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아비담마
“대상이 원하지 않는 것일 때 해로운 과보의 마음이다. 보통으로 원할 때 유익한 과보의 마음이다. 열렬히 원하는 것일 때 기쁨이 함께한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4장)
Rihan
2023. 7. 24.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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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I.3. 여운의 법칙
tadārammaṇa-niyama
특정 찰나에 일어나는 특정한 마음은 제멋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엄격히 정해진 법칙에 의해서 일어난다. 그런 정해진 법칙을 니야마(niyama)라 한다. 이 단어는 ni(아래로)+√yam (to strech out, to hold)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 '아래로 누름'이라는 문자적인 뜻에서 '제한, 제어, 확실함, 엄격함' 등의 뜻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여운의 마음이 일어나는 정해진 법칙이라는 의미에서 '법칙'으로 옮겼다.
2.
§17. 여운(tadārammaṇa)의 분석
모든 경우에 대상이 원하지 않는 것일 때 다섯 가지 알음알이(전오식)와 받아들이는 마음과 조사하는 마음과 여운의 마음은 해로운 과보의 마음이다.
[보통으로] 원하는 것일 때 그들은 유익한 과보의 마음이다.
[대상이] 열렬히 원하는 것일 때 조사하는 마음과 여운의 마음은 기쁨이 함께한다.
그곳에서도 기쁨이 함께한 작용만 하는 속행 끝에는 여운의 마음이 기쁨과 함께한다. 평온이 함께한 작용만 하는 속행 끝에는 여운의 마음이 평온과 함께한다.
1. 대상이 원하지 않는 것일 때...: 감각의 대상은 원하지 않는 것(aniṭṭha), 보통으로 원하는 것(iṭṭha), 열렬히 원하는 것(ati-iṭṭha)의 세 가지로 분류가 된다. 이처럼 원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둘로 나누어서 분류하고 원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원하지 않는 것'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설명한다.
아비담마에 의하면 대상에 드러나는 이러한 차이점은 그 대상에 본래부터 내재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대상을 경험하는 자의 기질이나 선호도에 따라서 다르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위방가』의 주석서인 『삼모하위노다니』(Sammohavinodanī)는 어떤 사람이 원하지 않는 대상을 원하는 대상으로 여기거나 원하는 대상을 원하지 않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의 인식의 전도(saññā-vipallāsa) 때문이라고 단언한다.(VbhA.10) 그 사람이 아무리 그렇게 보더라도 그 사람의 개인적인 선택과는 상관없이 대상은 그 자신의 고유성질에 따라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대상이 가지는 고유성질의 차이는 보통 사람(majjhimaka-satta)에 의해서 알아진다고 한다.
계속해서 『삼모하위노다니』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경리나 공무원이나 중산층의 사람들이나 땅 주인이나 상인들이 어떤 경우에 원하는 것이고 어떤 경우에 원하지 않는 것인지 아는 것으로써 구분할 수 있다."
어떤 특정한 경우에 한 사람이 원하지 않는 대상을 경험하는가, 보통으로 원하는 대상을 경험하는가, 열렬히 원하는 대상을 경험하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의 업에 의해서 지배된다. 그러므로 경험된 대상은 업이 과보의 마음(vipāka-citta)으로 익도록 업에게 기회를 부여한다. 과보의 마음들은 아무런 고의성이 없이 대상의 성질과 자연히 일치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실제 얼굴의 특징과 일치하는 것과 같다.
해로운 업(불선업)의 힘으로 우리는 원하지 않는 대상과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인식과정에서 대상을 인식하는 과보의 마음들은 그 해로운 업이 익어서 나타난 것이다. 이런 경우에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알음알이(전오식), 받아들이는 마음, 조사하는 마음, 여운의 마음은 필연적으로 해로운 과보의 마음(akusala-vipāka)들이다. 그리고 이에 동반하는 느낌은 고통을 수반하는 몸의 알음알이(신식)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평온한 느낌이다.
