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아비담마

소욕(小欲, appicchatā)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Rihan 2023. 11. 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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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론 14장 155번 문단에는 절제(virati)를 이렇게 설명한다.

155. ...이들 셋의 특징은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 등의 대상을 범하지 않거나 어기지 않는 것이다.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 등의 대상으로부터 움츠리는 역할을 한다.
이들을 행하지 않음으로 나타난다.
믿음, 양심, 수치심, 소욕(小欲, appicchatā) 등의 덕이 가까운 원인이다.

마음이 악행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필자는 여기서 ‘소욕(appicchatā)’이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했다.

적게 바라는 것이나 적은 것에 만족하는 것인지, 아니면 적게 탐하거나 적게 욕심내는 것인지가 그것이다.

 

전자라면 순전히 유익한 것이고, 후자라면 해로움이 적은 것일 것이다.
추가로 연관된 마음부수나 아비담마적으로 이해할 만한 것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1.

먼저 단어의 뜻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소욕에 쓰인 欲은 '하고자할 욕, 바랄 욕'으로 desire, want의 뜻으로 쓰인다.

흔히 비슷하게 쓰이는 慾은 '욕심 욕'이다. '하고자할 욕'에 '마음 심' 자를 덧붙여 욕심이 된다. 영어로는 greed의 뜻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하고자할 욕'은 원초적인 욕구, 생존에 필요한 욕구 등에 가깝다.

그 대상은 초기불교에서는 대체로 생존에 필요한 4가지 필수품과 같은 것일 것이다.

 

'욕심 욕'은 탐내는 마음에 가깝다.

탐내는 마음은 대상을 항상하는 것이고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아 탐내는 것이므로 탐욕과 사견이 함께한 마음과 연관되어 보인다.

생존에 필요한 필수품 등을 넘어선 것이므로 그 대상이 재물이나 이익 등의 허상의 것이 되기 쉽겠다.

 

이렇게 보면 욕(欲)은 무의식적인 욕구, 욕(慾)은 관념이 작용한 의식적인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언어적 개념이 개입하기 전의 욕구가 욕(欲)이라면, 몸에 유발되는 느낌에서 발생하는 이끌림이므로 식욕과 성욕 등이 그것으로 보인다.

언어적 개념이 개입한 후의 욕망이 욕(慾)이라면,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실제가 아닌 허상에 속아 탐하는 것으로서 사회적인 권력욕, 명예욕, 소유욕 등이 그것이겠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소욕, appicchatā는 '원하는 바가 적음'에 가깝다.

관념에 취해 이리저리 탐하지 않고, 이 몸을 부양하고 생존에 필요한 정도로만 원하고 수용하고 그것에 만족한다.

 

이 몸을 부양하는 것에 만족하므로 소욕은 '만족'과 가까워보인다.

이것은 감각적 욕망을 여의는 삶, 허상이 아닌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는 삶, 더 높은 마음의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원하는 것이 적으므로 유지하기 쉽고 부양하기 쉽다.

적은 것에도 만족하므로 마음이 시원하고 행복하며, 따라서 마음이 부드럽고 적합하여 해야할 바를 쉽게 할 수 있다.

 

영문 빠알리어 사전에도 appicchatā의 뜻은 비슷하다.

appicchatā는 Contentment(만족), frugality(절약, 검소함), Having only few wishes(적은 것을 바람), Being satisfied with little(적은 것에 만족함)으로 설명되며, 수행자들의 필수적인 덕목으로 표현되고 있다.

 

 

2.

우 실라 사야도께선 appicchatā를 '탐욕 없음(alobha)'과 연관지어 설명해주셨다. 영어로는 non-greed 이다.

탐욕 없음은 대상에 대해 욕심이 없고 집착하지 않는 특징과 움켜쥐지 않는 역할을 가진다.

 

탐욕 없음은 관대함, 보시와 동의어이다.

탐욕스럽지 않기 때문에 쉽게 만족한다.

 

일상에서는 자기에게 필요한 필수품을 필요만 만큼만 받는 것, 

자기의 훌륭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거나 존경 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탐욕 없음alobha이란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탐욕lobha이 뭔가를 원하는 것이라면 탐욕 없음alobha은 그 본성이 탐욕스럽지 않음, 관대함, 베풀기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도 여러분은 탐욕스러운 사람과 만족하는 사람의 대비되는 행동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탐욕스러운 비구
탐욕스러운 비구는 항상 탁발음식과 보시물을 찾아다닌다. 그러므로 그는 보시물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호소력 있는 법문을 한다. 보시물을 얻으면 그것에 너무 집착하여 다시 남에게 베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게대가 자만을 하고 자신이 얻은 것을 소중히 여긴다. 하지만 그는 잠재적인 보시자에게 친절하고 잘 대해줌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품격만 떨어뜨린다는 것을 모른다.

