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청정도론
부처님의 9가지 덕목 - ⑧ 부처님buddho이신 이유 2가지
Rihan
2025. 5. 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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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덟 번째 덕목 - 부처님buddho
So bhagavā itipi buddho.
그 세존께서는 이런 이유로(일체지를 갖추시고, 중생들을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붓도이시다.
- √budh(알다, 깨어나다, 이해하다, to know, to wake, to understand) + -ta(과거분사) → buddha: 깨달은 자
- 여기에 -o(남성 주격 단수)가 붙으면 → buddho: 그 깨달은 분
- 즉, buddho는 문장에서 주어로 서술·호칭될 때 쓰이고, buddha는 기본형으로 쓰이는 어간이다.
- 염불이나 부처님의 공덕을 기릴 때엔 Buddho, 일반적인 설명이나 책 표기 등에서는 Buddha를 쓴다.
2가지 이유로 붓도라고 말한다.
① 알아야 할 모든 법을 아시기 때문에, 혹은 ② 스스로 사성제를 깨달으셨고 중생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기 때문에 부처님이다.
- √budh → bujjhati(깨닫다) → bujjhitā(과거분사): 깨달음을 얻은 자 → 일체법을 깨달은 분
- √budh → bodheti(깨닫게 하다) → bodhetā(명사형): 깨닫게 하는 자 → 사성제를 스스로 깨달았고, 다른 이들도 깨닫게 해주시는 분
이를 설명하는 『청정도론』 의 핵심 문장 2가지는 다음과 같다.
- Yaṃ pana kiñci atthi ñeyyaṃ nāma, sabbasseva buddhattā vimokkhantika-ññāṇa-vasena buddho.
무엇이든 이른바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그 모든 것을 아라한의 지혜로 다 아시기 때문에 붓다이시다.
- Yaṃ무엇이든: 관계대명사(which, whatever thing)
- pana또한
- kiñci어떤 것이든: kim(무엇) + ci(어떤, 아무: 불특정 접미사) → anything, whatever
- atthi존재하다: √as(존재하다)
- ñeyyaṃ알아야 할 것: √ñā(알다) + -eyya(~해야 할)
- nāma~라고 불리는, 이른바 (c.f. 명사로는 ① 이름/명칭, ② 정신을 의미한다.)
- Sabbasseva바로 그 모든 것을: sabba(모든) + -ssa(여격 단수) + eva(바로)
- buddhattā알기 때문에: buddha + -tta(~때문에)
- vimokkhantika-ññāṇa-vasena아라한의 지혜로: vimokkha(해탈) + antika(~로 끝나는) + ñāṇa + vasa(힘, 지배, 영향력) + -ena(~에 의해, 도구격 어미)
- 위모칸티까 냐나는 의미상으로 '아라한 도·과 지혜'를 뜻하지만, 부처님의 아라한 지혜는 삽반뉴따 냐나, 즉 사성제를 넘어 모든 법을 꿰뚫어 보는 일체지가 같이 생긴다는 점이 특별하다. 다른 아라한들과 달리 빠라미가 완벽하시기 때문이다.
- Yasmā vā cattāri saccāni attanāpi bujjhi, aññepi satte bodhesi, tasmā evamādīhipi kāraṇehi buddho.
혹은 네 가지 진리를 자기 스스로도 깨달았고, 다른 중생들도 깨닫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이유들에 의해서도 또한 붓다이시다.
- Yasmā~이므로 tasmā그러므로~
- Vā또는, 혹은
- cattāri saccāni네 가지 진리: catu(4) + -āri(중성 복수 어미) saccā + -āni(중성 복수 어미)
- attanāpi자기도, 스스로도: atta(자기, 자신, self) + nā(-ena → ~에 의해) + pi(또한)
- bujjhi깨달았다: bujjhati(알다, 깨닫다, 이해하다)의 과거형
- aññepi다른...도: añña(다른, other) + -e(복수 목적격) + pi(또한)
- Satte중생들: satta + -e(복수 목적격)
- Bodhesi깨닫게 하였다: √budh(깨닫다) + -e(사역형 접사) + si과거형
- evamādīhipi이와 같은 것들에 의해서도: evaṃ(이와 같은) + ādi-(기타 등등, and so on) + -hi(-ehi → ~에 의하여) + pi(또한)
- kāraṇehi이유들에 의하여: kāraṇa(√kṛ행하다 + -ana행위 접미사 → 이유, 원인, 근거) + -ehi(~들에 의하여)
붓도 공덕은 정등각자sammāsambuddha와는 무엇이 다른가?
