실라막강가sīlamaggaṅga이고, 바른 노력, 바른 사띠, 바른 집중이 집중 요소인 사마디막강가samādhimaggaṅga 입니다.
계정혜는 서로 연관이 되어 있어 지혜가 깊어질수록 계율도 더 잘 지키게 되고, 계율이 깨끗해질수록 집중이 깊어지며, 집중이 깊어질수록 마음이 청정해지면서 지혜가 다시 더 높아지고, 그렇게 서로서로를 도우면서 깊고 높아져서 최종적으로 깨달음에 도달합니다.
- 아신 빤딧짜 스님 법문, '붓다의 첫 사자후, 세상을 깨우다' P.131~133, 법승 담마야나(2016)
3.
바른 사유가 무르익을 때, 말과 행동은 청정해진다.
이것을 청정도론에서는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가 바른 사유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 것일 테다.
(3) 바른 말과 바른 행동, 바른 생계
팔정도의 세 번째, 삼마와짜sammāvācā, 정어, 바른 말이란 무엇인가.
바른 말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거짓말을 피하는 것, 욕설 등 거친 말을 안 하는 것, 이간질을 피하는 것,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진실한 말을 하고 서로 화합을 이루게 하는 말을 하며, 부드럽게 말하고 꼭 필요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나쁜 말을 피하는 것은 '절제', 위라띠virati라는 마음부수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나쁜 말을 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 이것을 절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마음부수입니다. 네 단계 성인 중 수다원만 되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친 말이나 이간시키는 말은 아나함이 되어 성냄이라는 번뇌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라야 안 하게 된다고 합니다. 아라한이 되어야 싱거운 말, 가벼운 말이나 쓸데없는 말을 완전히 안 하게 된다고 하니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5계나 8계에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항목이 들어 있는데 바른 말의 나머지 세 가지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어를 지키는 것은 수행에 아주 중요합니다. 말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수행에서 큰 장애가 됩니다. 그래서 미얀마의 마하시 선원 지침서에 보면 선원에서 수행자들이 대여섯 명씩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큰 죄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스님은 5분 이야기하는 것보다 차라리 15분 동안 자는 것이 수행에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수행 중 말을 하면 일단 집중이 깨지게 되고,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으면서 수행 중 그것들이 자꾸 떠올라 수행을 못하게 하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아예 말을 안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면 꼭 수행에 관련되는 이야기만 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수행법이나 노력에 대한 이야기, 수행의 기쁨이나 집중, 사띠, 신심, 지혜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수행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하면 수행이 망가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넷째, 삼마깜만따sammākammanta, 정업, 바른 행동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크게 세 가지로 살생을 피하는 것, 도둑질을 피하는 것, 삿된 음행을 피하는 것이고 수행 중에는 아예 성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살생을 하게 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을 절제하고 피하는 것도 마음부수로 위라띠virati입니다. 도둑질이나 삿된 음행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다섯째로 삼마아지와sammāājīva, 정명, 바른 생계란 무엇인가.
바른 생계는 앞에 나왔던 바른 말, 바른 행동과 어느 정도 겹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계와 상관없이 그냥 살생을 했다면 삼마깜만따인 정업과 관련되고 생계를 위해 살생을 했으면 삼마아지와, 정명을 어긴 것입니다. 도둑질이나 삿된 음행, 거짓말 등도 마찬가지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생계와 관계가 있으면 삼마아지와, 그렇지 않으면 삼마깜만따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지 못할 수도 있는 8계로 아지왓타마까실라ājivaṭṭhamakasilā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8계와 조금 다른데 이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속합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지킬 수 있는 계율로 옛날에 8계를 지키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계율로 미얀마에서는 지금도 일반 가정에서 많이 지키고 있습니다. 오후불식을 하라는 내용도 빠져 있고 부부간의 성생활을 금지하는 항목도 없습니다. 삼마깜만따sammākammanta 세 가지, 삼마와짜sammāvācā 네 가지, 삼마아지와sammāājīva 한 가지로 총 여덟 가지 계율입니다.
이것은 첫째 살생하지 않는 것, 둘째 도둑질하지 않는 것, 셋째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 넷째 거짓말하지 않는 것, 다섯째 이간질하지 않는 것, 여섯째 욕설과 거친 말을 하지 않는 것, 일곱 번째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쁜 생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어, 정업, 정명 이 세 가지는 계정혜 삼학 중 계학에 속합니다. 삼마와짜(정어)는 말을 챙기는 것, 삼마깜만따(정업)은 몸을 챙기는 것, 삼마아지와(정명)는 생계와 관련되는 몸과 말을 챙기는 것이에요.
- 아신 빤딧짜 스님 법문, '붓다의 첫 사자후, 세상을 깨우다' P.134~136, 법승 담마야나(2016)
4.
『청정도론』 16장에서는 바른 사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77. 그런 바른 견해를 가진 자가 마음을 열반(nibbāṇa-pada)으로 기울이는 것(abhiniroopana)이 바른 사유(sammā-saṅkappa)이다. 이것은 그릇된 사유를 부순다. 바른 사유의 특징은 마음을 대상으로 바르게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의 역할은 본삼매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릇된 사유를 버림(pahāna)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왜 바른 사유가 본삼매를 가져온다고 할까?
우 실라 사야도께선 바르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은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해주셨다.
모든 선업 마음에는 바른 사유가 필요하다.
바른 사유를 통해 일상에서 몸과 말을 바르게 챙기고, 수행에서 본삼매를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