탐욕스러운 사람
탐욕스러운 사람도 탐욕스러운 비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마음이 탐욕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갈고리로 재산을 긁어모으려 한다. 그는 얻은 것이 무엇이든 만족을 하지 못한다. 탐욕스럽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재산을 얻고자 한다. 그는 "이 것은 내 것이고 저것도 내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가졌고 저것도 가졌다. 이것이 내 재산이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는 죽으면 아귀peta계에 태어날 것이다. 탐욕은 그를 사악처apāya로 밀어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이 바로 탐욕의 해악이다.

탐욕 없는 비구
탐욕 없는 비구는 물질적인 이익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가 보시물을 얻으면 자만에 빠지지 않고 보시물과 보시는 보시자와 독지가의 유익한 의도에서 온 것이라고 바르게 안다. 부처님의 제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재가자도 보시물과 보시에 집착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선한 사람은 절대로 탐욕스러워서는 안 된다. 대신에 그는 관대해야 하고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탐욕 없는 비구는 물질적 재산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탐욕 없는 사람
재가자 중에도 탐욕 없는 사람은 공정하고 정당한 방법만으로 생계를 꾸린다. 그는 바른 생계를 실천하고 감각적 쾌락을 가능한 멀리 하려고 노력한다. 또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고 베풀어 준다. 보시를 올리는데 절대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한 유익한 의도를 빠알리어로 뭇따짜기mutta-cāgī라고 하며 아낌없이 널리 베푼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선한 사람은 왕위, 재산, 권력도 다 팽개치고 숲속에 초막에서 만족하며 사는 선인이 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등을 맞대고 반대 방향으로 질주하는 두 사람과도 같이 탐욕스럽고 탐욕스럽지 않은 사람의 차이점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바라밀을 지닌 보살이나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분석해봐야 한다. '나는 탐욕스러운가? 탐욕스럽지 않은가?' 만약 탐욕스럽다면 이번 생에 마음을 바르게 고쳐야 한다. 만약 자신이 탐욕스럽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 이제 훌륭한 선근을 갖추었으므로 계속해서 유익한 행을 더욱 더 많이 지어나가야 한다.

- 아신 자나까 비왐사 지음, '일상생활에서의 아비담마' P.97~99, 법보시자 위데히

 

 

3.

Appicchatā에 대한 참고할만한 글을 소개한다.

원하는 것이 적은 소욕은 만족함으로 이어지고, 더 높은 삶으로 이어진다.

 

부양하고 유지하기 쉽고 탐욕이 없으므로 감각적 쾌락을 멀리하게 되고, 바른 생계와 보시와 청정한 계행으로 삶을 유지한다.

자연스럽게 욕계 대상에 관심을 줄이고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닦는 더 높은 마음(adhicitta)으로 주의를 기울인다.

 

sallekha(더 높은 삶)의 용례

1. sallekha는 주로 appiccha-santuṭṭha-sallekha의 짝을 구성하여 나타납니다.

1) DN 28.19-믿음을 고양하는 경, 놀랍고 신기함

tathāgatassa appicchatā santuṭṭhitā sallekhatā
여래에게는 원하는 바가 적음, 만족함, 더 높은 삶이 있다.

“passa kho tvaṃ, udāyi, ‘tathāgatassa appicchatā santuṭṭhitā sallekhatā. yatra hi nāma tathāgato evaṃmahiddhiko evaṃmahānubhāvo, atha ca pana nevattānaṃ pātukarissati’! ekamekañcepi ito, udāyi, dhammaṃ aññatitthiyā paribbājakā attani samanupasseyyuṃ, te tāvatakeneva paṭākaṃ parihareyyuṃ. passa kho tvaṃ, udāyi, ‘tathāgatassa appicchatā santuṭṭhitā sallekhatā. yatra hi nāma tathāgato evaṃmahiddhiko evaṃmahānubhāvo, atha ca pana nevattānaṃ pātukarissatī’”ti!