- 삼마삼붓다 공덕은 스승의 도움을 받지 않고 ① 스스로sāmañca 깨달으신 것이 강조된다. 깨달음의 주된 대상은 ② 사성제Cattāri Ariya-saccāni이며, 따라서 이것을 완벽하게 통찰하신 지혜paṭivedha ñāṇa가 강조된다.
- 붓다 공덕은 ① 일체지Sabbaññutā-ñāṇa를 갖추신 것, 그리고 ② 설법 지혜desanā ñāṇa로 스스로 깨달으신 사성제를 다른 중생들 역시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이 주된 대상이다.
(9) 부처님(Buddha, 불)
52. 알아야 할 것을 전부 깨달았기 때문에 해탈의 구경에 이른 지혜를 가진 부처님이시다. 혹은 사성제를 그분 스스로 깨달았고 또 중생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도 부처님이시다. 이 뜻을 설명하기 위해 "사성제를 깨달은 분이기에 부처님이시다. 중생들을 깨닫게 하기 때문에 부처님이시다.(Ndl.457)"...
- 대림 스님 옮김, 『청정도론 제1권』 p.501, 초기불전연구원(2021)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인 사성제와 알아야 할 모든 법을 스스로도 깨달으시고bujjhitā, 다른 이들도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에bodhetā 붓다buddho, 즉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앞서 정등각자 덕목에 대한 설명에서도 부처님께서 네 가지 진리와 모든 법을 깨달으신 것을 설명했습니다. 정등각자라는 덕목은 네 가지 진리를 깨달으신 것이 주된 대상이고, 붓다라는 덕목은 네 가지 진리를 제외한, 알아야 할 모든 법까지도 깨달으신 것을 말합니다. 또는 정등각자의 덕목은 부처님 스스로의 통찰 지혜paṭivedha ñāṇa 능력을 드러내고 붓다의 덕목은 설법 지혜desanā ñāṇa 능력을 드러냅니다.
- 비구 일창 담마간다 지음, 『가르침을 배우다』 p.53, 도서출판 불방일(2021)
Yaṃ pana kiñci atthi ñeyyaṃ nāma, sabbasseva buddhattā vimokkhantikaññāṇavasena buddho.
뭔가 알아야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번뇌가 하나도 없는 아라한의 도의 지혜로 다 안다. 그래서 붓도이다.
낀찌(뭔가 조금이라도), 앗티(있다면), 네이양나마(알아야 하는 어떤 것), 그래서 양빠나낀찌앗티네이양나마(뭔가 알아야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삽밧세와붓닷따(모두 다 안다), 위목칸띠깐냐나와세나(아라한의 지혜로).
부처님의 여덟 번째 공덕 '붓도'와 두 번째 공덕인 '삼마삼붓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삼마삼붓도'에서는 '삼마삼(올바르게 스스로)'에 비중을 두었고 여기서는 '붓도(깨달음)'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앞에서 '삼마삼붓도'의 뜻을 '삼마삼만짜 삽바담마낭 붓닷따 빠나 삼마삼붓도'로 풀이하였습니다. 삼마(올바르게), 삼만짜(스스로, 스승 없이), 삽바담마낭(모든 법들을), 붓닷따빠나(깨달았기 때문에), '삼마삼붓도'입니다... 올바르게 깨달은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삼마(올바르게), 삼(스스로). 그래서 '삼마삼'에 무게를 두고 '삼마삼만짜 삽바담마낭 붓닷따 빠나 삼마삼붓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부처님의 여덟 번째 공덕 '붓다'는 삼마삼붓도에서 '붓도'에 무게를 둡니다. 붓도는 '양 빠나 낀찌 앗티 네이양 나마(뭔가 알아야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삽밧세와 붓닷따(모두 다 안다)', '위목칸띠깐냐나와세나(번뇌가 하나도 없는 아라한의 지혜로)' 입니다.