반대로 보통으로 원하는 대상이나 열렬히 원하는 대상은 유익한 업의 힘을 통해서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인식과정에서 대상을 인식하는 과보의 마음들은 그 선업이 익어서 나타난 것이다. 이런 경우에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알음알이, 받아들이는 마음, 조사하는 마음, 여운의 마음은 필연적으로 유익한 과보의 마음(kusala-vipāka)들이다. 그리고 이에 동반하는 느낌은 즐거움을 수반하는 몸의 알음알이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평온한 느낌이다. 그리고 열렬히 원하는 대상을 경험할 때 조사하는 마음과 여운의 마음은 기쁨과 함께한다.
대상이 원하지 않는 것이면 여운의 역할은 해로운 과보의 마음인 조사하는 마음이 전적으로 담당한다. 보통으로 원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여운은 유익한 과보의 마음인 평온이 함께하는 조사하는 마음이나 평온이 함께하는 네 가지 큰 과보의 마음이 담당한다. 열렬히 원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여운은 일반적으로 유익한 과보의 마음인 기쁨이 함께하는 조사하는 마음이나 기쁨이 함께하는 네 가지 큰 과보의 마음이 담당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과보의 마음들은 대상의 성질에 의해서 지배가 되지만 자와나(속행)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경험자의 기질이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상이 열렬히 원하는 것일지라도 자와나들은 평온과 함께하는 유익한 마음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해로운 마음들로서 무관심한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부처님을 뵙고도 회의론자들에게는 의심과 함께하는 마음들이 일어날 수 있고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서도 수행하는 스님들에게는 평온이 함께하거나 지혜와 결합된 유익한 마음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열렬히 원하는 대상에 대해서까지 적의나 불만족이 함께하는 자와나들이 일어날 수도 있으며 원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원하는 대상을 인식하는 자와나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마조히스트(masochist, 피학대 음란증) 환자는 육체적인 고통에 대해서 기쁨이 함께하는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들로 응답할 수 있으며 부정관을 닦는 스님은 썩어 가는 시체를 기쁨이 함께하고 지혜와 결합된 유익한 마음으로 주시할 수 있는 것이다.
2. 그곳에서도...: 이 문장은 과보의 마음들은 대상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아라한의 작용만 하는 욕계의 자와나의 마음들도 대상과 일치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여기에 포함되었다. 아라한이 열렬히 원하는 대상을 경험할 때 그의 자와나의 마음에는 기쁨과 함께하는 네 가지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중의 하나가 일어나고 여운의 마음으로는 기쁨이 함께하는 다섯 가지 과보의 마음 중의 하나가 일어난다. 아라한이 원하지 않거나 보통으로 원하는 대상을 경험하면 자와나에는 평온이 함께하는 네 가지 작용만 하는 마음 중의 하나가 일어나고 여운의 마음으로는 평온이 함께하는 여섯 가지 과보의 마음 중의 하나가 일어난다.
레디 사야도는 아라한들의 대상과 작용만 하는 자와나들 사이의 상관관계는 그들의 자와나가 일어나는 자연적인 방식에 관해서 말한 것일 뿐이며 적절한 결심(adhimokkha)에 의해서 아라한은 열렬히 원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평온이 함께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고 원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도 기쁨이 함께하는 마음들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3.
§18. 외래의 바왕가(āgantuka-bhavaṅga)
그러나 불만족이 함께한 속행 끝에 있는 여운의 마음들과 존재지속심은 평온이 함께한다. 그러므로 만약 기쁨이 함께한 재생연결식을 가진 자의 경우 불만족이 함께한 속행의 끝에는 여운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때, 이전에 익숙한 어떤 작은 대상에 의지하여 평온이 함께한 조사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 다음에 곧바로 존재지속심으로 들어간다고 스승들은 말씀하신다.