“그대는 보라, 우다이여, ‘여래에게는 원하는 바가 적음, 만족함, 더 높은 삶이 있다. 참으로 여래는 이렇게 큰 신통과 이렇게 큰 위엄이 있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기서, 우다이여, 외도의 유행승들이 하나하나씩의 법이라도 자신에게서 본다면 그들은 그 만큼에 의해 깃발을 흔들 것이다. 그대는 보라, 우다이여, ‘여래에게는 원하는 바가 적음, 만족함, 더 높은 삶이 있다. 참으로 여래는 이렇게 큰 신통과 이렇게 큰 위엄이 있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2) 율장(律藏)에서 학습계목의 제정 과정에서 정형된 문구로 반복하여 나타남 ― pārājikakaṇḍaṃ, 1. paṭhamapārājikaṃ, sudinnabhāṇavāro(첫 번째 빠라지까, 수딘나 부문) 등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sudinnaṃ anekapariyāyena vigarahitvā dubbharatāya dupposatāya mahicchatāya asantuṭṭhitāya saṅgaṇikāya kosajjassa avaṇṇaṃ bhāsitvā anekapariyāyena subharatāya suposatāya appicchassa santuṭṭhassa sallekhassa dhutassa pāsādikassa apacayassa vīriyārambhassa vaṇṇaṃ bhāsitvā bhikkhūnaṃ tadanucchavikaṃ tadanulomikaṃ dhammiṃ kathaṃ katvā bhikkhū āmantesi — “tena hi, bhikkhave, bhikkhūnaṃ sikkhāpadaṃ paññapessāmi dasa atthavase paṭicca — saṅghasuṭṭhutāya, saṅghaphāsutāya, dummaṅkūnaṃ puggalānaṃ niggahāya, pesalānaṃ bhikkhūnaṃ phāsuvihārāya, diṭṭhadhammikānaṃ āsavānaṃ saṃvarāya, samparāyikānaṃ āsavānaṃ paṭighātāya, appasannānaṃ pasādāya, pasannānaṃ bhiyyobhāvāya, saddhammaṭṭhitiyā, vinayānuggahāya. evañca pana, bhikkhave, imaṃ sikkhāpadaṃ uddiseyyātha —

그리고 세존은 수딘나 존자를 여러 방법으로 꾸짖은 뒤에 유지하기 어렵고, 부양하기 어렵고, 원함이 많고, 만족하지 못하고, 교제를 좋아하고, 게으른 것을 나무랐다. 다양한 방법으로 유지하기 쉽고, 부양하기 쉽고, 원함이 적고, 만족하고, 더 높은 삶을 살고, 제거하고, 믿음을 가지고, 모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찬탄하여 말한 뒤에 비구들에게 알맞고 적절한 법의 말씀을 말하고서 비구들에게 말했다. ㅡ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열 가지 이유를 연(緣)하여 비구들에게 학습계목을 제정할 것이다. ㅡ ①승가의 뛰어남을 위하여, ②승가의 편안함을 위하여, ③침묵하기 힘든 자들을 억제하기 위하여, ④잘 행동하는 비구들의 편안한 머묾을 위하여, ⑤지금여기에 속하는 번뇌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⑥다음 생에 속하는 번뇌들을 저항하기 위하여, ⑦믿음이 없는 자들을 믿음으로 이끌기 위하여, ⑧믿음이 있는 자들을 더욱 확대시키기 위하여, ⑨정법(正法)을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⑩율(律)을 보조하기 위하여.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런 학습계율을 암송해야 한다. ―

3) pārājikapāḷi, 2. saṅghādisesakaṇḍaṃ, 10. saṅghabhedasikkhāpadaṃ(상가의 분열에 대한 학습계율)

bhagavā, bhante, anekapariyāyena appicchassa santuṭṭhassa sallekhassa dhutassa pāsādikassa apacayassa vīriyārambhassa vaṇṇavādī.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원함이 적고, 만족하고, 더 높은 삶을 살고, 제거하고, 믿음을 가지고, 모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찬탄하여 말합니다.