부처님의 아라한 지혜가 다른 아라한의 지혜보다 특별한데, 그것은 부처님이 아라한의 도를 깨달은 순간 '삽반뉴따냐나'라는 모든 것을 아는 지혜가 같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사리불이나 오비구 같은 다른 아라한들이 깨달을 때는 아라한의 도만 갖추지, 삽반뉴따냐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부처님께서 빠라미(바라밀)를 해 왔던 양과 기간이 다른 아라한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아라한으로 깨닫는 순간 '삽반뉴따 냐나'를 가지고 모든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붓도'라고 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풀이하면 '붓닷따띠 붓도' 입니다. 붓닷따(알기 때문에), 붓도(붓다)이다. 그런데 무엇을 아는가? 목적어를 넣어주면 삽바세와(모든 것을 안다)입니다. 그래서 '삽바세와 붓닷따 붓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만 먹으면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다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아는가? '위모칸띠까냐나'로 압니다. 위모카(벗어나는 자유)는 아라한의 도와 과의 지혜를 말합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아라한 도와 과의 지혜를 특별하게 '삽반뉴따냐나'라고 하고 그 지혜가 있기 때문에 '붓도'라고 하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으실 때 생긴 사성제를 비롯한 모든 법을 꿰뚫어 보는 지혜가 바로 '삽반뉴따냐나'입니다.
붓다라는 공덕은 부처님께서 무수한 겁을 네 번 거치고 십만 겁을 더 넘어서, 많은 보시를 하고, 계율을 지키고, 출가하여 인내 수행을 많이 하고, 노력 수행을 많이 하고, 지혜 수행을 많이 해서 얻는 결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로 안 해 본 빠라미가 없습니다. 빠라미를 목숨까지 걸면서 했습니다. 그런 공덕들의 결과로 마지막에 붓다로 깨달을 때 '삽반뉴따 냐나(모든 것을 아시는 지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원인 따라 나오는 결과이지, 공짜가 아닙니다...
다음은 붓도에 대한 『청정도론』의 설명입니다.
So bhagavā itipi buddho, sabbasseva buddhattā buddho.
Yasmā vā cattāri saccāni attanāpi bujjhi, aññepi satte bodhesi, tasmā evamādīhipi kāraṇehi buddho.
세존을 붓도라고 하는 이유는 모든 법을 깨달았기 때문에 붓도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본인이 사성제를 먼저 깨닫고, 다른 중생들도 깨달을 수 있게끔 하신다. 그런 일을 하시기에 붓도이다.
삽바세와(모든 법), 붓닷따(깨달았기 때문에), 붓도이다.
'짯따리 삿짜니 앗따나삐 붓지(사성제를 본인이 먼저 깨닫고)'. 짯따리(네 가지), 삿짜니(고귀한 진리를, 사성제를), 앗따나(본인이), 붓지(깨닫고). '안녜삐 삿떼 보데시(다른 중생들도 깨달을 수 있게끔 하신다)'. 안녜삐(다른), 삿떼(중생들에게), 보데시(알게끔 한다. 알려 준다. 본인이 알고 남들에게도 알려 준다. 남들도 깨닫게 한다), '따사마 에와마디히삐 까라네히 붓도(그런 일을 하시기에 붓도이다)'. 따사마(그래서, 그런 원인으로), 붓도(붓다라고 한다).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붓다라고 할 때는 두 가지 뜻으로 풀이했습니다.
첫째는 삽밧세와 붓닷따 위목칸띠깐냐나 와세나 붓도(알아야 하는 것이 있으면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붓도이다).
두 번째는 짯따리 삿짜니 앗따나삐 붓지 안녜삐 삿떼 보데시 붓도(사성제를 본인이 먼저 알고 다른 중생들도 알게끔 알려 주시기에 붓도이다).
다음은 『빠띠삼비다막가』 경전의 설명입니다.
Bujjhitā saccānīti buddho. 사성제를 먼저 깨달았기에 붓도이다.
Bodhetā pajāyāti buddho. 모든 중생들도 사성제를 깨닫게 해 주시기에 붓도이다.
