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색이라는 대상은 눈의 감성을 친 뒤 바로 그 찰나에 마노의 문의 영역에 들어온다.”
일전에 마노의 대상, 법이라는 대상을 공부하면서 마노가 감성의 물질을 대상으로 취하는 것에 대해 사유한 바 있다.
해당 내용은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당 내용을 보고 초불 카페에 선배 도반께서 담마상가니의 주해 내용을 답글로 달아주셨는데, 해당 내용을 공유한다.
(담마상가니 P.230~232)
364) ...그리고 주석서는 형색 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업과 마음과 온도와 음식의] 네 가지 [원인에서] 생긴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형색[색, rūpa]이 '형색이라는 대상(rūpārammaṇa)'이다.
[마음과 온도의] 두 가지 [원인에서] 생긴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소리가 '소리라는 대상'이다.
네 가지 [원인에서] 생긴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냄새가 '냄새라는 대상'이다.
네 가지 [원인에서] 생긴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맛이 '맛이라는 대상'이다.
네 가지 [원인에서] 생긴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감촉이 '감촉이라는 대상'이다." (DhsA.71)
365) "'법을 대상으로 하거나'라고 하셨다... 이것이 '법이라는 대상(dhammārammaṇa)'이다." (DhsA.71)
..."[인식과정의] 길에 들어오지 않은 형색 등도 역시 법이라는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다음 경으로 부정되어야 한다.
- "도반이시여, 이들 다섯 가지 감각기능이 서로 다른 대상(visayā)과 다른 영역(gocarā)을 갖고 있어, 서로 다른 영역과 대상을 경험하지 않지만 마음(의)이 그들 각자의 의지처이고, 마음이 그들 각자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합니다." (M43 §21)
형색이라는 대상 등은 이들 [눈의 알음알이 등]에게 영역에 들어온 대상(gocara-visaya)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노(의)에 의해서 경험되는 것이지만 형색 등의 대상이라는 이 뜻은 확정되었다.
그리고 형색 등은 신성한 눈의 지혜(천안통) 등에게 대상이 되기 때문에 역시 이 뜻은 확정되었다.
[인식과정의] 길에 들어오지 않은 형색이라는 대상 등은 신성한 눈의 지혜(천안통) 등의 대상이지 이들이 법이라는 대상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 방법을 통해서 대상을 정의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각각의 대상은 두 개의 문들에서 영역에 들어온다.
형색이라는 대상은 눈의 감성(cakkhu-pasāda)을 친 뒤 바로 그 찰나에 마노의 문의 영역에 들어온다.
바왕가의 동요(bhavaṅga-calana)의 조건(paccaya)이 된다는 뜻이다.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의 대상에 대해서 같은 방법이 적용된다." (DhsA.72)
계속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을 한다.
"예를 들면 새가 허공으로부터 내려와서 나무 위에 내려앉으면서 나뭇가지를 치고 그것의 그늘이 땅에 부딪히는데,
나뭇가지를 치고 그늘이 땅에 부딪히는 것은 선후가 없이 한 찰나에(ekakkhaṇeyeva) 생기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현재의 형색 등은 눈의 감성 등을 치는 것과 바왕가의 동요를 가능하게 하여 마노의 문에 들어오는 것은 선후가 없이 한 찰나에 생긴다.
그 다음에 바왕가를 끊은 뒤에 눈의 문 등에서 일어나는 전향(āvajjana)에서 시작하여 결정(voṭṭhabbana)으로 끝나는 [과정] 바로 다음에 이러한 대상들 가운데 하나에 대해서 [지금 논의하는 주제인] 이 [첫 번째] 큰마음이 일어난다.
그러나 순수한 마노의 문(suddha-manodvāra)에서는 감성을 치는 역할은 없다.
자연적인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한 것을 통해서 이 대상들은 영역에 들어온다.
어떻게?
여기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로 잘 장엄된 대탑을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하고] 16개의 단에서 다섯 가지로 확립된 절을 올린 뒤에 합장을 하고 우러러보면서 부처님을 대상으로 하여 희열을 가지고 서 있다.
그가 이와 같이 탑을 보고 부처님을 대상으로 희열을 일으킨 뒤 나중에 어디를 갔을 때 낮이나 밤에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리에 낮아서 [그 탑으로] 전향을 하여 멋지게 장엄이 된 대탑이 눈의 문의 영역에 나타나는 것처럼 되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하고] 탑에 절을 올릴 때처럼 된다.
이와 같이 본 것을 통해서 형색이라는 대상은 영역에 들어오게 된다." (DhsA.72~73)
주석서는 같은 방법으로 들은 것(suta)과 냄새를 맡은 것(ghāyita)과 맛본 것(sāyita)과 닿은 것(phuṭṭha)을 통해서 대상이 각각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설명한 뒤 순수한 마노의 문에 대해서
"이와 같이 순수한 마노의 문(순의문)에서는 감성을 치는 역할은 없다.
자연적인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는 것을 통해서 이 대상들은 영역에 들어온다."(DhsA.73)
라고 한 번 더 강조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서 자연적으로 본 것 등을 통해서 영역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고]주석서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방법이 있다.