4) dhammadāyādasuttaṃ (MN 3-법(法)의 후계자 경)

taṃ kissa hetu? tañhi tassa, bhikkhave, bhikkhuno dīgharattaṃ appicchatāya santuṭṭhiyā sallekhāya subharatāya vīriyārambhāya saṃvattissati. tasmātiha me, bhikkhave, dhammadāyādā bhavatha, mā āmisadāyādā. atthi me tumhesu anukampā — ‘kinti me sāvakā dhammadāyādā bhaveyyuṃ, no āmisadāyādā’”ti.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그 비구를 위해 오랫동안 원함이 적음, 만족, 더 높은 삶, 유지하기 쉬움, 열심히 정진함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나에게 법(法)의 후계자가 되어라. 재물의 후계자가 되지 말라. 나는 그대들에 대한 연민이 있다. ― ‘어떻게 나의 제자들이 재물의 후계자가 아니라 법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까?’라고.

5) āraññikasuttaṃ (AN 5.181-숲에 사는 자 경)

“pañcime, bhikkhave, āraññikā. katame pañca? mandattā momūhattā āraññiko hoti, pāpiccho icchāpakato āraññiko hoti, ummādā cittakkhepā āraññiko hoti, vaṇṇitaṃ buddhehi buddhasāvakehīti āraññiko hoti, appicchataṃyeva nissāya santuṭṭhiṃyeva nissāya sallekhaṃyeva nissāya pavivekaṃyeva nissāya idamatthitaṃyeva nissāya āraññiko hoti. ime kho, bhikkhave, pañca āraññikā. imesaṃ kho, bhikkhave, pañcannaṃ āraññikānaṃ yvāyaṃ āraññiko appicchataṃyeva nissāya santuṭṭhiṃyeva nissāya sallekhaṃyeva nissāya pavivekaṃyeva nissāya idamatthitaṃyeva nissāya āraññiko hoti, ayaṃ imesaṃ pañcannaṃ āraññikānaṃ aggo ca seṭṭho ca mokkho ca uttamo ca pavaro ca.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숲에 사는 자가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어리석고 바보 같아서 숲에 산다. 악한 원함을 가지고 악한 원함의 영향을 받아 숲에 산다. 미치고 심(心)이 혼미하여 숲에 산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에 의해서 칭찬받는다’라며 숲에 산다. 원하는 바가 적음에 의지하고, 만족에 의지하고, 더 높은 삶에 의지하고, 여읨에 의지하고, 여기에서의 사실에 의지하여 숲에 산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숲에 사는 자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숲에 사는 자 가운데 원하는 바가 적음에 의지하고, 만족에 의지하고, 더 높은 삶에 의지하고, 여읨에 의지하고, 여기에서의 사실에 의지하여 숲에 사는 자가 으뜸이고 뛰어나고 풀렸고 최상이고 귀하다.

• cīvarasuttaṃ (AN 5.182-가사 경) ― 분소의(糞掃衣)를 입는 자
• rukkhamūlikasuttaṃ (AN 5.183-나무 아래 사는 자) ― 나무 아래 사는 자
• sosānikasuttaṃ (AN 5.184-묘지에 사는 자 경) ― 묘지에 사는 자
• abbhokāsikasuttaṃ (AN 5.185-열린 곳에 사는 자 경) ― 열린 곳에 사는 자
• nesajjikasuttaṃ (AN 5.186) ― 항상 앉아 있는 자[장좌불와(長坐不臥)]
• yathāsanthatikasuttaṃ (AN 5.187-어떤 처소에도 만족하는 자 경) ― 어떤 처소에도 만족하는 자
• ekāsanikasuttaṃ (AN 5.188-하루 한 번만 먹는 자 경) ― 하루 한 번만 먹는 자
• khalupacchābhattikasuttaṃ (AN 5.189-후식을 먹지 않는 자 경) ― 후식을 먹지 않는 자

• pattapiṇḍikasuttaṃ (AN 5.190-발우의 탁발 음식만 먹는 자 경)