삿짜니따(진리들을), 붓지따(안다), 그래서 붓도(붓다)이다. 빠자야(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보떼따(사성제를 알게끔 하기 때문에), 붓도이다.
단어를 바꿔서 말할 뿐 『청정도론』의 설명이나 『빠띠삼비다막가』의 설명이 똑같은 뜻입니다... 주석서의 뜻풀이도 아름답고 경전에 나오는 것도 아름다우니 이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을 외워도 좋습니다.
부처님의 전법은 오비구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오비구만 아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천신들이, 수많은 법천들이 사성제를 깨달았습니다. 『초전법륜경』 하나로 그 이후에도 계속 야사와 54명의 친구들이, 그다음에는 이천 명의 은자들이, 세 그룹으로 살고 있는 가섭형제 세 명이 이끌고 있는 이천 명의 친구들이, 그 다음에 만 명, 이만 명, 이런 식으로 부처님께서 계속 가르치셨습니다. 부처님을 통해서 사성제를 알게 된 인간들이, 천신들이, 범천들이,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보데따 빠자야띠 붓도'라는 말처럼 부처님께서 수많은 중생들에게 사성제를 알려 주시기에 '붓도'입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454~460, (사)법승 담마야나(2017)
왜 붓다께서는 삽반뉴따 냐나, 그리고 데사나 냐나를 갖추셔야 했는가?
본인만을 위해서가 아닌 모든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 붓다가 되셨기 때문이다.
-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와 위대한 삼보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셔야 비로소 드러난다.
- 해가 뜨면 어두웠던 온 세상을 비추는 것처럼, 붓다가 이 세상에 출현하셔야 온 세상이 무지의 장막과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되는 고귀한 네 가지 진리가 밝혀진다.
- 세상에는 법(진리)이 항상 있지만, 사람들이 모르면 그 법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법을 부처님께서 찾아내신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법을 깨달아 부처가 되어 완전한 행복인 닙바나(열반)를 성취하신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깨달으신 법을 모두 가르쳐 주신다.
- 법도 부처님이 계셔야 드러나고 우리도 그 법을 따라 실천하면 부처님처럼 완벽한 행복인 닙바나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법보'라고 한다.
- 고따마 붓다께서는 수기를 받은 그 생에 아라한이 되어 고통을 끝내실 수 있으셨지만, 모든 존재를 위해서 길고 긴 4 아승지와 10만 대겁의 윤회를 거쳐 모든 것을 다 아는 분이 되셨다.
- 붓다께서는 해가 뜨는 것과 같이 온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알아야 한다.
- 부처님이 되시기까지 네 번의 불간아승기와 십만 대겁이 걸렸다. 그동안 행하신 십바라밀은 모든 중생들이 행한 것보다 많다.
- 이 기간을 부처님은 본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 부처가 되신다. 따라서 부처님을 '불보'라고 하며 칭송한다.
-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 중생들이 어리석어서 생로병사에서 고통스러운 것을 보면서 너무나 불쌍하게 여기는 '마하까루나(대연민)'이다. 쉽게 말하면 부처님께서는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당신의 삶을 중생들에게 다 주셨다.
- 그러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이 약해지지 않고 계속 "내가 힘이 있어야 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 내가 부처가 되어야 이 중생들을 도와줄 수 있다."라고 하면서 참고 견디며 빠라미를 실천해 오셨다.
- 이렇게 부처님의 붓다 공덕의 의미를 알고 거듭해서 암송하는 자는 부처님을 친견하는 자이며 스스로 불탑이 된다.
-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갖추신 분이고, 모든 중생들에게 행복과 이익을 주시는 분이 부처님이시다. 그분을 누가 존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숙고하면서 힘들 때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이신 부처님의 '붓도' 공덕을 암송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불탑이 세워진다.
- 부처님을 친견하는 자의 몸은 불탑과 같이 되어 예경을 받을 만하게 된다. 바깥의 탑을 돌아다닐 필요 없다. 내 마음속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붓다께서는 모두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분이 되셨습니다... 해가 뜨면 해는 그냥 온 세상을 비춥니다. 어떤 사람은 햇빛이 싫다고 눈을 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지하실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도 해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매일 뜨고 집니다. 여러분들도 붓다를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붓다께서는 해가 뜨는 것과 같이 온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알아야 합니다.