1. 그러나 불만족이 함께한 속행 끝에 있는...: 기쁨과 불만족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므로 둘 중의 하나와 함께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 바로 다음에 이 둘 중의 다른 느낌과 함께하는 마음은 일어나지 못한다. 그렇지만 평온과 함께한 마음은 이 둘 중의 하나와 함께하는 느낌의 바로 앞이나 바로 다음에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와나(속행)들이 불만족(domanassa)과 함께할 때, 즉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들일 때 여운이 일어나면 그들은 반드시 평온과 함께하게 된다.³⁶⁰⁾ 만일 여운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에는 불만족과 함께하는 자와나들 바로 다음에 존재지속심이 일어난다. 물론 이때의 존재지속심은 중립적인 느낌인 평온을 수반할 것이다.
³⁶⁰⁾ 이 조항에 의하면 만일 열렬히 원하는 대상에 대해서 적의(paṭigha)가 일어난다면 여운의 마음들은 §17에서 나타난 대로 기쁨과 함께할 수가 없다. 그 대신에 그들은 평온이 함께하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들이다.
2. 그러므로 만약 기쁨이 함께한 재생연결을 가진 자의 경우...: 존재지속심이 기쁨과 함께한 네 가지 큰 과보의 마음 중의 하나인 사람일 경우 만익 그의 속행과정의 마음들이 불만족과 함께하여 그 속행의 끝에 여운의 마음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마지막 속행의 마음은 바로 존재지속심으로 가라앉을 수 없다. 바로 앞의 마음과 정반대되는 느낌들을 수반하는 마음은 바로 다음에 일어날 수 없다는 법칙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아비담마의 스승들은 이 둘 사이에서 평온이 함께하는 조사하는 마음이 단 한 심찰나 동안 일어난다고 한다. 그것은 불만족이 함께하는 자와나와 기쁨이 함께하는 바왕가(존재지속심)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이 마음은 조사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 인식과정과는 다른 대상과 역할을 가진다. 즉 이 인식과정과는 관계없는 자신에게 아주 익숙한 욕계의 대상을 가진다. 단지 존재지속심의 정상적인 흐름으로 돌아가는 길을 밟는 것일 뿐이다. 이 특별한 역할을 하는 마음을 아간뚜까 바왕가(āgantuka-bhavaṅga), 즉 '외래의 바왕가'라 부른다.
한편 지나간 바왕가(atīta-bhavaṅga)와 바왕가의 동요(bhavaṅga-calana)와 바왕가의 끊어짐(bhavaṅga-upaccheda)을 포함하여 바왕가는 모두 예외 없이 전생의 마지막 속행과정에서 나타난 업 등 셋 가운데 하나를 그 대상으로 하지만 이 '외래의 바왕가'는 자신에게 익숙한 욕계의 대상을 대상으로 가지는 것이 차이점이다.
즉, 외래의 바왕가는 해당 인식과정이 아닌 밖에서 온 다른 종류의 마음이다.
일종의 여운의 마음으로 볼 수 있다.
앞뒤의 마음이 서로 정반대되는 느낌을 가질 수 없다는 법칙을 기호로 표현하자면
- + 다음에 0이 올 수 있고,
- - 다음에 0이 올 수 있지만,
- + 다음에 바로 -가 올 수는 없다.
로 표현할 수 있다.
+와 - 사이에는 중간에서 중화시키는 0의 마음이 필요하다.
+ 다음에 0이 있어야 그 다음에 -의 마음이 올 수 있다.
여기서 +는 기쁨, -는 불만족, 0은 평온을 의미한다.
4.
§19. 여운의 법칙
그와 마찬가지로 [오직] 욕계의 속행 끝에, [오직] 욕계의 중생에게, 오직 욕계의 법이 대상일 때 여운은 일어난다고 말한다.
여운의 마음은 욕계에 속하는 마음이다.
§20. 요약
욕계의 속행과 중생과 대상에 대해 확실함이 있을 때 선명하고 매우 큰 대상에 여운이 일어난다고 설한다.
여기서 이것이 여운의 법칙이다.
인용 출처: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권', 초기불전연구원(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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