1️⃣ 본 것과 2️⃣ 들은 것과 3️⃣ 이 둘이 결합된 것이라는 이것이 본 것 등이라고 알아야 한다.
여기서 1️⃣ 본 것은 다섯 가지 문을 통해서 이전에 취한 것이다.
2️⃣ 들은 것은 직접 보지 않고 전해들은 것을 통해서 이전에 취한 것이다.
3️⃣ 이러한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 이 둘이 결합된 것이다.
이처럼 이러한 본 것 등을 통해서 이들이 마노의 문의 영역에 들어온다고 알아야 한다.
1️⃣ 여기서 본 것을 통해서 영역에 들어온 것은 앞에서 다섯 가지 방법으로 설명한 것이다.
2️⃣ 그런데 어떤 자는 '부처님의 존상은 으뜸가는 복덕에 의해서 생긴 그런 [뛰어난 것이고], [그 분의] 음성은 아주 달콤하며, 아무개 지역의 아무개 꽃은 아주 좋은 향기를 가지고 있고, 아무개 과일은 아주 달콤한 맛을 가지고 있으며, 아무개 외투 등은 아주 즐거운 감촉을 가진다'라고 듣는다.
이런 것들은 눈의 감성에 부딪힘이 없이 듣는 것만으로도 바로 그의 마노의 문의 영역에 들어온다.
그러면 그 마음은 그 형색이나 소리에 대해서는 믿음(pasāda)을 통해서,
냄새 등에 대해서는 성자들에게 보시하고자 함을 통해서,
혹은 다른 사람들이 보시한 것들에 대해서 함께 기뻐함을 통해서 일어난다.
이와 같이 2️⃣들음을 통해서 이러한 것들은 마노의 문의 영역에 들어온다.
3️⃣어떤 자는 앞에서 말한 이러한 형색 등을 보거나 듣거나 한다.
그에게는 '이러한 모습을 한 분은 미래에 태어날 부처님이 되실 것이다.'라는 등의 방법으로 눈의 감성에 부딪히지 않고 본 것과 들은 것이 결합되어 마노의 문의 영역에 들어온다.
그러면 앞에서 설명한 방법대로 그들 가운데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하여 이 [첫 번째] 큰 마음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3️⃣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을 통해서 이들은 마노의 문의 영역에 들어온다.
이것은 오직 입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믿음(saddhā)과 찬성과 이론적인 추론과 사색하여 얻은 견해 등을 통해서 이들이 마노의 문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상세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영역에 들어온 것들은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그래서 이 방법은 주석서에서는 채택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각각의 대상을 가진 자와나는 두 가지씩의 문에서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
형색이라는 대상을 가진 속행은 눈의 문에서도 일어나고 마노의 문에서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소리 등의 대상에 대해서도 이 방법은 적용된다." (DhsA.73~74)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아래 정리 내용은 출처에 따라 정확하게 정리하고자 했으나, 필자의 부족함으로 사견이 들어가있을 수 있으니 내용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참고하길 바란다.
다섯 가지 감각기능의 대상은 그들 각각이 서로 다른 영역이므로 서로의 영역의 대상을 취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감성의 물질은 오직 마노만이 대상으로 취할 수 있다. 따라서 감성의 물질은 법이라는 대상에 포함된다.
다섯 가지 감각기능의 대상은 각각의 감성의 물질, 오문의 영역에 나타남과 동시에 동일한 바로 그 찰나에 마노의 문의 영역에도 들어온다.
즉 오문의 대상은 오문과 동시에 의문에서도 경험된다.
형색 등의 다섯 감각기능의 대상은 마노에 의해서도 경험되지만, 형색·소리·냄새·맛·감촉으로 확정된다. 법이라는 대상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식과정에 의해 아는 것이 아닌 신통지를 통해서 알게 되는 형색 등의 대상도 형색 등의 대상으로 확정될 뿐 법이라는 대상이 아니다.
법이라는 대상은 오직 감성의 물질, 미세한 물질, 마음, 마음부수, 열반, 개념으로 확정된다.
다섯 감각기능의 대상은 마노에 의해서도 경험되지만 법이라는 대상이 아니며 형색 등의 대상으로 확정된다.
고짜라(gocara)의 영역인 다섯 감각기능의 대상은 앞서 말한 것처럼 두 개의 문들에서 각각 영역에 들어온다.
감성의 물질의 영역과 마노의 문의 영역이 그것이다.
그 두개의 문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은 선후가 없다. 한 찰나에 동시에 생겨난다.
그렇다면 마노의 문의 영역에 형색 등의 대상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1️⃣ 지금 현재의 대상을 인식하며 오문과 의문에서 대상을 경험한다.
2️⃣ 이전의 보고 듣고 등 다섯 감각의 기능으로 경험한 것을 기억하며 의문에서 형색이라는 대상 등을 경험한다.
3️⃣ 직접 보는 등 다섯 감각의 기능으로 경험하지 않더라도, 다른 이로부터 전해들은 것을 통해서도 의문에서 형색이라는 대상 등을 경험한다. 즉, 눈의 감성 등에 부딪힘이 없이 듣는 것만으로도 그의 마노의 문의 영역에 형색 등의 대상이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