...온 세상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되는 고귀한 진리(사성제)를 찾아주신 고귀한 분이 붓다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299~301, (사)법승 담마야나(2017)
부처님이 되시기까지 네 아승지와 십만 겁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행하신 십바라밀은 모든 중생들이 행한 것보다 많습니다. 네 아승지와 십만 겁을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실제로 그 시간을 생각해 보면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시간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본인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모든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 부처가 되십니다. 그것을 상징하여 부처님을 '불보'라고 하며 칭송합니다.
세상에는 법(진리)이 항상 있지만, 사람들이 모르면 그 법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법을 부처님께서 찾아내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법을 깨달아 부처가 되어 완전한 행복인 닙바나(열반)를 성취하시고 우리들에게도 깨달으신 법을 모두 가르쳐 주십니다. 법도 부처님이 계셔야 드러나고 우리도 그 법을 따라 실천하면 부처님처럼 완벽한 행복인 닙바나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법보'라고 합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277~278, (사)법승 담마야나(2017)
붓다라는 공덕은 깨달은 순간만 알면 잘 모르겠지만, 깨닫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걸어오셨던 길과 해 왔던 수행들을 알면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 중생들이 어리석어서 생로병사에서 고통스러운 것을 보면서 너무나 불쌍하게 여기는 '마하까루나(대연민)'입니다. 쉽게 말하면 부처님께서는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당신의 삶을 중생들에게 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이 약해지지 않고 계속 "내가 힘이 있어야 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 내가 부처가 되어야 이 중생들을 도와줄 수 있다."라고 하면서 참고 견디며 빠라미를 실천해 오셨습니다. 그런 원인 따라 생기는 결과로 마지막에 부처님이 되셨다고 알아야 합니다... 붓다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해 왔던 부처님의 노력과 믿음과 사띠와 지혜와 대자대비가 대단한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갖추신 분이고, 모든 중생들에게 행복과 이익을 주시는 분이 부처님이시다. 그분을 누가 존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숙고하면서 이 세상에서 최고이신 부처님의 '붓도' 공덕을 많이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붓도, 붓도, ..." 이렇게 독송하면서 들어 보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만큼 가치 있는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을 겁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안 좋은 소리만 많이 했습니다. 가치 없는 말, 쓸데없는 말만 많이 하고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틈만 나면 부처님 공덕을 많이 독송하십시오. 진짜 가치 있는 소리입니다... 뜻을 알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뿌듯하고 얼마나 행복합니까! 수행하면서 힘들 때마다 부처님을 그렇게 계속 만나 보세요. '붓다누사띠' 수행하는 것이 부처님을 친견하는 시간입니다. 부처님의 공덕을 아는 사람의 마음속에 불탑이 세워집니다. 바깥의 탑을 돌아다닐 필요 없습니다. 내 마음속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p.456~458, (사)법승 담마야나(2017)
사성제를 깨달아서 아는 것도 아는 것이고, 지식과 이론으로 알아서 아는 것도 아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아서 알 때만이 번뇌가 없어지고 열반을 성취한다.
'붓도' 공덕은 우리에게 사성제를 알려주시는 부처님의 덕목이다.
따라서 이것을 거듭해서 많이 새기면 사성제를 알기 위한 수행 태도가 매우 좋아진다고 한다.
사성제를 안다고 할 때 깨달음 단계에서 성인으로 사성제를 아는 사람이 있고, 깨닫지 못하고 지식으로 아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식으로 아는 사람 중에는 삼장법사, 이장법사가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지금처럼 법문 듣고 수행하는 여러분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사성제가 무엇인지 이론적으로라도 확실하게 알면 사성제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사성제를 깨달음 단계에서 알면 번뇌가 없어지면서 열반을 성취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사성제를 알고 우리에게도 사성제를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사성제를 알기 위해서 수행하기 때문에 이 공덕을 많이 깊이 새기면 수행 태도가 매우 좋아집니다.
- 아신 빤딧자 사야도, 『여래가 오신 길 보물산 둘레길』 p.460, (사)법승 담마야나(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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