“pañcime, bhikkhave, pattapiṇḍikā. katame pañca? mandattā momūhattā pattapiṇḍiko hoti, pāpiccho icchāpakato pattapiṇḍiko hoti, ummādā cittakkhepā pattapiṇḍiko hoti, ‘vaṇṇitaṃ buddhehi buddhasāvakehī’ti pattapiṇḍiko hoti, appicchataṃyeva nissāya santuṭṭhiṃyeva nissāya sallekhaṃyeva nissāya pavivekaṃyeva nissāya idamatthitaṃyeva nissāya pattapiṇḍiko hoti. ime kho, bhikkhave, pañca pattapiṇḍikā. imesaṃ kho, bhikkhave, pañcannaṃ pattapiṇḍikānaṃ yvāyaṃ pattapiṇḍiko appicchataṃyeva nissāya santuṭṭhiṃyeva nissāya sallekhaṃyeva nissāya pavivekaṃyeva nissāya idamatthitaṃyeva nissāya pattapiṇḍiko hoti, ayaṃ imesaṃ pañcannaṃ pattapiṇḍikānaṃ aggo ca seṭṭho ca mokkho ca uttamo ca pavaro ca.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발우의 탁발 음식만 먹 자가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어리석고 바보 같아서 발우의 탁발 음식만 먹는다. 악한 원함을 가지고 악한 원함의 영향을 받아 발우의 탁발 음식만 먹는다. 미치고 심(心)이 혼미하여 발우의 탁발 음식만 먹는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에 의해서 칭찬받는다’라며 발우의 탁발 음식만 먹는다. 원하는 바가 적음에 의지하고, 만족에 의지하고, 더 높은 삶에 의지하고, 여읨에 의지하고, 여기에서의 사실에 의지하여 발우의 탁발 음식만 먹는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발우의 탁발 음식만 먹는 자가 있다.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발우의 탁발 음식만 먹는 자 가운데 원하는 바가 적음에 의지하고, 만족에 의지하고, 벗어나는 삶에 의지하고, 여읨에 의지하고, 여기에서의 사실에 의지하여 발우의 탁발 음식만 먹는 자가 으뜸이고 뛰어나고 풀렸고 최상이고 귀하다.

...

2. 특정한 경우에 abhisallekhikā/ābhisallekhikā로도 나타납니다. ― yāyaṃ kathā abhisallekhikā(ābhisallekhikā) cetovivaraṇasappāyā

; yāyaṃ kathā abhisallekhikā cetovivaraṇasappāyā, seyyathidaṃ — appicchakathā santuṭṭhikathā pavivekakathā asaṃsaggakathā vīriyārambhakathā sīlakathā samādhikathā paññākathā vimuttikathā vimuttiñāṇadassanakathā,

예를 들면, 원하는 것이 적음에 대한 이야기, 만족에 대한 이야기, 여읨에 대한 이야기, 교류 않음에 대한 이야기, 열심히 노력함에 대한 이야기, 계(戒)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지혜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解脫知見)에 대한 이야기 등 더 높은 삶에 속한 것이고, 심(心)의 장애에서 벗어남에 적합한 것인 이런 이야기

• mahāsuññatasuttaṃ (MN 122-공(空)에 대한 큰 경)/dutiyasekhasuttaṃ (AN 5.90-유학(有學) 경2)/kathāsuttaṃ (AN 5.97)/sambodhisuttaṃ (AN 9.1-깨달음 경)/meghiyasuttaṃ (AN 9.3-메기야 경)/dutiyakosalasuttaṃ (AN 10.30-꼬살라 경2)

- 해피스님, 'sallekha(더 높은 삶)의 용례'(2020)

 

위 글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원하는 바가 적음 → 만족함 → 더 높은 삶으로 이어진다.

② 유지하기 어렵고, 부양하기 어렵고, 원함이 많고, 만족하지 못하고, 교제를 좋아하고, 게으른 것은 나무랄 만한 것이고 부끄러운 것이다.

③ 유지하기 쉽고, 부양하기 쉽고, 원함이 적고, 만족하고, 더 높은 삶을 살고, 제거하고, 믿음을 가지고, 모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찬탄할만한 것이다.

④ 원함이 적음, 만족, 더 높은 삶, 유지하기 쉬움, 열심히 정진함으로 부처님의 법의 후계자가 된다. 재물의 후계자가 되지 않는다.

⑤ 원하는 바가 적음에 의지하고, 만족에 의지하고, 더 높은 삶에 의지하고, 여읨에 의지하고, 여기에서의 사실에 의지하여 숲에 살고 발우의 탁발 음식만 먹는 자가 으뜸이고 뛰어나고 풀렸고 최상이고 귀하다.

⑥ 쉽게 구할 수 있고 감각적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옷을 입는다. 외딴 처소에 거주하며 어떤 처소에도 만족한다. 하루 한 번 먹고 후식을 먹지 않으며 먹는 것의 적당함을 안다. 항상 앉아서 열심히 정진한다.

⑦ 원하는 것이 적어 쉽게 만족한다. 여읨과 교류 않음, 항상 낯설음을 통해 친한 관계의 위험이 없다. 열심히 노력하여 계, 삼매, 지혜, 해탈, 해탈지견의 더 높은 삶을 성취하고 마음의 장애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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